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는 것들

by YUN

매일 같은 시간이면 나오는 환경미화원 아저씨, 한쪽 어깨에 백팩을 걸치고 쓰레기를 줍는 아저씨, 분리수거통을 확인하는 아주머니, 출근하는 시간이면 교회 앞에 북적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등교 시간이면 들리는 호루라기 소리, 5월이면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장미, 시멘트 사이에 피어난 들꽃, 지하철을 향해 갈 때면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곳에 누워있는 뚱냥이들


봄이든 여름이든 계절과 상관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인지하지 못하면 그저 지나치기 쉬운, 찰나의 기억일 수도 있다. 과거의 내가 그랬다. 출근하면서 퇴근하면서 보았고, 산책하면서도 봤지만 스치듯이 지나칠 뿐이었다. 이렇게 본 기억은 깊게 남지 않고 아주 짧게 머무르다 이내 사라지고 만다.


인지하려고 노력하거나 애쓰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모습이, 길가의 사람들이, 귀여운 동물들이, 예쁘게 피어난 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올해 여름부터였을 것이다. 한 번은 저녁 산책을 하러 가는데 저 멀리 아저씨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은 길 위의 쓰레기를 줍고 계셨고 그 이후로 같은 시간대가 되면 항상 비슷한 모습으로 길 위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문득, 저분이 저렇게 쓰레기를 주운 지 오래됐던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아, 이분은 내가 산책하는 때에 혹은 퇴근하는 길에 자주 마주쳤던 분이구나’를 깨달으면서 내가 얼마나 주위를 보지 못했던 사람이었는지, 딱 눈앞만 보고 살았던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나 왜 이렇게 여유 없게 살았지’ 싶어 아주 살짝 우울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분에 대해 궁금해졌다. ‘왜 쓰레기를 줍는 걸까’로 시작했고, 아주 덥거나 추운 날에 보지 못하거나 며칠 연속으로 만나지 마주치지 못할 때는 ‘무슨 일이 있으신가, 왜 안 나오시지’ 하며 걱정을 했고, 그러다 마주치면 ‘별일이 없었나 보다’하며 혼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혼자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뿌듯하기도 했다. 다른 어딘가에 관심을 보일 줄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었기에. 그 아저씨를 시작으로 주변이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동네의 반짝임을 담당해주는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였고, 또 어느 날은 편의점 주인이 건네는 사이다를 마시며 잠시 쉬는 모습도 보았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평범한 그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자꾸만 눈길이 갔다.


시간이 점차 흐른 뒤에는 집에서 키우는 선인장과 스투키, 바질을 열심히 보기도 했다. 너무 더운 날이면 엄마는 ‘너네도 덥겠다’ 하며 물을 주며 화분을 그늘로 옮겨두었고, 겨울이면 집 안으로 화분을 모두 들여왔다. 나는 가끔씩 물을 주면서 계절에 따라 말라가는 스투키를 보기도, 꽃을 피우는 바질을 보기도, 새로운 선인장이 고개를 내미는 모습도 보았다.


쪼그려 앉아서 화분을 지켜보고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예전에도 이랬던 것 같았는데, 근데 난 왜 처음인 것 같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마음에 여유가 돌 때 한 번씩 키우는 식물들을 보곤 했다.


일을 시작하면서는 전혀 시선을 주지 못했는데, 식물들은 엄마의 보살핌 아래 꿋꿋하게 잘 살아남고 있었다. 그 식물을 보면서 계절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주 더운 여름에는 너무 덥다며 선풍기를 틀고 가만히 누워있기도, 갑자기 추워졌을 땐 너무 춥다며 옷을 겹겹이 껴입기도 했다. 온도가 미세하게 변하면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이제야 제대로 삶이 굴러가는 것 같았다.


과거와 다르게 변한 나는 지금이 꽤 마음에 든다. 이제야 비로소 ‘넌 괜찮아지고 있어’라며 확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시점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나를, 주변을, 계절을, 소리를, 풍경을 바라보고 즐길 줄 아는, 그 속에서 위안을 얻기도 쉬어가기도 할 줄 알게 된 것 같다. 흐르면 흐르는 대로 사는 지금의 나는 방향에 맞게 제대로 흘러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다. ‘처음 왔을 때랑 많이 달라졌어요, 표정도 말도 분위기도’ 그 말을 듣고 난 후에는 아리송했는데,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해보니 그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맨 처음 ‘WANT’를 찾아왔을 땐 긴장으로 쪼그라들어(?) 있었고, 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하는지도 몰랐고, 내 이야기를 할 때면 눈물이 툭툭 터져 나왔는데. 4개월이 흐른 지금은 눈물이 터져 나오지도, 처음처럼 긴장하지도, 신경이 곤두서 있지도 않다.


아마도 일기를 쓰면서,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글로써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변화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긍정적인 신호로 느껴져 설레기 시작한다.


과연 나는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도 어리고, 어리숙하고, 거절도 잘 못하고, 타인에게 상처도 잘 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아지고 있다. 조금씩 나라는 사람에게 더 가까워질 것이고, 머지않아 상처를 완전히 툭툭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확신 비슷한 ‘희망’의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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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와 같은 성장통을 겪고 있다면, 너무 힘들어서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면, 잠깐 쉬어 가보는 건 어떨까요, 스스로 가장 필요한 건 아주 느린 마음으로 나를 이해해보는 것과 ‘쉼’을 허락해주는 일일지도 모르니까요. 멈춰있어도 돼요. 멈춰있다고 내 인생이 망하지도 지구가 부서지지도 일생일대의 기회가 날아가지도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에게도 분명 따뜻한 날이 찾아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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