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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늘바람 Oct 02. 2019

육체와 나 02

손이 아프다_2019 가을

  올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즈음부터 한 달 넘게 손이 아프다. 


  오른 손목 안쪽의 손목이 구부러지는 부근으로 뭔가가 몽글몽글하니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여드름 정도로 작았다가, 어느새 점점 커지더니 사탕만큼 혹이 올라왔다. 그리고 손목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시작했다. 

  봄부터 시작한 목공예 일과, 한지를 뜯어 붙이는 그림책 작업, 매일 2~3장씩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 그리고 일상적으로 반복되어야 하는 모든 집안일이 원인이었겠다. 가끔 허리가 아프고 가끔 손가락이 저리긴 했어도 이렇게 아팠던 적은 처음이다. 


  손이 아프다. 너무 아프다. 아픈 것은 나를 슬프고 힘들고 우울하게 만든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는 얇은 주사 바늘로 콕콕 튀어나온 혹을 찔러서 물집을 터뜨리듯이 치료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그대로 다시 똑같은 사탕만큼의 혹이 생겼다. 이제는 너무 아파서 손목을 안으로 구부릴 수도 없었다. 모든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글씨를 쓰는 일, 설거지, 고양이 똥 치우기, 샤워 등등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병원을 가는 건 정말 두려웠다. 주사기가 손목을 뚫고 들어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가야 했다. 


  두 번째는 다른 병원을 선택했다. 집 앞에 있는 5층짜리 정형외과였다. 수술도 하고 입원도 하는 큰 병원이었다. 의사 선생님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이 병원에서도 또 주사기로 혹을 뽑아냈는데 첫 번째 병원보다 더 큰 주사기였고, 그냥 찌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심지어 혹을 눌러서 여드름 짜듯이 짜냈다! 너무 아파서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뛰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날 이후로 목공예 일을 하던 곳의 대표님께서 일을 그만두었으면 하는 의사를 밝히셨다. 아. 나는 정말로 우울했다. 간만에 좋은 사람들과 손으로 하는 좋은 일을 찾았는데 나의 거지 같은 손목 때문에 그만두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겨우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두 번째 치료를 받고 혹의 이름도 알았다. 결절종이라는 놈이었다. 인터넷에는 원인도, 예방법도, 무엇도 명확하지 않다고 나와있었다. 이제는 아프고 상처나도 완벽하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다친 곳은 고쳐서 쓰고 아껴서 쓰고 조심하고 그래야 한다. 어린 시절처럼 언제 부러졌는지도 모르게 재생되지는 않는다. 

  없던 병도 생긴다. 생리통도 심해지고 배란통도 생겨서 한 달에 이틀 이상은 꼼작 못하는 날이 정해져 있다. 고소공포증도 생겼다. 긁히고 딱지가 난 자리는 몇 년씩 새살이 올라오지 않기도 한다. 정신도 그런 것 같다. 강박증과 불안증이 한 번씩 찾아오고, 심장이 뛰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날이 며칠이고 지속되기도 한다. 한번 상처 받은 정신은 잘 아물지 않고 문득문득 아려온다. 나는 그저 온전히 지금을 바라보지 못한 지 꽤 오래다. 


  다시 손목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또 재발했다. 세 번째로 다시 혹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더 커졌다. 이번에는 더 아팠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나는 병원을 갈 수가 없었다. 그림책 작업을 마무리하고, 컴퓨터로 편집을 한 후에 출판사 네 곳에 보내야 했고, 내년 1월 예정된 공연의 대본을 수정해주기로 이미 작가료를 받은 상태였다. 이렇게 할 일이 쌓여있는데 치료를 받으면 또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까 2주 정도 치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일을 마치고, 세 번째로 병원을 갔다. 의사 선생님은 또 올라왔냐면서 '이거 어쩌면 수술해야겠는데'라고 말씀하셨다. 아. 나는 정말로 엄살이 심하다. 수술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인데 갑자기 쓰러질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주사 바늘이 들어가는 순간 머리통 전체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얼굴이 축축하게 젖어 땀범벅이 되었다. 치료하는 과정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고개를 돌린 채로 식은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대화를 들었다. '너무 딱딱해졌네', '여기를 더 꽉꽉 눌러서 짜 봐', '누런 게 나오네', '너무 딱딱해'.

  아. 나는 정말로 이게 현실의 대화인가 싶었다. 이게 정말로 나에게 일어난 현실의 일인지 꿈인지 전생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안 되고 눈 앞이 흐려지고 어지러웠다. '수술해야겠는데. 또 이러면 그냥 다 도려내야겠어.'


  아, 선생님. 저는 손목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다고요. 일을 그만뒀는데 병원비는커녕 당장 다음 달 월세부터 어떻게 감당하죠. 그런데 수술이라니요. 선생님.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오른손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있나요. 저는 오른손잡이이고 머리가 나빠서 수시로 메모를 해야 해요. 저는 컴퓨터로 타자도 쳐야 하고 고양이 똥도 치워야 하는데요. 선생님, 살 빼려고 헬스 겸 필라테스도 등록했는데요, 필라테스에 바닥을 손으로 짚는 동작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아아. 선생님. 진짜 아파요. 


  나는 이 모든 말을 신음소리로 대신했다. 의사 선생님은 울었냐며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아니요, 그냥 땀이 너무 나요. 간호사 선생님들은 어지러우면 누워있다가 가라고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고 말하고 병원을 나와 잠깐 주저앉았다. 그리고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남편이 김치랑 깍두기랑 새우젓을 집어주었다. 아파서 좋은 점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다가 허망하게 웃었다. 순댓국이 정말로 맛있었다. 태어나서 먹은 순댓국 중에 제일 맛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베트남으로 떠났다. 베트남에 가서는 밥도 사먹고 빨래도 호텔에 맡기고 청소도 다 해줄 거야. 2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베트남에서도 컴퓨터로 일을 하고, 손으로 일기를 쓰고, 그랬다. 

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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