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지옥철에서 있었던 일_2019 1월
몇 개월간 강남으로 학원으로 다닐 때의 일이다.
아침저녁으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비즈니스 구역인 강남역으로 출퇴근을 하다 보니, 나도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한 부분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회가 움직이는 가장 한복판의 작은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
매일 가장 혼잡한 시간의 지옥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노선으로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이 익숙해졌다. 유니폼을 입고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저 사람도 힘들겠구나, 우리 모두가 다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거구나, 라는 연민은 암묵적인 지옥철 안의 '룰'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매일 그 시간의 지옥철을 타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예를 들자면, 당시 내가 살았던 곳인 분당선 태평역은 왼쪽 문이 열린다. 두 정거장이 지나면 복정역인데 이곳은 8호선 환승역이다. 그리고 오른쪽 문이 열린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른쪽 문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을 무의식적으로 비켜주게 된다. 복정역에서 타는 사람들은 도곡역에서 3호선으로 환승하지 않는 이상 안쪽으로 들어온다. 왜냐하면 이후 분당선은 도곡역까지 계속 왼쪽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내릴 곳을 가늠해서 자리를 잡고 선다. 앉을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자리에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가끔 이러한 지옥철의 일부가 아닌 사람들이 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마치 우리 차에 이방인이 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매일 이 차를 타는 우리가 정해놓은 암묵적인 룰을 방해받는 기분이다.
선릉역에서 있었던 일이다. 선릉역은 2호선과 분당선으로 환승할 수 있어서 가장 혼잡하기도 하고 지옥철의 룰에 익숙한 직장인들이 가득한 역이다. 그 안에 룰을 알지 못하는 한 아주머니가 들어섰다. 우리는 선릉역 이후 한티, 도곡, 수서까지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이동하는 그 흐름을 평소대로 이어갔다. 도곡에서 내릴 사람은 오른쪽 문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왼쪽 문과 그 근처의 복도에서 각자의 자리를 잡는다. 하지만 아무도 노약자 석에 앉지 않는다. 빈 노약자석을 발견하고 아주머니는 사람들을 헤집고 거칠게 들어섰다. 우리는 결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지쳐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번 역에서 내가 이동하기 위해 결코 다른 사람을 헤집거나 밀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오늘 아침에도 함께 이 지하철을 타고 왔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친 퇴근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칠게 행동한다. 룰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내릴 곳을 놓치거나, 저 빈자리를 놓치게 될 거라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그 사이에 작게 실랑이가 붙은 모양이다. 한 남성은 자신이 내릴 곳에 맞추어 왼쪽 문 근처에 서 있었는데, 그 자리는 마침 노약자 석 근처였고, 아주머니는 그 남성이 비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화를 내기 시작했다. 퇴근길의 지친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 심한 일이었다. 우리는 무리해서 차를 타려고 사람을 밀지도 않고, 중요한 업무 전화는 조금 시끄럽더라도 양해해주고, 내려야 할 사람을 위해서 조금씩 길을 터준다. 우리는 그렇게 지하철을 이용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자신이 앉아야 할 자리를 놓칠세라 남성을 타박했고, 노인을 무시하느냐는 말을 꺼냈다.
아주머니의 나이대는 약 60대로 추측할 수 있었고, 그렇다면 8~90년대 하루하루 눈을 뜨면 변하는 세상에서 청춘을 보냈을 터이다. 다이내믹 코리아, 은행이자 15%는 우습게 보이던 버블 경제의 시절, 매일이 빠르게 달라지고 그 안에서 나만 뒤쳐지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은 '빨리빨리'라는 한국 고유의 성격을 만들어냈다. 자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이러한 성격과 겹쳐지며 행동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자리를 차지하고도 아주머니는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해서 남성에게 소리를 질렀다. 사진을 찍겠다며 스마트폰을 흔들어대다가 실제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남성은 덤덤한 표정으로 찍으세요, 올리세요,라고만 말했다. 우리도 다들 지쳐서 아무도 아주머니를 말리지 못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그 상황에서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말을 했다.
"지금 여자라고 무시하는 거야? 내가 연약한 여자로 보여?"
나 역시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여자라서 느끼는 불공평함에 대해 평소 다른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나의 경험상, 남성이 더 존중받고 남성의 말이 더 강력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집단에서 생활한 적이 많기 때문에 여권 신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어째서?
아주머니는 단지 자리에 앉기 위해 지옥철의 사람들을 거칠게 헤집고 나아간 것뿐이고 그 상황에서 시비가 붙은 것인데 거기서 어째서 여성 차별이라는 발언이 나오는 것인지?
우리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확신한다. 저 사람이 여성이라서 무시했다거나 길을 비켜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날 그 칸에 탄 사람 중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아직까지 페미니즘은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다. 우리의 페미니즘은 아직 거칠고 공격적이고 자괴감을 갖고 있다. 자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온라인상으로 발전된 페미니즘의 경우 그러한 성격이 더욱 도드라진다. 그것은 나쁜 것이지만 거쳐야 할 과정이다. 아직 시작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은 완전하지 못하다.
카드 뉴스를 보았다. '수첩 공주'라는 말은 여성이기 때문에 비하하는 표현으로 붙인 별명이라고, 남성 대통령에게는 'A4 왕자'라는 별명을 붙이지 않는다고.
우리의 페미니즘은 아직 거칠다. 자학적이거나 괴상한 방식으로 온라인상에서 표출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은 범죄자를 위해서는 결코 이용되지 않을 것이다. 남성, 여성을 떠나 범죄자를 위한 논리로서 발동할 수 있는 논리는 범죄 피해자들의 허락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거기엔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없다.
짧은 몇 개월의 시간이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의 지옥철을 타고 다녔던 동료들과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던 암묵적인 룰, 서로에 대한 연민, 우리만 느낄 수 있었던 그 공감대가 바로 이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산업도, 기업도 아닌 우리가 함께 느꼈던 그 마음이 바로 우리나라의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지옥철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2019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