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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01. 2022

이혼해 줄 테니까 당장 내려와

이혼을 위한 외줄타기


수화기 너머로 흐느낌과 침묵이 번갈아 이어졌다. 그리고 뒤이은 그분의 고백에 나는 한번 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그가 투기로 억대의 돈을 날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전에는 주식으로 1억의 몇 배가 되는 돈을 날렸었고 그것을 가족이 모든 자금을 끌어모아 은 직후에 나를 만났던 것이다.




나를 만나고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셨단다. 똑 부러진 여자 친구, 아내를 만나 이제 착실히 돈을 모으며 살아갈 것이라고.

 옆에서 듣고 계시던 그의 어머니께서도 전화를 바꾸어 실제로 그가 나를 만나서 정신을 차리려 했으며 몇 년까지 얼마를 모아서 나와 함께 집을 살 계획이라 말했다 하셨다. 그리고 끝으로는 이번 한 번만 믿어주고 서로 의지하며 같이 살아가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셨다.


하지만 나는 역시나 그 찰나의 판단으로 앞으로 수년간 빚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빚을 청산한 이후에도 그가 언제 다시 이런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이 때는 그 입장을 단호히 씀드릴 수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덧 붙이지 않으셨다.




그렇게 그의 부모님과의 전화통화를 마친 후, 나는 그가 빚을 져서 투기를 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되뇌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부모님한테 말했어?"


공격적인 말투였다. 아버지가 몸도 안 좋으신데 충격받아서 쓰러지면 내 탓인 줄 알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멋대로 말했냐고 폭발하듯 다그쳐오는 물음에 '너와 끝내고 싶혼자의 힘으로는 설득이 안 될 것 같고 끝내더라도 후에 그 빚을 네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위험해 였기에 말씀드린 것도 다'고 내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였으나 '그래도 내가 말하지 말라했는데 왜 말했냐'는 똑같은 물음이 거듭 반복될 뿐이었다. 대화에 진전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던 중 그가 말했다.

 

"나도 이제 누나랑 안 살고 싶어. 끝내자. 이혼해 주면 되는 거지? 이혼해 줄 테니까 내일 내려와. 내가 이혼해 줄게."


'응? 정말 이혼을 해 준다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하지만 동시에 '정말 내려가면 순순히 이혼을 해 주걸까?' 하는 의심이 일었다. 일단 나는 이혼을 해주겠다는 말에 곧바로 법원에 연락하고 인터넷을 뒤져서 협의이혼 절차 및 필요한 서류들을 파악했다. 필요서류들은 관공서에 들리면 간단히 당일 발급가능한 서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서류들을 가지고 둘이 함께 법원에 서 협의이혼신청서를 제출한 후, 한 달의 숙려기간 이후다시 한번 같이 법원에 출석 재차 협의의혼 의사를 밝히면 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횟수는 단 두 번. 만일 이번에 내가 내려가서 한 번의 출석을 마치면 이혼 절차 중 절반은 끝나는 이라 생각하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기껏 갔더니 이혼해주지 않겠다고 그가 말을 바꿀까 불안 하기는 했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시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이혼을 위해선 그의 도움이 필요했고 믿져야 본전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이혼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나는 다음날 내려가는 기차를 예매했다. 엄마는 내심 불안한 눈치셨지만 누군가를 데려가기엔 당장 다음날 아침 기차라 시간이 촉박했고 일정을 미루기엔 내가 급했다. 엄마는 다음날 일을 가시기에 사실상 데려갈 수 있는 사람도 이 상황을 전부 아는 그 친구 말고는 없었는데 그 친구도 시험공부로 바쁠 터였고 무리한 부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교통비도 배로 들 터였다. 나는 여러모로 여유가 없었다. 엄마께서도 결국 알겠으니 조심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밤새 그로부터의 전화는 끊이질 않았다. 전화를 받으면 그는 왜 말했냐고 나를 탓하는 듯한 물음을 반복해  뿐이었고 나는 더 이상 똑같은 말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직접 만날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겠다고 말한 후  내려가서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벨소리에 그의 번호를 차단한 후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날이 밝고 나는 첫 차를 타고 그가 있는 지역으로 내려갔다. 편도 5시간이 걸리는 짧지 않은 거리였다. 무슨 생각을 하면서 내려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불안했던 것 같다. 기차역까지 그가 픽업을 와주기로 하였는데 오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내가 차단했듯이 그도 내 연락을 받지 않으면 어떡하지? 따위의 걱정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그와 연락이 닿았고 어렵지 않게 그와 만날 수 있었다.


기차역 인근 주차장에서 그와 마주한 나는 긴말 않고 조수석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고 한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도 잠시 어제 전화를 통해 끝도 없이 물었던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


"왜 말했어?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멋대로 그랬냐고."


나는 그의 질문에 수도 없이 이유를 설명했으나 그 이유는 그에게 이유가 될 수 없는 듯 보였고 끝내 나는 입을 닫았다. 더 이상 말 해도 변할 게 없는 듯 보였다. 그러자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어제 내려와서 말 하자며? 근데 왜 말을 안 해? 말 안 하면 나  이혼 안 해. 다시 역으로 데려다줄게."


할 말이 없었다. 이대로 올라가면 나는 왕복 10시간 및 교통비를 허공에 던진 꼴이 되고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이곳에 내려온 목적을 달성수 있을지 고민하중 그가 오늘 이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 네가 오늘 이혼을 안 하는 건 네 자유이긴 한데. 만약 내가 이대로 올라가면 다음번에 또 협의이혼 얘기가 나왔을 때 내가 널 믿고 내려올 수가 없어. 또 이렇게 내려왔다가 헛걸음만 하고 올라갈지 누가 알아? 그래서 이대로 올라가면 재판상 이혼준비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이미 유턴을 해서 기차역 쪽으로 향하고 있던 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내 기분 탓지 모르지만 그의 움직임에서 무언가 안절부절못하고 분을 삭이는 듯한 낌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재빠르게 내 쪽으로 손을 뻗어 내가 양손으로 쥐고 있던 핸드폰을 잡아채 운전자석 왼쪽 구석으로 내동댕이쳤다.


그 후 그는 앞에 있는 차에 박아버려도 되겠냐고 소리치며 위태위태한 과속운전을 시작했다. 핸드폰이 없는 나는 달리는 차 안에서 그를 저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인 말대로 어딘가에 차를 박아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행동에 두려움 밀려왔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리겠다 소리를 지르는 것. 핸들을 쥐고 좌우로 흔며 방향을 틀 시도를 하는 등의 무의미한 발악 말고는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물리적인 저항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변을 둘러보니 차는 도심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시골마을달리고 있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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