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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가지치기

by 아난


2025년 한해가 시작할때, 나는 희망찬 마음으로 이런 저런 계획을 세웠다.


'그간 내 인생은 너무 같은 것만 반복한 것 같아.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거야. 나의 경험의 영역을 넓혀보자!' 라는 것이 나의 의도였다. 그리하여 몇몇의 아이디어를 위해 과감한 첫삽을 뜨게 되는데, 그 중 몇가지를 말해보자면 이렇다. 오래전부터 오디오북 나레이터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디오북 나래이션 카페에도 가입하고, 마이크도 큰 마음 먹고 하나 장만해서 책을 읽는 내 목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레이션 온라인 모임에서 함께 하는 낭독에도 참여도 해보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유튜브 채널을 열어보겠다는 야망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녹음한 나의 목소리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해의 반 정도가 흘렀을때, 난 그렇게 뜬 첫삽을 여전히 모래밭에 꽂아둔 상태이다. 나의 유투브 채널은 현재 업로드가 중단된 상태이고, 몇개 올린 동영상의 조회수도 여전히 한자리 수이다.


왜 이렇게 흐지부지 되었는지 생각해봤는데, 목소리를 내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말하듯 읽으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신경 쓸 발음도 많고 정해둔 분량을 읽고 나면 강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목소리를 많이 안쓰고 살았던 사람이 갑자기 낭독을 시작하니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는데, 이것도 어쩌면 단련되면 해결될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것이 내 본업이 아니라, 취미이며, 에너지는 본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피로를 이겨가면서 까지 이것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목소리로 책이나 좋은 구절을 낭독하겠다는 것은 일단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낭독으로 내가 전문 나레이터가 되지 않는다해도 그 자체로 얻어지는 이익은 많다. 낭독 연습은 정신 건강을 바로 잡는데도 좋고, 자신을 말로써 명확하게 표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낭독을 통해 내 목소리가 점점 좋아지고, 발음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게 가능하면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것도 실감했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일들에 밀려서 이 새로운 도전이 흐지부지된 지금 돌아봤을때, 이런식으로 갑자기 시작해서 허무하게 접은 일들이 적지 않았음을 보게 된다. 실패했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하건만, 그렇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했다. 애초에 목표를 설정하는 방법이나 마음가짐이 틀렸고,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시작하기에 그렇다. 단순히 재미있을 것 같고,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거라는 희미한 생각 하나였을 뿐이지, 내가 그 일을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나 내가 도달하고 싶은 선명한 목표점이라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기에 그러했다. (물론 세상 모든 일이 치밀한 계획으로 시작되야 하는 건 아니다. '그냥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잘된 사람들도 많다.)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전혀 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 일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느꼈다. 마음에 관성이 생겨서 원래 하던 일로 그냥 돌아가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은 다양한 새로운 액티비티를 하면서 그것을 습득하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부분이 되게 만드는데, 그런 식으로 바로바로 접속이 되지 않는 느낌도 있었다.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그냥 경험 자체에 나를 내맡기기보다 낭독을 해서 그놈의 '결과물'을 만들어서 유투브로 유통시켜서 이걸로 뭔가 해봐야겠다라는 생각 자체가 그러한 즐거운 접속의 경험을 방해한 점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의 저자, 푸수는 '우리의 인생을 정말로 멀리 데려가는 요소는 억지 더하기가 아니라 과감한 빼기' 라고 말하며 삶에 있어서 강단있는 선택과 과감한 포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탕가게에 들어간 어린 아이처럼 인생에는 좋아보이는 것들은 너무도 많아서 이것 저것 다 쓸어담고 싶은 마음은 잘 생겨도, 과감하게 포기하기는 어렵다.


언젠가부터 사람들 사이에선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급격하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일에 노출된 현대인들이 자신을 지켜내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필요없는 물건을 버리고 집 안을 비우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마음 속의 여러가지 계획과 꿈을 처분하는 일인 듯하다. 물건을 버릴 때는 나의 물욕을 버린다는 생각에 그 행동자체가 당위성을 갖는 반면, 계획이나 꿈을 처분할 때는 '내가 게으른 탓', '실패자' 라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루지 못한 계획이나 꿈들도, 어느 정도 유통기간이 지나면, 미련을 깨끗이 지우고 마음 속에 빈 칸을 마련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토끼가 보인다고 토끼를 쫒거나 야생닭이 보인다고 닭을 쫒거나 산봉우리가 보인다고 산을 정복했다고 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이죠.

-[당신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


손에 쥔 여러가지 사탕을, 먹지도 못할 그 많은 사탕들은 이젠 놓아줘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사실은 본업 하나만 제대로 하기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알고는 있었다. 다른 곳으로 외도를 한 것은 내 본업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결국 다른 누구보다 정직하게 자신과 마주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도 모르겠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시행착오를 하는 것은 확실히 '노력의 부족'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것보다는 자신을 모르기 때문인 듯 하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바로 내 인생의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이것 저것으로 에너지와 주위를 분산시키다가 삶이 끝나는 것이다.


독일에는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Caspar David Friedrich)라는 화가가 있다. 프리드리히는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프리드리히가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실내 풍경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커스팅 (Georg Friedrich Kersting) 이라는 동료 화가가 작품으로 2점 정도 남겼다.


George-Friedrich-Kersting_s-Caspar-David-Friedrich-in-His-Studio-_1811_.jpg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작업실 풍경


그가 그린 프리드리히의 작업실의 정경은 군더더기가 없다. 작업실에는 그림도구와 의자와 작업대 같은 2개 정도의 가구가 전부이다. 관객들은 이것이 그림이기에 다른 요소를 지우고 깔끔하게 그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의 삶이 이러했다고 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집에 들여놓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도구가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공간에서 집중력을 흩어지게 하는 요소를 모두 차단했다. 언젠가 한번 프리드리히를 만났던 스웨덴 시인이 말한다. "그는 지독할 정도로 천천히 한땀 한땀, 캔버스 위에 붓질을 했다. 마치 붓을 듯 신비주의자처럼."


이 정도로 집중력있고 정교한 행위는 마음 속에서 다른 신기루 같은 꿈들을 모두 접고 내 눈 앞에 있는 나의 바로 그 일에 임할 때 행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같은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는 볼거리가 너무 많고, 언젠가부터 나의 주의력은 너무 먼지처럼 산산히 흩어져 있어서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은 무언가를 그리고, 글을 쓸때, '창작'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나의 부서진 정신을 '치유'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이 치유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다. 단 10분이라도 다른 것에 돌려졌던 시야를 거두고, 나의 일에 임한다는 마음이다. 꾸준하게. 그리고 난 단 10분이라도 그렇게 쓴 나 자신을 칭찬할 것이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현란한 꿈과 소망을 과감하게 가지치기 하고, 먹지 못할 사탕은 손에서 놓아주고자 한다. 언젠가 나의 작업실에서도 프리드리히의 작업실이 보여줬던 고요한 평화와 고즈넉함이 머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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