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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끼리 Jan 25. 2024

20대 이야기

2014년~ 2023년도 까지.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는 2014년도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수능이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던 2013년도 12월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레스토랑 서빙알바. 하루종일 앉아만 있다가 서있으려니까 너무 힘들었다. 어려운 이태리 이름의 음식들과 아무리 열심히 닦아도 자국이 남아있는 유리잔과 식기들,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지저분한 테이블을 정리하는 모든 것들이 다 힘들었다. 그럼에도 언니 오빠들과 함께 즐겁게 어울려 일하다 보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갔고, 나름대로 멋진 유니폼을 입고 고급식당에서 서빙하는 내 모습이 내심 마음에 들었다.


사실 나는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과 함께 아르바이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식당이나 카페, 학원, 과외 등등 다양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곳에서 척척 맡아서 일을 처리해 주는 모습을 보면 나도 언젠가 저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 그래서 나의 20대 초반은 적극적으로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더욱이 되도록이면 한 번 해봤던 아르바이트는 피해서 지원했고 꽤나 열심히 일했던 기억이 난다.  


( 학과조교, 카페, 식당, 유니클로, 배스킨라빈스, 키즈카페, 마트시식, 영어학원, 수학학원 등등 )


그 당시 나에게 로망이라는 말은 궁금하다는 말과 결이 비슷했던 것 같다.  원래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궁금하고 알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고, 이런 알바에 대한 로망은 직접 해보면서 현실을 깨닫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나름대로 학교생활도 열심히 했었다. 1학년때 단과대학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2학년땐 어떤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복수전공으로 인문대생들을 위해 신설된 삼성 소프트웨어, 그리고 정치외교를 선택해 사서 고생했다. 그런데 결국은 두 개 다 이수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다. 3학년땐 취직해야 하니 토익과 컴퓨터 자격증 그리고 이것저것 취업자료를 찾아다녔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 휴학하고 부모님이 권유했던 공무원 시험을 시작한다. 이 마저도 다 끝내지 못하고 다시 학교 졸업을 위해 복학했다. 4학년 같이 학교 다녔던 친구들은 졸업하고 나는 혼자남아 어찌어찌 졸업을 한다.


2019년 8월, 졸업과 함께 첫 번째 페이지가 넘어간다.  


학교를 졸업하니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었고 나는 일을 해야 했다. 사실상 졸업만 했지 나는 아직 진정으로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그러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배움이 필요한 학생이었다. 방황의 시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때는 주변 사람들에 등 떠밀려 시작했던 공무원시험에 1년이라는 시간을 날리고, 폭주(?)하는 마음에 그냥 계획하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시작한 나의 두 번째 페이지.


1. 지역 신문사 기자

결국 기사는 공무원들이 쓰는 보도자료를 받아 내는 것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2. 영어학원 선생님

아이들이 귀엽고 보람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학원을 차리기엔 손이 많이 들고 어딘가 소속되어 일하기엔 돈벌이가 적었다. 평생직장은 아니라는 생각에 퇴직금 받을 때까지만 하고 그만뒀다.


3. 벤처기업 직원

집과 가까웠고 월급도 괜찮았다. 그리고 식사도 제공되는 무엇보다 칼퇴가 늘 가능한 회사였다. 대략 조건은 괜찮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부정적 사고방식이 강했다. (날씨가 좋다고 말하면, 이렇게 좋은 날씨에 여기 처박혀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말을 해도 부정적인 언어로 도배되는 분위기) 이 조직은 오래 못 갈 거 같은 느낌도 들었고, 나까지 물드는 기분이라서 퇴사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시작한 세 번째 페이지.


4. 글로벌제약사 마케팅팀

서울에서의 첫 회사다. 계약직으로 급여는 적었지만 큰 기업의 선진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람들도 스마트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자라는 기분이 들었다. 자유로운 재택과 스마트오피스, 간식과 헬스 등 자잘한 복지도 좋았다. 그러나 경쟁이 너무 심해서 운 좋게 정규직이 되어도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2년 계약기간 채우기 전에 이직을 준비해서 떠났다.


5. 비영리 국제기구 단체

서울에서 두 번째 회사. 정규직으로 드디어 직장다운(?) 곳에 취업성공. 친구들과 부모님이 좋아하신다. 다들 좋아하니 나도 좋다. 일도 잘해보고 싶어서 노력하는 중이만, 여전히 우당탕탕 하면서 적응 중이다. 나름대로 일 하면서 내 삶의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보려고 노력하는데 잘 모르겠다.



나의 20대를 사회생활과 학교생활을 기준으로 나눠보았는데, 지금까지 지나온 날들이 참 우습고 가련하기도 하다.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반면 후회가 되는 것들이 마구 떠오른다. 그리고 그 시간들 사이사이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떠오른다.


그때 나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들이다.

(사람, 책, 영화, 음식, 음식, 공연, 여행, 날씨, 광고, 뉴스 등)


그때의 온도와 습도, 코를 찡그리게 하는 순간의 냄새까지,

그 어떤 사소한 부분이 어떻게 나의 순간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나조차 알 수 없다.


앞으로도 나의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아니게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해 그저 순간순간 나에게 집중하고 열심히 살아가면 그만이지 않을까 한다. 20대가 끝나면 무언가 선명해지지 않을까 했던 나의 기대와 달리, 서른에도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지만 조금은 더 유연해진 마음으로 차분해지는 것을 느낀다. 조금 덜 흔들리고 차분하게 나의 길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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