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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1인기업 창직 11.

Chapter 4. 지치지 않아야 오래 간다.

by 권경민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공부도, 일도, 노는 것 조차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이고, 그 시작이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기 전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하고 찾아내라고 조언해야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고, 잘 하는 일은 무엇인가, 혹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찾아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것’을 혼돈하면 안 된다. ‘잘하는 것’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은 것’과 혼돈해서도 안 된다.


어린 나이에 어떤 분야에서 남들 위에 우뚝 선 이들을 보면, 그 들의 피나는 노력도 대단하지만, 어린 나이에 그들의 흥미와 재능을 찾아내 준 부모들이 대단하게 생각된다. 피겨 스케이팅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음악의 길로 인도 하려하거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영어, 수학만 강요한다면 그 아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어린 학생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그들의 흥미와 재능을 찾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줄 수 있지만, 이제 서른이 넘은 성인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내면을 읽고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 하는 분야는 무엇인지, 지치지 않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것들 것 무엇인지를 스스로 정의 내려야한다. 더욱이 은퇴를 앞둔 중년 퇴직자라면 그 간의 인생의 자취와 경로를 통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한다. 인생 이모작, 삼모작, 100세 시대라는 오늘 날에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이 길고도 긴데,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해야 지, 당장 가족의 생계가 걱정되고 한 두 달의 공백이 불안하고 두려워서 섣불리 남의 말 듣고 결정을 내리면, 자칫 다시 일어나기 힘들 정도로 주저 앉는 수가 있다. 1회에 다운된 선수는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지만 12회에 쓰러진 선수는 다시 일어나 싸우기가 쉽지 않다.


직장을 떠나기 전, 창업이나 창직을 고민하기 전에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해서 ‘밥벌이’를 하고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좋아하는 일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필자도 학창시절에 원고지에 글짓기, 감상문 몇 장 써서 내는 것도 고문이었다. A4 용지에 빼곡히 적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실상 한 장에 몇 자 들어가지도 않는 원고지를 채워 나가는 것이 어찌나 하기 싫고 힘들었던지… 방학이면 여지없이 방학숙제로 나오는 독후감이나 감상문은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다고 이런 숙제를 내줄까?”라며 입이 툭 튀어나오곤 했었다.


1990년대 말, 그 당시만 해도 어느 집이든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그 당시 가장 구독률이 높았던 일간지는 조선일보였고, 그 당시에는 독자들의 의견을 투고하면, 하루에 몇몇 독자의 글을 선정하여 한 두 단락의 글을 소개하거나 아니면, 아예 한 명의 글을 선발하여 독자 컬럼으로 독자의 사진과 함께 소개되는 지면이 있었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와서 신문을 보다 갑자기 독자 컬럼에 투고를 하고 싶어 졌다. 선진국에서 느꼈던 점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통 운전 문화에 대한 컬럼을 투고했고, 지면에 사진과 함께 소개가 되었다. 몇 달 후 상대방을 배려하는 문화에 대한 컬럼을 미국에서 호텔 근무 중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투고를 했는데, 그 두 번째 글 역시 독자 컬럼에 소개가 되었다. 종이 신문을 오려 놓은 두 장의 스크랩을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글쓰기를 좋아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무슨 연유에서 인지 글을 투고하고 싶었고, 투고한 두 건의 글이 모두 메이저급 신문사에 소개되니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로 작가로 나가라며 농담을 던지곤 했다. 왠지 마음속 한구석에서 작가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현업의 일상으로 돌아오며 작가의 꿈은 까맣게 사라졌다.


영어 학원을 차리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생들과 토론하고 강단에서 혼신을 다해 강의를 할 때는 정말이지 희열을 느꼈다. 학원이 워낙 잘 되고 한 타임이라도 더 강의 스케줄을 잡기 위해 식사 시간도 없이 매일 강의 중간 쉬는 시간에 김밥 한 줄로 식사를 대신했다. 아이들의 성적이 올라가고, 대원외고 한영외고를 진학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고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그 시절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세계로 뻗어 나가는 외식 프랜차이즈의 대표가 되는 꿈을 꾸고 있던 필자는, “박수 칠 때 떠나라”고 잘나가던 학원을 정리하고 외식사업을 하러 다시 미국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만 말이다.


