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Adios Amigo
로컬 버스를 타고 다시 레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한 번 거쳐갔던 곳을 돌아온 것이다.
판공초라는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한 우리에게는 타지마할과 갠지스 강, 두 가지 목표가 남아있었다.
레~마날리~델리로 되돌아가는 일정의 시작에서 어느덧 낯설음보단 익숙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서 1일째, 2일째를 세며 언제 한 달을 채우나 걱정했던 시간이 남은 날짜를 세며 아쉬워하는 기대로 바뀌고 있었다.
어느덧 익숙해진 레에서 일상과도 같은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다음 목표를 위해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가난한 배낭여행자 둘을 너그럽게 반 값 가격에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신 숙소 아저씨에게 우리가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리고, 다시 마날리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떠나는 날 까지도, 아저씨는 모닝 짜이를 잊지 않고 가져다주셨다.
매일 밤 북두칠성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던 숙소와 마침내 작별 인사를 했다.
버스 시간에 여유 있게 숙소를 나와 마지막으로 레를 눈에 담고 떠나기로 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선명함을 숨길 수 없는 하늘은 레를 떠나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레의 익숙함이 고산 지대와의 익숙함을 의미하진 않는지, 여전히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덕분에 조금 더 오래 레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레에 있는 동안 뭘 가장 많이 했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주저 없이 '아미고에서 시간을 보냈다'라고 할 정도로 일주일 동안 우리는 아미고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레에 대한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미고에서도 오래 지낼수록 힘든 점이 하나 있었는데, 다른 손님들이 삼겹살을 먹을 때 나는 고기 냄새였다.
비교적 비싼 가격의 삼겹살은 우리에겐 사치였고, 주로 볶음밥, 비빔밥을 먹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판공초 지프 투어를 포기하게 되면서 예산에 숨통이 트여서 레의 마지막 식사는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늘 저렴한 메뉴만 먹었던 우리가 익숙했는지, 삼겹살을 시키자 거건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맛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감격스러웠던 식사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
매일 상주하다시피 하며 있어서 친해진 모두가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한국 외대 출신이라던 사장님부터, 7일 내내 나한테 체스를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거건, 매일 혼자 일하는 것 같은 파블로,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았던 찰리까지 다들 아쉬워했다.
우리의 쉼터가 되어줬던 아미고와 친구가 되어줬던 사람들을 뒤로하고,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거건이 내가 다시 돌아오면 체스 절대 안 지겠다고 했는데, 사진에서도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 같다.
거건, 체크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