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니었더라

by YUN

몸과 마음이 힘들 때, 특히 마음이 힘들 때는 그 상황에 압도되어 주변은 깜깜했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외로웠고 슬펐고, 누군가를 믿기 어려웠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주변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혼자인 적이 없었다는 것. 항상 주변에는 나를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고 나면 집에는 늘 가족들이 있었다. 내가 내 감정을 못 이겨 말을 쏟아낼 때면 묵묵히 그 이야기를 들어줬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말에 긍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꽤 힘이 됐다.


3년 전, 나의 답답한 마음을 토로할 때면 진심으로 듣고 걱정해주던 친구 Y, 선배 작가의 문제로 지칠 때마다 프로그램을 같이한 AD들은(J&H) 자신들의 편집방에 와서 쉬다 가라며 나에게 그들의 공간을 선뜻 내어줬다. 아무런 대가 없이 베푸는 그 마음이 너무 따뜻했다. 언제나 내 편에서 이야기해줬고, 이해해주었다. 그것만큼 위로가 되는 일이 없었다. 아마 이들이 없었다면 나는 더 처참하게 무너졌을 것이다.


혼자 방송작가의 길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할 때, 여유가 어떤 건지 몸소 보여준, 나를 다독거려준 D작가님 덕분에 다시 한번 도전해볼 용기를 얻었으며, 그 덕분에 H작가 언니도 만날 수 있었다.


가장 고마웠던 H작가 언니는 내게 옳고 그름을 알게 해 준 사람이었다. 부당함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아마도 그녀는 본인이 내게 아주 많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나는 같이 일하는 1년의 시간 동안 대신 화를 내주고, 냉정하게 판단해주고, 나의 고민을 들어주며 내가 생각하지 못한 답변을 주는 모습을 보며 사회생활을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고, 닮고 싶었다. 일하는 동안 가장 큰 버팀목이었던 이 귀한 사람이 내 곁에 있어줬다는 사실이 너무도 고마웠다.


H작가 언니를 만날 때쯤 함께한 작가 E도, 두 번째 프로그램에서 만난 작가 K도, 기분 좋은 자극을 주고, 나이에 상관없이 배워야 할 점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 준, 자신의 일을 너무 훌륭히 해나가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부족한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거침없이 내밀어주어 고마운 아이들.


그리고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던 나의 친구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지만, 유독 서로 퉁명스러운 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걱정한 나의 16년 지기 친구 D와 무슨 이야기를 꺼내면 ‘뭐야, 뭐야’하면서 언제나 관심을 쏟아준 11년 지기 S와 N.(과거 선배 작가가 ‘친구들은 너랑 말 안 통한다고 안 하냐’라는 물음이 마음에 남아 11년 지기 친구 S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S는 그런 적 없다며,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을 해줬다. 출장 중이라 마음에 여유가 없었을 텐데, 그 말이 내 마음에 남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다)


이렇게 차분히 적어 내려가다 보니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제야 또렷하게 보인다. 이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았다. 정확히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보이는 지금 ‘난 정말 많이 괜찮아졌구나, 회복이 되었구나’라는 걸 체감한다.


누구에게나 힘든 순간은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은 지독하게 길게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그럴 땐 도망가는 일 조차 쉽지 않다. 주변에서 아무리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도 내속에서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를 수없이 외쳐서 그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정말로, 도망을 갈 용기가 생겼다면 있는 힘을 다해 뛰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상황을 벗어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18년도 선배 작가와의 일이 있고 회사를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든 생각은 더 빨리 나왔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랬다면 ‘회복의 시간이 이토록 오래 걸리지 않았겠지’라는 생각이 항상 머물렀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 일이 있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나는 소중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내게는 소중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직업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도 얻게 됐다.


선배 작가와의 일을 통해, 3년간의 지독한 성장통을 통해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혹시라도 내게 3년 전일이 반복된다면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나는 나의 보호자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는 것.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나는 그때 그 힘없는 아이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봐 준다는 건 많은 힘이 된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를 내가 응원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얼굴모를 낯선 이의 응원을 받고 있는 당신은 그만한 가치가 있고 빛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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