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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04. 2022

마지막 인사

평생 잊지 못할. 너도 그렇기를


어느덧 차는 고가도로에서 벗어나 조금은 황량한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오전 시간대였기에 주변이 밝았지만 어둡기만 하다면 딱 스릴러 영화에 나올법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인적 드문 시골길이었다.


자꾸만 외진 곳을 향하는 차 안에서 불안했던 나는 일단 차를 멈추고 차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길이 좁아져서 차 속력이 아까에 비해 확연히 줄었었기에 기회를 봐서 기어를 파킹으로 돌리고 차키를 뽑아서 차를 멈추면 될 것 같았다.  후의 일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일단 차를 멈추고 차로부터 달아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나.. 둘...'



셋을 세고 나는 머릿속에 그렸던 계획대로 먼저 기어를 파킹으로 돌렸다. 차가 덜컹거리며 멈추었고 이어서 나는 차키에 손을 뻗으나..



그에게 머리채를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나를 저지하기 위해 손으로는 내 머리채를 잡고 발로 내 몸을 차기 시작했고 나는 내 나름대로 저항하였으나 싸움이라기보단 일방적인 폭행에 가까운 상황이 연출되었다. 평소 운동에는 자신이 있었던 나지만 그가 이전에 무에타이를 배워 자신보다 훨씬 체격이 좋은 친구도 거품을 물게했다는 말을 들었었기에 내가 그를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전의를 상실한 나는 저항은 지만 그를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고 왜인지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랬다가는 괜히 더 맞게 될까 두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계몸부림을 으나 내 머리칼은 그에게 잡힌 그대로였고 그걸 잘라내지 않는 이상 내가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싸우다 머리채를 잡힐 때마다 느끼는데 정말 내 긴 머리칼이 원망스럽다.  머리가 그의 머리 정도로 짧았다면 과연 결과는 달라졌을까.


조수석에서 고개를 아래로 한 채 웅크리고 있는 나를 감싸듯 결박한 그는 내가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를 힘으로 뜯어서 던져버린 후 위에서 아래로 내 얼굴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 상황에서 나는 크게 아픔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코나 입과 같은 약한 부분이 아닌 광대 부분을 맞았기에 타격이 덜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수차례 내 얼굴을 가격하며 그가 뱉었다.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지...!"



주먹질이 잠잠해질 때 즈음이면 한 번씩 온 힘을 다해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내가 자꾸 탈출하려 하는 게 성가셨는지 이젠 그가 한 손으로 내 목을 졸라왔다. 양팔은 어딘가에 짓눌리고 결박되어 그의 손을 뿌리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목을 졸리는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얼굴을 맞고 있을 때가 나았다. 정말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흐억.. 컼.. 끄억.. 꺽..."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찰나에 숨을 몰아쉬며 꺽꺽대는 내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정신이 또렷하지도 않았고 그저 살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죽으면 엄마는 평생 나를 내려보낸 것을 자책하며 살 것이다. 잘 다녀오라고 하셨는데. 나를 내려보 그 순간을 평생 후회하실 텐데. 안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젠 켁켁 거리는 소리가 아니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내 목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진짜 영화 같다. 어이없어. 나 이렇게 죽는 거야..?










정신이 희미해질 때 즈음 그는 내 목을 조이던 손을 풀었그렇게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났다.




이후에 그는 어딘가 고장난 듯 덜컹거리는 차를 몰고 더 외진 곳으로 향하며 저수지처럼 보이는 곳에 돌진해버리겠다는 둥 같이 죽자는 식의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말들에 적당히 대꾸를 해주며 반쯤 체념한 듯이 조수석에 앉아있었다. 그 말들 중에는 같이 죽자는 협박도 있었고 나를 돌려보내면 이제 자신은 경찰서에 가게 되지 않느냐는 염려도 있었고 지난 주식투기로 진 빚 중 절반은 자기가 번 돈으로 갚았다는 변명인지 합리화인지 모를 말도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그는 어딘가에 차를 세우고 자신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연락은 일절 하지 않을 테니 그저 자신이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그 말인즉슨 빚을 다 갚으면 다시 만나서 결혼생활을 이어가자는 얘기였다. 잘도 그런 말이 나오는구나. 알겠다고 했다. 집에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리고 그는 내가 그를 기다려주고 헤어지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그의 부모님께 전화하여 말해달라 하였다. 그 당시 그가 그런 부탁을 한 이유는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순순히 그 말에 따라 전화를 드렸고 뒤이어 그는 나로부터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거듭 받아낸 후에야 기차역으로 나를 바래다주었다.



기차역에서 집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타기 전 남는 시간에 우린 인근 토스트집에 가서 토스트를 먹으며 향후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에게 연락하지 않는 그 기간 동안 매달 상환금액과 남은 대출잔액을 나에게 보고하겠다 하였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추가로 필요한 경우에 확인하라면서 그의 공인인증서를 내 휴대전화에 깔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알려었다. 그 외에도 여러 말이 오갔으나 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단단히 일러두었던 조건은 단 하나 '상환내역 보고 연락 외에는 절대로 연락하지 말 것.'. 그 말에 그는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다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피가 말랐다. 알겠다고 해야 집에 갈 수 있겠지. 맞은 부분이 부어올라 토스트를 씹을 때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내 얼굴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약을 사주겠다는 그를 만류한 채 기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도착했고 나는 기차에 올라 기차 밖에 서있는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기차 문이 닫히며 나와 그 사이를 갈라놓았던 그 순간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때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을 감정이 온몸을 가득 메웠다.













'고마워.'












마지막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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