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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형 인간이 사는 법

by 아난

나의 일기장을 보면 반이상이 '~해야 겠다', '~해야만 한다', '~하자'로 채워져 있다. 대부분 바른 생활습관을 갖추기 위한 다짐들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밤늦게 먹지 말자', '일찍 일어나자', '독서를 하자' 등등인데, 아무리 결심을 해도 일주일도 못가고 무너지고 마는 것 같다. 한때는 '아, 한심한 인간이여...' 라며 스스로를 비난하기 일쑤였지만, 이제 더이상 자기 비난은 멈추었다. 스스로를 비난한들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결심을 계속 하게 되는 것일까? 생활습관을 바로잡음으로서 내가 무엇을 얻고 싶은 것인가 생각해본다. 올바른 습관과 루틴이 건강한 몸과 마음, 더 나아가 나의 커리어적인 면에 있어서 성공을 불러올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패턴에 있어서의 문제는 그런 계획, 결심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정작 '지금 이 순간'은 놓치고, '지금', '당장' 이라는 순간이 가진 잠재력을 놓치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혹은 '앞으로는' 하다보면, 내 눈 앞의 30분의 가치를 외면하기 쉽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자투리 시간들의 모음집 아닐까 싶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계속하는 것보다, 큰 그림은 마음에 두되, 지금 내가 가진 30분을 잘 활용해보자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나란 인간에게는 좀더 단순한 주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복잡한 계획표, To do 리스트에 지속적으로 체크하는 것, 이런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나, 그런 것도 작심삼일로 사그러들고 만다는 것이 문제였다. 많은 경우 작심삼일은 커녕 하루도 못가 결심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럴바엔 차라리 30분 단위로 집중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결심들을 일기장에 나열하기보단 '30분은 소중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 혹은 무엇을 경험해볼까' 라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나가는 것.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도 우리가 가진 큰 돈 못지 않은 가치있는 자산이다. 특히 그림을 그리는 나라는 사람은 그 30분이라는 가치를 더더욱 잘 알고 있다. 30분 안에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IMG_1465 브런치.JPG 20분 동안 그린 왼손드로잉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그 높은 목표에 가닿지 못해서 매일 낙방한 사람처럼 우울해하기 보다는 차라리 그런 결심을 그만두고, 매일 30분 드로잉을 앞둔 사람처럼, 내 앞의 30분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겠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는 21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한 분이 대통령 자리로 올라오셨고, 다른 한 분은 낙선자가 되었다. 작년말부터 한국은 정치적인 격량 속으로 들어가서 여러모로 진통이 있었기에 이번 선거는 투표율도 상당히 높았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것은 선거가 모두 끝나고, 낙선한 후보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선거가 끝난 다음날 그가 동네 공원에서 운동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모든 정치적인 판단을 떠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날을 시작한다고?', '저 나이에 저런 체력이라고?' 하는 생각에 입을 벌리고 그 영상을 보았다. 솔직히 선거라는 거대한 승부에서 졌다면 다음날 하루 정도는 쉬거나, 좀 무기력하게 있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게 만약 나라면 난 솔직히 한 일주일정도는 넋나간 체로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뚜기처럼 일어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허허로운 표정으로 아침 운동을 하는 것을 보며 이건 대단한데? 싶었다. 평상심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고, 이분은 평생을 그냥 이렇게 사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랄까. 적어도 나같은 작심삼일러에게 이것은 마음 근력의 표본이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늘 내가 할 일을 꾸준히 평상심으로 하는 것. 말은 쉬운데, 실천하기 참 어려운 그것.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으례 포기하고 마는 조급하고 나약한 습성을 버리고, 나 또한 저렇게 꾸준한 실천을 하고 싶었다.


나란 사람은 평생의 숙제가 있다면 '꾸준함'의 부족이었다. 고쳐보려고 애를 쓰고 매일 계획을 세워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꾸준한 사람, 자신의 생각대로 삶의 시간을 경영하는 부지런한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앞으로 대단한 계획은 못세우고, 대단한 결심은 안하더라도 내 앞의 30분, 아니 10분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나가고 싶다. 그렇게 시간을 쓰는 태도의 바탕에 깔린 것은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있어야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하루가 내 마음만큼 경영되든, 그렇지 못하든 포기하고 내팽겨두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시간이라는 밀알을 모아 소중히 쓰는 마음이 내게 결여된 무엇이었으리라. 너무 완벽을 바라지 말고, 지금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정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꾸준히 하는 것. 결과에 바로 도달하려고 조급하기보다, 이런 과정을 경험하고 그것 자체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난 곧 다시 작심삼일러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내 앞의 30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살자는 단순한 명령에는 따르고자 한다. 때로는 무너지고 헤이해지겠지만, 그래도 천천히라도 다시 앞으로 걷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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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