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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Nov 12. 2022

스물여덟, 그래도 이렇게 나는 살아간다



그 일이 있은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아직도 그 일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때때로 무기력에 휩싸여 하루웬종일 이불속에서 보내다가, 또 어느 날은 전처럼 활기차게 여러 일을 시도하다 또 다른 날은 지나치게 활력이 넘쳐서 감당 못할 일들을 벌리다 그다음 날 다시 후회하며 수습하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기차를 타고 올라온 나는 집에 가기 전에 먼저 법률사무소에 들렀다. 이제는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미안함도 사라진 상태였다. 법률사무소들어가 재판상 이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 이상 그와 지지부진한 논쟁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당시 그를 경찰에 신고한다는 옵션은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와 거듭했던 약속 때문이었을까. 그저 "이 관계를 끝내야 한다."는 사실만이 내 머릿속을 꽉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호기롭게 법률사무소의 문을 열긴 했지만 나는 그 이후에도 그에게 소장이 날아가면 그가 올라와서 나나 내 가족에게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소송 진행을 결정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소송을 진행하게 되면 어떻게든 알게 될 텐데 그는 이 사실에 어떻게 반응할까. 기다려준다더니 또 말을 바꿨다나를 몰아붙이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그 외에도 소송을 진행하기 위해 결정해야 할  몇 가지 사항들이 있었는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태였던지라 이 부분이 특히나 힘들었다. 그렇게 소송 진행까지도 두어 달이 소요되었다.



 소송 시작 전후로 나는 주중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야했고 이때 불시에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이 무서워 당장 취업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 발버둥 치지 않으면 평생 취업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나를 덮쳐왔다. 그렇게 상태가 조금이라도 괜찮을 때마다 꾸역꾸역 이력서를 작성하여 몇 군데에 넣었다.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괜찮은 조건으로 붙은 기업이 있었으나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갈까 말까 며칠간 고민을 하다 역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 가겠다고 입사 확정 의사를 밝혔는데 그다음 날에는 역시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며 입사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은 또다시 포기한 것을 미친 듯이 후회했다. '너 같은 애를 받아 줄 회사가 또 어디 있을 줄 아냐, 언제 다시  지 모르는 기회를 걷어차면 어떡하냐'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렇게 나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의 감정 기복에 이상을 느끼며 정신과를 찾아갔고 '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병행하던 중 나는 동아줄을 부여잡듯 또 다른 직장을 한 곳 찾아 들어가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업무 스트레스를 견딜만한 상태가 아니었고 이때 과 통근에서 오는 스트레스 먹는 것으로 풀다 보니 살 오르고 폭식증이 심해졌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안아줘야 하는 걸 알지만 아직도 거울 속의 달라진 나를 마주하기가 쉽지는 않다. 래도 일을 시작한 덕에 한창 힘들 때의 시간을 혼자 보내지 않을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 소송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점에선 감사하고 있다. 이 시기에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집에만 있었다면 나는 끝도 없이 땅 으로 파고들었을지도 모른다. 3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나는 회사를 정리하고 나왔다. 회사와 부서 팀장님께는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이 크다.


그렇게 그 사건으로부터 약 7개월 후. 소송은 끝이 났고 그와 나의 법적 관계는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




그 일이 있은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 간다. 나는 아직도 그 일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때때로 무기력에 휩싸여 하루웬종일 이불속에서 보내다가, 또 어느 날은 전처럼 활기차게 여러 일을 시도하다 또 다른 날은 지나치게 활력이 넘쳐서 감당 못할 일들을 벌리다 그다음 날 다시 후회하며 수습하는 그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회에서는 알아주지 않을, 또 공개할 수도 없는 말 그대로 비어버린 공백기 1년이다. 인생은 길고 또 그 안에서의 1년은 짧다는 것을,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나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 기약 없는 회복과 점점 더 길어질 공백기에 때때로 불안이 치고 올라온다. 앞으로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걸까. 지금은 쉬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한 맘처럼 쉽지가 않다.




나의 스물여덟, 일기장 속에만 담아두기에는 아까운 일들이 있었기에 부끄럽지만 이곳에 글을 적는다. 처음 겪는 감정들에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치열하게 발버둥 쳤던 지난 1년. 그 1년에 대한 두 평을 남기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쨌든 이렇게 살아지는구나.'




'앞으로도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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