만 2년, 햇수로 3년만에 인생의 지옥을 맛본 필자는 결국 모든 것을 정리하고 다시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 다시 강사 없이 혼자서 영어 교습소를 차려 원장직강 수업만으로 재기에 성공하고, 학원을 확장하여 이전했다. 학원이 자리가 잡히고 다시 한 번 ‘외식 프랜차이즈 성공한 CEO’가 되고 싶었던 필자는 지인과 동업으로 이태원에서 수제 햄버거, 수제맥주 전문점을 20평도 안되는 가게에서 시작을 했고, 매장 오픈 5개월 만에 그 조그만 가게에서 월 매출 1억 2천이라는 믿을 수 없는 신화를 이루어 냈다. 조그만 매장은 오픈 30분 전부터 저녁 8시 30분까지 대기 손님의 줄이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았다. 장사가 잘되고 ‘대박 프랜차이즈’의 꿈으로 한 걸음 씩 다가가고 있었지만, 몸은 엉망이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너무나 지쳐가고 있었다. 바쁜 주말에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나 되어야 첫 식사를 할 수 있었고 화장실을 갈 시간이 없어서, 방광염이 오고 허리의 염좌, 손목 인대가 늘어나고, 무릎 관절에 무리가 와서 쉬는 날이면 병원 신세를 지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병대 출신 20대 청년도 노동의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한 달을 버티지 못할 지경이었다. 거의 직원들이 한 줄로 서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일할 정도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직원을 고용할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꿈만같이 돈이 벌어졌지만, 하루 하루가 행복하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씻고 잠을 청하면 꿈속에서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에 그릴에서 패티를 굽는 꿈을 꾸며 식은 땀을 흘렸다. 아침에 눈을 떠도 다시 전쟁터로 뛰어들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위장병이 오고 소화 장애가 왔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거의 불가능했고 일하고 잠자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매장을 오픈한지 불과 몇 달 만에 방송, 신문, 잡지 등에 연이어 소개되었고, 1년만에 직영점 3개를 오픈했고 아르바이트 직원을 제외한 정규직 직원만 24명에 이르게 되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면서 오픈 초기처럼 미친듯이 화장실도 못 갈 정도의 노동강도를 요구하지는 않았고, 직원들에 의해서도 사업은 돌아가고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잠시 쉬었던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고, 틈 나는 대로 강연 섭외가 들어오면 강의를 하고 방송 출연도 했다. 강의를 나가는 날의 나를 보면 “얼굴 표정부터 다르고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아내의 말을 들으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와도 식당 주방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친 일과를 마치고 밤잠을 줄여가며 강의 준비를 하고 자료조사를 하는 나는 하나도 피곤한 줄 몰랐고 재미있기만 했다. 강의장으로 향하는 마음도 발걸음도 날아갈 듯 가벼웠다. 매장으로 출근할 때의 인상 찌푸림과 과민성 위장 장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제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진정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강단에 선 나와 청중이 하나되어 교감하는 희열을 느끼는 것이었다. 나의 강연에서 청중들이 단 한가지라도 동감하고 교훈을 느끼고 돌아가기를 바라며, 새벽 3~4시까지 준비하고, 강의장을 종횡 무진하며 피 끓는 열정을 토해내며 강의를 하는 것이 내가 진심으로 가장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이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나마 깨우치게 되었다.


결국 동업자들과 지분을 정리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모든 지분을 다 포기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장 1~2년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다시 시작하는 인생 이모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서, 거짓말처럼 몸이 아프지 않았다. 매일 아침 위장병 때문에 고생을 했고, 위장약을 달고 살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민성 위장 장애와 고질적인 설사병이 사라졌다.


미국에서 외식사업의 실패 이후에, “죽어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음식장사는 안 한다”던 나의 다짐을 어기고 다시 시작한 음식장사가 결국 다시 나의 목을 조여 왔던 것이다. 더 큰 돈을 벌고, 더 유명해지고 싶어서 마음속에서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오면서 이제는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 일을 하면서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설계하기로 마음먹었다.



남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영역, 꺼리는 일이 틈새다.


이미 우리나라의 취업시장, 창업시장은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모두 극도의 초 과포화 상태다. 사실상 어떤 일을 해도 이미 기존의 시장 진입자들이 선점하고 있다. 취업시장의 경쟁은 말할 것도 없고 창업 시장도 이미 너무 과포화 되어있다. 임대료는 치솟고 원가, 인건비, 관리비 모든 것이 오르고 있지만, 과도한 경쟁과 온라인의 손쉬운 가격 노출 때문에 정작 판매가는 쉽게 올리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창업이 아닌 창직을 고민해야 하는데 창직의 시작은 남들이 기존에 하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 틈새를 파고드는 것부터 시작이다. 누가 봐도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아이디어는 이미 죽은 아이디어라고 봐야한다. 그런 아이디어라면 이미 시장에서는 경쟁이 과포화 되어있을 태고, 그렇지 않다면 반대로 시장성이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이런 시장 상황에서 틈새를 찾는 길은 남들이 잘 모르는 영역에서 틈을 보거나 아니면 남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에서 그 틈을 찾아야 한다.


