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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인 성장

by 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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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랜만에 종로 쪽으로 외출을 했다.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상설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실 나는 현대미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려워 한다'가 더 맞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친절하지 않다. 관람객의 입장에서는 인내심을 가지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라보고 맥락을 읽으려 노력을 해야 한다. 어쩌면 그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싫은 게으름 때문에 현대미술과 거리가 멀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조금 어려운 현대미술이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서 나는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다. 전통적인 그림이라는 예술품이 주는 감동과는 다른 신선함과 파격이 느껴졌다. 특히 그런 신선함은 평면회화보다는 설치 미술작품을 보며 더 강렬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나는 현대예술가들은 오해 받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강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림이 또렷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작가는 스스로 작품의 주제의식을 확고하게 가질 필요는 있지만 그 표현방법이 너무 세세하거나 설명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떄로는 모호하게, 때로는 거대한 공백으로,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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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백남준 작가의 '잡동사니 벽'이다. 한국 전통 가마와 자동차 파편등의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오브제를 결합하여 문화적 경계가 허물어지고 이질적인 문화가 서로 섞이는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바햐흐로 챗GPT의 시대이다. 정밀하게 아름답게 그리는 영역은 이제 인공지능의 특기로 넘어간지 오래다. 예술가는 또 다른 역할을 찾을 때가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질문하거나 세상을 향해 농담을 던지는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내 그림을 그릴때 부족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도 어렴풋하게나마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보기 좋은 그림, 예쁜 그림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엇이 있는 그림. 핵심을 간파한 그림. 언젠가 삼성가의 이건희 회장은 이제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이게 사업을 하는 회사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이겠는가. 그림 그리는 개인에게도 분명 적용되는 이야기다.


단순히 보기 좋은 그림을 넘어 핵심을 보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예술,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 이렇게 글로 쓸 수는 있지만, 막상 그런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단순히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같은 게 있다. 특히 오래도록 특정한 사고방식과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익숙해져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깨부수어야 하는 벽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무얼 어떻게 할지 잘 모르고 아직 과감한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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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이다. 보통 그림은 화면을 몸 앞에 두고 그리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 상식적인 세계를 전복하기 위해, 이건용 작가는 화면을 자신의 몸 뒤에 두고 거칠게 드로잉을 해서 이 그림을 완성했다. 어쩌면 거친 선이 전부인 그림 같지만 실제로 보면 연필선 안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져서 독특하게 느껴졌고, 통념을 뒤엎는 실험을 한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다.


어려운 현대 미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해서 앞으로 좀더 실험적인 작품을 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세계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가파르게 변화하고 있다. 자꾸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고 하는 나라는 녀석을 깨워서 앞으로 걸어나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하고 안락한 것은 편안하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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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은 민정기 화백이 1981년에 그렸던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이다. 현대 사회에서 감시당하는 인간의 모습과 노란 스크린으로 대변되는 대중매체에 의해서 생각을 조정당하는 대중의 모습을 그렸다. 예술가의 시선은 역시 날카롭다. 1981년 작이라는 게 놀랍다. 지금봐도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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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작가의 [꽃의 향연]이라는 설치 미술이다. 최작가는 대량 소비되는 생활용품을 작품을 만들때 많이 이용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상과 식기를 탑의 형태로 쌓아 올렸다. 3대가 함께 거주하는 가정에서 주부가 신혼부터 사용해 돈 식기들을 재료로 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상과 식기로 이루어진 탑은 가족의 건강을 위해는 탑이자, 삶의 흔적을 나타내는 탑이다. 또한 한국의 대량 생산과 소비문화가 만들어낸 한국만의 독특한 풍경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를 관람하며, 조금 늦었지만 새로운 조형 언어를 배워가는 느낌이었다. 추상적이고 함축적인 것, 그리고 실험적인 예술이 갖는 오묘한 매력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그것이 문학으로 치면 '시'에 더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도. 또한 직접 작품을 보러가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의 물성을 직접 눈 앞에서, 한 공간에서 느끼는 것과 집 안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은 감동의 차원이 다른 듯 하다.


8월에는 이렇듯 미술관 투어를 종종 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자의던 타의던 이곳 저곳 새로운 곳을 많이 보러 다녔다. 특히 어른들 손에 이끌려 교육이라는 이름 하에 자주 새로운 것을 보러다녔는데, 어른이 되어 내 인생을 돌아보니 새로운 것을 보러 다닌 경험이 손에 꼽더라는 것이다. 나이는 들었지만, 내 안에는 아직 어린 아이가 있을 것이다. 이 어린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과 교육에 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무언가 신선한 눈으로 보고, 오해를 사더라도 새로운 방법으로 삶을 그려나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많은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잊기 전에, 시간이 더 지나가서 이번 전시회에 대한 감흥이 더 사라지기 전에 이렇게 기록을 남겨 보았다.


감탄하고 감동받는 것을 멈춘다면, 우리의 인생도 멈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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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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