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즈 Feb 05. 2022

행과 불행, 삶과 죽음 사이에 도서관이 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407쪽 (인플루엔셜, 2021)


첫 문장. 죽기로 결심하기 19년 전, 노라 시드는 베드퍼드에 있는 헤이즐딘 스쿨의 아늑하고 작은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 삶도 있을까? 삶은 매일이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할지 처럼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사는 곳과 하는 일이나 배우자를 만나는 것처럼 중요한 선택들도 있다. 고르고 택해야 한다. 간혹 고민하며 우물쭈물하다가 선택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되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피하고 싶어 하는 감정일 거다. 그러나 매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런 말은 하지 말걸. 늦장 부리지 말걸. 후식은 먹지 말걸. 등등. 작은 일로 시작된 후회는 더 큰 감정을 몰고 오며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여행을 다닐걸 그랬어. 운동을 꾸준히 했다면. 그때 시험에 응시했어야 했는데.

했던 일로 시작하여 하지 않은 일들까지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꽤나 묵직하게 스스로를 잡아끌며 가라앉게 한다. 자칫하면 마음속 어두운 구석으로 안착할 수도 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의 주인공 노라는 후회와 비관으로 가득 찬 나머지 이제 그만 자신의 불행한 삶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불과 30대 후반의 나이이지만 이미 실패했고, 자신을 가장 초라하고 외롭고 불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그렇게 죽음을 시도했지만 그조차도 실패한 주인공은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자정의 도서관)’로 가게 된다. 그곳은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그 사이의 어디쯤, 있지도 없지도 않은 마법 같은 장소이다.


도서관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서가와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다른 색과 두께를 가진 무한한 책들이 있다. 그 광경에 대한 묘사는 신비함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꽂혀있는 책들의 제목은 모두 ‘나의 인생’ 이다. 거기엔 선택의 순간들로 달라진 ‘내가 살았을 수도 있는' 인생이 적혀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다른 행운들로 꾸며진 무한한 가능성의 삶들이다.


그곳에서 노라는 운 좋게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다. 사서인 엘름부인의 도움을 받아 무거운 후회의 순간들을 되짚고, 돌이키고 싶던 선택을 고른다. 노라는 ‘했을 수도 있던’ 결혼을 하고, ‘거주할 수도 있던’ 지역에 살거나, ‘이룰수도 있던’ 성공까지 거머쥐게 된다.


주인공의 인생을 따라서 퍼즐을 맞춰가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노라는 실은 다재다능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주변의 기대를 받았던 유년시절이 있었다. 마법 같은 도서관을 통해 노라는 그 가능성들을 하나씩 이루게 된다. 정확히는 이미 원하는 바를 이룬 후의 삶을 살아보게 된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끝도 없는 책장에 나열된 자신의 인생을 기록한 책들 중에 조심스레 한 권씩 골라 펼치기만 하면 된다. 수영선수가 되어 올림픽 매달을 딸수도 있다. 빙하학자가 되어 지구를 위하며 일할 수도 있다. 좋은 연인이라 생각한 상대와 결혼을 할 수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멋진 해변가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전 세계를 흥분시키는 록스타가 되어 50만개의 좋아요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화려하고 주목받는 삶에서도 그녀 곁에는 여전히 항우울증제와 죽음과 상처가 있었다.

‘나의 인생’들을 방문하던 노라는 여러 차례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살다 보면 더 쉬운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죠.” (p.257)


그것은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다며, 타인이나 또 다른 자신과 비교하는데 시간을 보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삶에는 좋은 일과 나쁜일이 공존하는데 말이에요.”
“…영원히 순수한 행복에만 머물 수 있는 삶은 없어요. 그런 삶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더 불행하게 느껴질 뿐이죠.”
(p.258)

그녀는 최고의 삶을 찾게 될까?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서랍에는 항우울제가 없는, 거의 완벽해 보이는 인생을 발견한다면? 그때까지 길 잃은 양처럼 수십 가지의 인생을 넘나들던 노라는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의 제일 놀라운 점은 이런 것이었다.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지점이 결코 거창하지 않다는 . 어떤 직업으로 누구와 어디에 살던지, 그보다  중요한  아주 사소했다. 인생은 어쩌면  기억나지도 않는 평범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는 거라는. 이웃집에 사는 노인의 약심부름을 해주는 ,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고 걱정해주는 , 잃어버린 반려동물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일과 다정한 피아노 선생님이 되는  등등. 별거 아닌  하지만 친절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순간에 우리의 인생은 달라진다고 말한다.


“가장 평범해 보이는 게 나중에는 널 승리로 이끄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넌 계속 나아가야 해. 그날 강에서처럼. 기억하니?”  (p.269)


주인공 노라는 같은 자리에서 진정한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는 급격히 모든 게 변했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이 소설을 통과하며 깨달음의 실마리를 찾은 사람이 있다면 어제와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동일하다. 이 책을 읽은 나의 변화를 무엇일까? 책장을 덮으며 이렇게 되뇌어 본다. 나는 살아있고, 나의 삶을 살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소년소설 페인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