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퇴사했다. 퇴사하던 날 들은 말
일을 그만두던 날의 기록, 정말 ‘스불재’일까?
나는 프리랜서지만 직장인처럼 회사를 다녔다. 매일매일 출근을 하고 매일매일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계약만 프리랜서인 직장인과 다름없었기에 프리랜서임에도 자꾸 ’ 퇴사‘라는 단어를 쓰게 된다. 물론 출퇴근 시간은 직장인들과 조금 달랐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조금 이르게 퇴근하고, 집에서 주어진 업무를 마무리하는 그런 패턴이었는데 이제 할 일이 없어졌다. 월급 주는 곳도 없어졌다. 정말 ‘퇴사’를 했다. 대략 5개월 정도 마음고생을 했고, 2달여 정말 치열하게 그만둘까 말까 고민했으며, 2주 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만둔다 말하지 못했고, 결국 그날 나는 퇴사를 입 밖으로 꺼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 잘 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그날 만은 그만둬야 하는 날이었다. 자꾸 눈물이 났다. 사람들 모르게 눈물을 훔치다가, 잠깐 화장실에 가서 숨죽여 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내가 이 일을 좋아했구나, 미련이 많구나. 계속하고 싶긴 한데 결국 관계 때문에 망쳐진 걸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벌어진 일이었고 마무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만두겠단 말을 하기 전에, 선배에게 물어봤다. “저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데 선배 생각은 어때요? “ 그냥 순간 이렇게 물어봐야겠다는 충동적인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뭐 어쩌쟈는거냐며, 네가 결론을 내서 이야기해야지, 왜 자기 탓을 하냐고 했다. 나는 결론을 내기 전에, 여쭤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선배는 기가차하며, “아니야, 넌 네가 만든 스불재야” 선배는 나한테 ‘스불재’라고 했는데, 스불재가 뭐더라? 나중에 찾아보니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란 뜻의 줄임말이었다. 스불재라고? 결국 이 순간에도 선배는 ‘전부 다 너의 잘못이고’ ‘너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 더 이상 이런 가스라이팅을 듣고 있기 싫어서 나는 그만두는 거였다. 그만두는 이유가 선명해지니, 그만두겠단 말이 뱉어졌다. “선배 때문에 그만두는 거 맞아요. 저는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그런 마무리였다. 마지막에도 조금 어이없는 공격을 받았다. 너는 니 후배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봤냐고 물어보길래, 정말 기가 막혔다. 내가 내 후배한테 ‘기회를 준 내가 병 X’이라든지, ‘지 X 하지 마’라는 인격모독적인 폭언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던 일을 뺐는 수치감을 안기고, 그만두고 싶을 정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줬다는 건가? 아닌데? 나도 반문했다. ”제가 뭘 어떻게 했는데요? “ 반문했더니 선배는 말 문이 막혀 보였다. 그래 할 말이 없었겠지 그러더니 ”됐다. “라면서 돌아갔다. “그만두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쏘아붙이면서. 참 나.
그렇게 그만뒀다. 잠깐 일주일간,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후임자를 찾는 시간을 줬고, 팀사람들은 전부 선배 눈치를 보며 내게 말도 잘 걸지 않았다.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출근날, 날씨가 참 좋았다. 하늘은 파랬고 바람은 선선했다. 나는 의외로 출근하는 순간을 좋아했구나. 나의 쓰임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 커다란 건물이 주는 소속감과 뿌듯함.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출입증을 찍고 들어가는 쾌감. 그런 것들이 나의 자존감의 큰 부분을 지탱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휴대폰 케이스 뒤에 들어있는 출입증을 뺐다. 퇴근길, 재빠르게 반납하고,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단톡방도 모두 나왔다. 홀가분했고, 조금 슬펐다.
그만둔단 소식에 아쉬워해주고, 자리를 마련해 준 사람들이 있어 위로가 됐는데 이상하게 만남의 끝, 대화의 끝엔 기분이 침체됐다. “그래 둘이 안 맞더라.” 다른 사람들에게 선배와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말 다 말하자니, 되새김질하기도 피곤했으며, 어떤 말에 상처받았는지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간의 일을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대략적인 스토리를 들려주면 돌아오는 말이었다. 간추리고 축약한 덕에 지난 5개월간 내가 당한 일은 “둘이 안 맞았구나”정도로, 사람과 사람이 안 맞아 생긴 일 정도로 갈무리되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남아서 그 선배와 계속 일을 해야 하고, 누구 한쪽 편을 마냥 들어주기도 어렵고, 나도 나조차 스스로 내가 100% 잘못이 없진 않겠지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당한 일에 분노해 줄 만큼의 깊은 유대관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떠남을 아쉬워해주는 고마운 이들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만은 내 편을 확실히 들어줘야겠다. 사람이 사람이 잘 맞지 않는다고 그런 직장 내 갑질을 하진 않는다고.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서 잘 버텼고 상처받았고 이젠 내가 나를 달래기 위해 잘 빠져나왔다고. 나는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백수가 됐다.
마지막 퇴근길, 문자로 책 선물이 도착했다. 전 세계 지도책이었다. “넓고 즐거운 세상에서 잘 살다가 반갑게 만나길 기대할게요.”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정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