창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소매점이나 pc방, 음식점 등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창업에 한 두 번 쓰라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하드웨어 투자가 없거나 최소로 요구되는 창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중고 트럭 한 대 구매해서 도매시장에서 식자재를 구매하여 식당에 공급하는 식자재 배달업을 하는 이들도 많다.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일한 만큼 벌 수 있고, 어지간해서는 최소한 적자는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것도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후불 결재다 보니 가게들이 장사가 안 되면 미수금이 늘어나 사업을 접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조금 더 고민을 해서, 폐식용유 회수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식당의 사용하고 남은 폐기름을 싼값에 처리해 주고, 새 기름을 공급해 주기도 하고, 폐기름을 비누 공장에 다시 되 팔아서 수익을 남기는 것이다. 중고 트럭 하나만 있으면 되고, 외상도 없고 미수금도 없고 적자도 없다. 남들이 잘 모르는 영역에 틈이 있다.


식당을 하다 보면 폐수의 기름기 때문에 하수구가 막히는 경우가 아주 많다. 특히 겨울에는 기름도 빨리 굳고 하구수가 얼어서 막히기도 하고, 식당 입장에서는 하루 영업을 망치고, 고객들을 경쟁 업체에 빼앗기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하수구 청소하는 일도, 일단 한 번 부르면 수 십만원이 쉽게 넘어가고 몇 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는 백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정작 작업을 의뢰해 보면 허망할 정도로 간단한 장비 한 두개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작은 식당 하나 차리려 해도 수 천만원이 금세 없어 지는데, 고작 다 합쳐서 돈 백만원도 하지 않을 장비로 몇 십분 일해서 수 십만원을 받아 가는 것을 보면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차피 아쉬운 쪽은 식당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부르는 대로 가격을 지불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머리를 쓰면, 현장에서 일하는 하수구 배관공 보다 더 쉽게,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온라인에 블로그 포스팅을 장악해서 문의가 들어오면 지역 업자들에게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이들이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플랫폼 비즈니스인 셈이다. 인천 공항 콜벤 기사보다 소비자와 콜벤을 연결하는 업자들, 파출부로 하루 12시간 일하고 9만원 받는 노동자보다 파출부 인력사무실, 목수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심지어는 학원과 학원버스 지입기사를 연결해주는 업자들도 있다. 학원과 버스 지입기사 연결해주고 지입기사 1달 급여를 수수료로 받아간다. 분명한 것은 어느 분야 든 틈새는 존재하고, 불행히도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이 먹이사슬 가장 아래서 가장 적게 벌어간다는 것이다.


위의 예들 말고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지식서비스 창직도 틈새를 잘 파고 드는 것이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음식점에서 죽어라 만든 음식을 눈 비 맞으며 라이더 들이 배달하고, 그 중간의 플랫폼들은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 이미 거대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플랫폼 시장 말고도 틈을 파면 분명히 틈이 존재한다. 남들이 하기 싫어 하거나, 잘 모르는 영역으로 좁혀 들어가야 한다. 맛집 평가 앱들이 넘쳐나니, 유흥업소 정보를 파고 들 수도 있고, 일반 창업 컨설팅에서 고깃집 창업, 맥주집 창업, 양조장 창업 컨설팅 등으로 세분화하여 특화시킬 수 있다.


그냥 광고 대행사가 아니라 주류광고 전문 대행사도 좋은 예다. 주류 광고 같은 경우에 주세법의 제한이 많이 있기 때문에 광고를 집행할 수 있는 채널도 한정되고, 시간도 제한이 있다. 판촉물의 가격도 주류가격 대비 법적 제한이 있고, 술이라는 특성 때문에 일반적인 제품의 홍보와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나라 맥주 시장 규모만 해도 연간 거의 5조에 육박하고 있다. 5조 규모의 시장에서 술에 대한 광고는 주류업계의 생리, 소비패턴, 주세법, 식품위생법등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제대로 된 홍보활동을 할 수가 없다.


이제는 자유여행으로 해외 여행을 나가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일반 패키지 여행사는 더 이상 사업 지속이 불가능 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여행사도 세분화하고 테마를 입혀 특화하고 있다. 오지탐험 여행, 유럽의 농가 체험 여행, 와이너리 체험 여행, 맥주 브루어리 체험 여행 등 일반인들이 개인적으로 할 수 없는 경험을 묶어서 판매하는 여행상품을 내놓고 있다. 또한 해당 테마 전문가들의 강연 상품을 판매하고, 거기서 여행 패키지 매출로 연계시키며, 전문가들과 함께 떠나는 테마 여행도 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몸 담았던 분야에서의 경험과 노하우, 자신의 흥미를 바탕으로 틈을 파면 분명히 아직도 많은 창직의 기회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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