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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를 마주선 나이- 40대

by 아난





나는 마흔이 넘어서 바쳐야 할 목숨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으며,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이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푼돈 서푼짜리 인생이었다 ...
마흔 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40대라는 나이는 혼란이 한번쯤은 닥치는 시기이다. 더이상 젊지도 않고, 그렇다고 제대로 익은 나이도 아니고, 복잡한 가능성은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데, 아직 진정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표면은 어른처럼 보이지만 얼굴만 중후해졌을 뿐 마음과 태도는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하다. 내가 의지하던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하고 내 체력도 예전같지 않다고 느껴지는 시기이다. 어느덧 4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본질적인 것, 원래 가졌던 꿈이나 포부는 쉬이 잊게 되고, 사회생활의 타성에 깊이 젖어드는 때이기도 하다.



IngresOdipusAndSphinx.jpg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푸스 오이디푸스


마흔줄이라는 나이대는 나에게 알 수 없는 어지러움을 주었다. 내 개인적인 삶의 향방에 대한 고민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사회의 지형이 가파르게 바뀌어나가는 것을 목도하며 앞으로 세상이 내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변할 것이라는 것도 느꼈다. 앞으로 어떻게 살까... 하는 의문이 쉼없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뭔가 열심히 하긴 해야 하는데, 내 안의 핵심적인 것,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직 또렷하게 정립되지 않은 기분이었다. 물론 이것 없다해도 그냥 대충 삶은 굴러가지만, 만약... 다르게 살고 싶다면, 한단계 도약하고 싶다면 그냥은 안된다.


그렇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수수께끼를 던지는 스핑크스처럼 다가왔다. 수수께끼에 답을 한 오이디푸스처럼 나 역시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건 시험대다. 이 관문을 넘지 못하면 나는 나라는 왕국의 주인이 되지 못할 것 같다. 남들 하는 것을 기웃거려보기도 하고, 다양한 바보같은 시도를 했다가 헛발질로 끝나는 등, 나는 스핑크스 앞에서 수많은 오답을 외쳐왔다. 그렇게 오늘도, 내일도 외치게 될 것인데, 그 전에 뭔가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혼란의 한복판 같은 마흔이라는 나이대는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의 저자 구본형씨의 말대로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다. 다시 거울 속의 나를 응시하며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기 위한 새로운 밑그림 혹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꿈이 필요한 시기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이 나 개인의 운명만이 아닌, 현재 이 대한민국의 운명 역시 이렇다는 것이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순간이다. 이것을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6공화국이 끝나고 7공화국으로 들어가는 시점이고, 기술적으로 표현하면 산업혁명의 시대를 너머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는 시점이다.


대한민국 역시 모든 것을 다 걸어서 '전환' 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현대나 삼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이 기술이나 경제를 잘 알지 못하는 나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여실히 보일 정도다. 이러한 개인적 삶과 세상의 운명적 평행선을 나는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으며, 나와도 같은 수많은 개인들이 이러한 전환에 성공할 때, 이 나라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전환'이라는 것은 단순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나라의 법안을 고치거나 모든 것을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새로운 꿈을 꿔야 하는 때라는 말이다.


꿈.


꿈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왜 그리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졌던지. 언젠가부터 꿈을 꾸고, 소망하는 것은 아이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고 나는 이제 굼뜨고 어색한 어른 모습으로 기존의 삶을 '유지'하는데 애써야 하는 인간처럼 느껴졌다. 꿈을 꾸고 싶었지만 언젠가부터 현실의 네모칸 속에서 안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살아가기만 해도 감사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감사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안주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꿈' 하면, '~이 되겠다', 앞으로 '~을 하겠다' 식으로만 풀어나가는 오래된 습성에 가끔 이게 꿈인가, 이것을 꿈이라 할 수 있는가? 꿈이란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꿈은, 꿈의 본질은 원래 이런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꿈을 정의하고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매우 한정적이었다. 한정적인 방식으로만 풀어나가려다 보니, 새로운 밑그림을 띄워봤자, 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것의 반복이었다.



철학자인 최진석 교수가 어느 생 기자와 인터뷰한 후에 학생 기자에게 물었다.
"학생은 꿈이 무엇인가요?"
학생은 이렇게 답했다. "제 꿈은 기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자 교수는 이러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어떻게 기자가 되는 게 꿈이 될 수 있습니까? 기자가 되는 건 과정이에요. 꿈이라는 건,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세상의 말이 질서가 없어지고 있는데 말을 바로 세우는 게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자가 되고 싶어요' 이렇게 자산의 꿈을 설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 고명환



꿈은 'dream' 이 아니라 'Vision'이 되야 한다. 명료한 비전이 있을 때 한 사람은 다시 태어나고, 다시 도약할 수 있다. 비전은 더 확장되고 새로운 단계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는 일이다. 그 모습의 나를 선연하게 떠올릴 수 있을 때,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힘을 받을 수 있다. 그 힘의 이름은 '열정(Passion)'이다.


언젠가부터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껴졌다. 그런 내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 바로 이것임을 깨달았다. 단순히 게을러서 관성에 묶여 하루를 그냥 저냥 사는 것이 아니었다. 비전을 알지 못했고, 그것이 주는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인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돈'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올려다 놓았는데, 돈이 많아도 열정없는 삶은 회색빛 장미나 다름없음을 주변에서 의외로 많이 목도할 수 있었다. 편안한 생활, 맛있는 음식이 눈 앞에 즐비해도, 뭘해도 그닥 행복해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다음 단계로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멈춰서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 역시 그 중 하나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같은 경우, 필요한 것은 '차분한 마음'이었다. '변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라는 조급한 마음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당장 움직여 수많은 시도를 해도 헛발질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은 변화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좋게 말하면 변화에 탁월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제대로 된 숙고를 하지 않고 깡통같은 변화를 시도한다. 그래서 한없이 가볍고 일관되게 일을 진행시키기 어렵다. 거리의 수많은 상점의 간판들이 일년을 채 넘지 못하고 계속해서 바뀌어 나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자리에서 꾸준히 자신만의 컨셉을 유지하는 매장은 드문 편이다. 멀리 보고 제대로 된 숙고를 통해 낸 답이 아니기에 그렇다.


변화를 위해서는 무뢰한의 과감함 보다는 차분한 마음과 숙고, 그리고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침착함이 필요하다. 미지의 수수께끼를 던지고 침묵으로 앉아 있는 내 앞의 스핑크스를 상대할 때 필요한 것은 당연히 이러한 것들일 것이다. 가벼운 정답이 아니라 내 안의 숙성된 지혜, 나만의 답을 내야 하는 순간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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