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있은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아직도 그 일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때때로 무기력에 휩싸여하루웬종일 이불속에서 보내다가, 또 어느 날은 전처럼 활기차게 여러 일을 시도하다 또 다른 날은 지나치게 활력이 넘쳐서 감당 못할 일들을 벌리다 그다음 날 다시 후회하며 수습하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기차를 타고 올라온 나는 집에 가기 전에 먼저 법률사무소에 들렀다. 이제는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미안함도 사라진 상태였다. 법률사무소에 들어가 재판상 이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 이상 그와 지지부진한 논쟁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그 당시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는 옵션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와 거듭했던 약속 때문이었을까. 그저 "이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사실만이 내 머릿속을 꽉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호기롭게 법률사무소의 문을 열긴 했지만나는 그 이후에도 그에게 소장이 날아가면 그가 올라와서 나나 내 가족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때문에 소송 진행을 결정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어떻게든 알게 될 텐데 그는 이 사실에 어떻게 반응할까. 기다려준다더니 또 말을 바꿨다고 나를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 외에도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결정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었는데 나는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였던지라 이 부분이 특히나 힘들었다. 그렇게 소송 진행까지도 두어 달이 소요되었다.
소송 시작 전후로 나는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했고 이때 불시에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이 무서워 당장 취업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지금 발버둥 치지 않으면 평생 취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나를 덮쳐왔다. 그렇게 상태가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마다 꾸역꾸역 이력서를 작성하여 몇 군데에 넣었다.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괜찮은 조건으로 붙은 기업이 있었으나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갈까 말까 며칠간 고민을 하다 역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가겠다고 입사 확정 의사를 밝혔는데 그다음 날에는 역시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입사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또다시 포기한 것을 미친 듯이 후회했다. '너 같은 애를 받아 줄 회사가 또 어디 있을 줄 아냐,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기회를 걷어차면 어떡하냐'고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렇게 나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감정 기복에 이상을 느끼며 정신과를 찾아갔고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병행하던 중 나는 동아줄을 부여잡듯 또 다른 직장을 한 곳 찾아 들어가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업무 스트레스를 견딜만한 상태가 아니었고이때 일과 통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다 보니 살도 오르고폭식증이 심해졌다.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안아줘야 하는 걸 알지만 아직도 거울 속의 달라진 나를 마주하기가 쉽지는 않다.그래도 일을 시작한 덕에 한창 힘들 때의 시간을 혼자 보내지 않을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소송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점에선 감사하고 있다. 이 시기에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집에만 있었다면 나는 끝도 없이 땅 끝으로 파고들었을지도 모른다. 3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나는 회사를 정리하고 나왔다. 회사와 부서 팀장님께는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렇게 그 사건으로부터 약 7개월 후. 소송은 끝이 났고 그와 나의 법적 관계는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아직도 그 일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때때로 무기력에 휩싸여 하루웬종일 이불속에서 보내다가, 또 어느 날은 전처럼 활기차게 여러 일을 시도하다 또 다른 날은 지나치게 활력이 넘쳐서 감당 못할 일들을 벌리다 그다음 날 다시 후회하며 수습하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사회에서는 알아주지 않을, 또 공개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비어버린 공백기 1년이다. 인생은 길고 또 그 안에서의 1년은 짧다는 것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나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는있지만기약 없는 회복과 점점 더 길어질 공백기에 때때로 불안이 치고 올라온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걸까. 지금은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또한 맘처럼 쉽지가 않다.
나의 스물여덟, 일기장 속에만 담아두기에는 아까운 일들이 있었기에 부끄럽지만 이곳에 글을 적는다.처음 겪는 감정들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치열하게 발버둥 쳤던 지난 1년. 그 1년에 대한 두줄평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