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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Oct 25. 2022

어떻게 하면 "잘" 헤어질 수 있을까

협의이혼을 향한 난관들


엄마가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날 밤. 나는 이어서 혼인신고 외에도 그가 투기로 빚을 졌다는 사실 까지도 이혼을 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내 마음 상태까지도 모두 털어놓았다. 이전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이혼을 하는 쪽으로 생각이 많이 기울긴 하였으나 마음  있는 죄책감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던 것이다.


"엄마 나 솔직히 지금 이렇게 끝내려 하는 게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 내가 이혼하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아니면 함께 가기로 했으니 믿고 기다려주는 게 맞는 거야?"


이에 대해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했다.


"너 지금 제정신이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걔랑 있어서 행복해? 당연히 끝내는 게 맞는 거지 얘좀 봐 정말..."



더 이상 내 판단을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나는 엄마와 친구. 두 사람의 지지 덕분에 '그래. 끝내는 게 맞기는 한가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미 내 사고 회로는 어딘가 단단히 고장 나 있고 특히 스스로의 판단력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순간 내 곁에는 나의 판단을 도와줄 사람들이 곁에 있었고 이혼이라는 판단 그다음은 어떻게 그를 설득할지가 문제였다.



 이 즈음부터 나는 그의 자살 관련된 협박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호히 끝내자는 말을 이어갈 수 있었다. 더 이상 협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협박 대신에 다른 수를 두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쉽게 끝내려고 결혼을 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끝낼 때 끝내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일단 함께 3개월을 살아보고 그래도 아니면 이혼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나는 그 제안을 듣고 또 머리가 아파왔다. 그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은데 이 관계를 끝내기 위해서는 그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아이러니함이라니. 게다가 3개월은 너무 길었다. 그와 함께 보냈던 지옥 같은 일주일이 떠올랐다. 나의 귀중한 세 달이라는 시간을 그의 옆에서 시체처럼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그는 순순히 이혼을 해주지 않을 터였다. 그저 그 기간을 보내기만 하면 정말 이 관계를 끝낼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역시 3개월은 너무 길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 타협점을 찾기 위해 그와 몇 시간이고 통화를 하던 중 나는 한 달을 제안했고 그는 고민 끝에 알겠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다음날부터 함께 살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돌며 방을 알아보기 시작하였다. 하나는 변함없이 그였다. 나 또한 그곳에서 생활할 때 쓸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터넷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하루정도 흘러 그다음 날 밤이 찾아왔을 무렵.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불안한 감정이 나를 덮쳐왔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 내가 가서 한 달을 산다고 할 지라도 그 사람이 또 말을 바꿔버리면? 지금까지 말을 수없이 바꿔왔던 그인데 그 말을 어떻게 믿지?'. 한번 시작된 불안과 의심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또 안 가겠다고 말하면 나는 내가 뱉은 말을 지키지 않수도 없이 결정을 번복하는 사람이 되어버릴까 봐 그게 또 두려웠다. 머릿속이 또다시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런 감정을 가지고 그와 함께 살러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에게 못 가겠다고 말을 했고 아니나 다를까 비난이 쏟아졌다.


"아니 왜 자꾸 이랬다 저랬다하냐고. 부동산에도 다 전화해서 실제로 방도 알아보고 있었는데 왜 자꾸 결정을 번복해? 왜 자꾸 말을 바꾸는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더 작아졌고 움츠러들었고 또다시 스스로에 대한 불신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가지는 않을 것이었다. 진작에 엄마나 친구에게 의견을 물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지경이 되고서야 이 얘기를 공유했고 둘 다 "어차피 끝내는 마당에 살아봐서 뭐하냐.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라고 말해 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그와 협의이혼을 할 수 없을 터였다. 협의이혼이 아니라면 재판상 이혼을 알아봐야 할 텐데 비용과 시간을 고려했을 때 그렇게까지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애시당초 한 달만 같이 살아보자는 그의 의견에 동의했던 것도 재판상 이혼까지 끌고 갈 바에야 싫어도 한 달만 버티고 협의이혼을 받아내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각에서였다. 하지만 함께 한 달을 보낸 이후에 그가 약속한 대로 협의이혼을 해 줄지가 확실 않은 것 문제였다. 그는 이미 나의 신뢰를 저버린 지 오래였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를 믿을 수 없었나는 같이 살지 않겠다는 의견을 강력히 피력하고 다시 이혼을 요구했다.  그 후 그부부상담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들고 왔는데 몇 회기에 걸쳐서 부부상담을 받고 난 이후에 그래도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 그때 가서 이혼을 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함께 사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아 보이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경우 매일 상담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주 1회 같은 빈도이기에 또다시 두세 달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다는 게 문제였다. 그리고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이 시기의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지옥 같았다. 낮 시간 동안에는 가족들이 나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혼자 남겨진 매 순간 '내가 혼인신고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후회와 '앞으로도 난 평생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라는 불안이 나를 덮쳐왔다. 생각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누워있어도 티비를 틀어놔도 가만히 앉아있어도 걱정과 불안이 뫼비우스의 띠가 되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고 단 하루라도 빨리 상황을 종결시키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두세 달간 내가 좋아하지 않고 끝내고 싶어 하는 이 사람과 부부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 소름 끼치게 싫었다. 그저 하루빨리 끝내고 싶었던 나와 이 관계를 붙잡고 싶었던 그는 또다시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을 계속하였다. 그는 나를 왜 그렇게까지 잡고 싶었을까. 본인과 함께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을...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는 있었지만 슬슬  혼자의 힘으로는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그의 부모님이 내 머릿속에 스쳤다. 그분들이 이 혼인관계를 알고 계시는지는 모르지만 연인관계든 혼인관계든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끝내고 싶은 상황인데, 그는 때때로 막무가내로 찾아오는 상황이니 설득을 좀 부탁드리면 어떨까 싶었다. 내 말은 안 들어도 부모님 말이라면 조금은 듣지 않을까.


그의 부모님께 연락하여 설득을 부탁드렸고 헤어지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시기에 나는 성격차이라고 간단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그가 말없이 찾아오는 상황이 불편하기에 이런 상황만이라도 벌어지지 않게 아드님을 설득해 주실 수 있겠냐고 여쭈었다.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으셨으나 곧이어 아들이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 같기에 둘 사이의 관계는 둘이 알아서 정리하는 게 맞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둘이서 시작한 관계이니 둘이서 정리하는 게 맞다고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녹록지 않아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무렵. 엄마에게 이 상황을 공유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 아이와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그 아이 부모님께 빚에 대한 사실을 알리는 것이 맞다는 말씀을 하셨다. 적은 액수도 아닌데 혼자서 감당하려고 하다가 되려 사채를 끌어다 쓰는 등 더 일이 커지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듣고 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고 얘기를 드림으로써 상대방 부모님 측에서 내가 헤어지려는 이유에 대해 더 잘 납득하시고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와 그 얘기를 나눈 다음날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기 위해 그의 버지께 전화를 드다.


"저기 사실.. 제가 헤어지고 싶은 데에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가?"



"그게..."



"혹시 돈 문가..?"



".... 예..? 네.. 맞습니다."


그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돈문제냐고 먼저 물어보셨고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곧이어 액수는 얼마인 지 물어보셨고 액수 또한 말씀을 드렸다. 그 말을 들으시곤 잠시 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알겠다고 대답하신 후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서너 시간 이 지났을 무렵,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 여보세요?"



"아이고 00아... 어쩌면 좋냐... 어쩌면 좋아.."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취기 가득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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