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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원씽(One Thing)

by 아난
Michelangelo,_centauromachia,_1492_ca._01.jpg 미켈란젤로, 켄타우로스 전투 (Battle of the Centaurs)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십대 시절 작품인 '켄타우로스 전투'다. 소년 시절 그는 명망 높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아 예술가로써 훈련을 받고 공부할 수 있었는데, 메디치가의 영향 아래 있을 때 만들었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소년 시절에 만든 이 작품을 그는 평생 소장했고 자신의 작품 중 최고로 여겼다. 그리고 그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조각이 아닌 다른 일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낸 일에 대해 깊이 후회를 했다.


이 일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의아할 수 밖에 없었는데, 미켈란젤로는 과연 평생동안 여가 시간라는 것을 가진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양의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작품에 몰두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한 것에 대한 후회라? 물론 그가 말한 것은 조각에 몰두하지 않고 다른 장르의 예술 (예를 들면 시스티나 성당에 천장화라든지) 에 매달린 시간을 후회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전 생애를 창작활동으로 불태운 사람도 이런 후회를 남긴다는 것이 인상깊었고, 이 일화를 상기할때마다 '정신차려야 겠다'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의 인생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알면서도 게으름과 바람직하지 못한 습관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었기에 그렇다.



미켈란젤로가 그만의 '단 한가지' 일에 몰두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는 일화를 상기하는데, 문득 몇몇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원씽(One thing)' 과 '당신을 소모시키는 모든 것을 차단하라' 라는 작년에 나온 책이다. 다른 듯하지만, 내용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많은 곁가지를 쳐내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이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인지 이와 같은 주제를 가진 책들이 상당히 많고 그래서 비슷한 내용임에도 읽을 때마다 공감으로 밑줄을 긋게 된다.


또 다르게 본다면, 한가지, 정말 나에게 핵심적인 한가지를 제대로 알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그만큼 녹록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열심히 하자라는 결심은 매일 하지만, 정말 반드시 붙들어야 할 나만의 한가지는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겨냥해야 할 과녁을 모르고 애꿏은 화살만 허공으로 날려보낸 셈이다. 나만의 '원씽'은 때론 A였고, 때론 B였고, 때론 C였다. 또한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기보다는 세상의 빛나고 멋져보이는 것들을 따라하고 싶어서 애쓰며 보냈던 시간이 참으로 많았다.


언젠가 죽음의 날이 멀지 않았을때 무엇을 후회할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평생을 예술혼에 불타오른 미켈란젤로도 회한이 있는데, 이리저리 엉뚱한 것을 갸웃거리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았던 나라는 인간은 후회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이 후회스러울까 생각해보았는데, 처음에는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뚝뚝 끊기듯이 조금 하다 말고, 조금 하다 말고 이런 식으로 살았던 것이 후회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창작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보다 더 후회되는 일은 주변의 번쩍이는 것들에 시선이 팔려서, 나라는 인간을 좀더 제대로 보고 느껴보지 못한 것이 후회될 것 같다. 나를 모르고 살았던, 나를 외면하고 살았던 그런 삶. 무엇이 내 가슴을 노래하게 하고, 감동으로 전율하게 하는지 무지했던 것, 그런 것들. 나를 돌아보고, 돌봐야 되는 시간에 다른 것에 빠져 있었을 때가 많았다. 볼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가장 재미없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책이었다. 모든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차단해야 그제야 그 조용한 무엇이 수면에 드러나기에 그렇다.


심호흡 할때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것들, 안면 근육의 긴장을 풀고 완전히 이완되었을 때의 평화로운 느낌 같은 것들... 그런 것들, 온전히 나라는 한 사람을 느끼고 바라보는 시간을 등한시하고 산것에 대한 후회. 그런 시간을 좀더 오롯하게 가졌더라면, 어떤 일을 하느냐 마느냐, 무엇을 성취했느냐 못했느냐를 떠나서 조금 더 평화로웠을 것이고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내달리는 삶을 사느라,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가느라, 핵심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제 수많은 정보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얻을 수 있지만, 그 정보에 홍수에 떠밀려내려가면서 잃게 되는 것이 더 많아졌다. 내 존재가 허공으로 흩어져버린 그런 기분이 들때도 있었다. 그 어지러운 와중에 붕 떠있는 나를 다시 붙들고 내려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나에게는 창작활동이다. 누군가는 창작활동을 통해 가슴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한다고 하지만, 나에게는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고 정렬시키는 과정에 가깝다. 앞으로 인공지능에 의해 창작의 많은 부분이 대체되어질 것으로 예견되지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이런 과정의 미학, 경험이 주는 치유는 결코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팔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쓰고, 그리고 싶다.

누가 뭐래도 일단은 그것이 나만의 원씽(The One Th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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