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 현실감각이 늘어나는 시기.
돈을 소비함에 있어, 안정적인 선택을 하게 되며 굳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는 소비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학생 때 갖고 싶었던 물건들이 시시하게 느껴지고 다른 비싼 물건들에 눈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현재에도 학생때와 별반 다를 것 없이 지금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들은 내 수준에 턱도 없다는 걸 깨닫고 눈길을 거둔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생각하지만 또 언젠가는 지금 원하는 물건들이 나중에는 시시해(?) 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그만큼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
무뎌짐 속에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쉽게 얻으면 그에 대한 소중함을 알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돈도 물건도 사랑도 성취도 하다못해 인간관계 까지도 다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게 작은 것부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자 감사노트를 쓰며 아침을 시작한다. 세상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사실상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것이 인생이다.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경계하며 살되, 그럼에도 나에게 허락된 것들에(가정환경, 원만한 관계, 직장, 취미, 음식 등)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자 한다. 나의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함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결국, 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삶을 살아내기 위한 노력이며, 세상으로부터 나 스스로를 지키고자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나는 엄청 좋은 학교도 아니고, 집이 부유하지도 않으며 특별하게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다. 딱히 끈기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20대의 대부분은 뚜렷한 목적 없이 보냈다.
우리 집은 4형제로, 나는 항상 부모님으로부터 우리를 모두 대학에 보내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2년제 아니면 국립대에 가야 한다는 말을 들어왔다. (당시에 학비가 비싼 사립대는 죽어도 보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진심이 아니었다고 하신다.ㅎㅎ) 그리고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결혼하는 것. 이렇게 나의 선택지는 오로지 현실적인 상황에만 포커스가 맞춰졌다. 그렇게 결국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부모님이 원했던) 공무원 시험은 1년도 채 못하고 때려치웠고, 번듯한 직장 없이 졸업 후 방황의 시간을 보낸다. 서른이 된 지금도 내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꽤나 슬픈 현실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이때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에게 손절당한(?) 기억이 있다. 같이 공무원 시험을 시작해서 결국 공무원이 된 친구이다. 점차 카톡 답이 느려지더니 전화도 안 받고 해서,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는지 혼자서 끙끙 앓았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굳이 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친구에게 과거의 유치하고 수준이 안 맞는 친구들과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친한 친구가 멀어지는 기분에 힘들었지만 서른이 되어보니 진심으로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싫어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설령 내가 싫다고 한들 이제는 내 삶이 바빠서 거기까지 마음을 쓸 기운도 없다. 이게 정말 인간관계에 대한 30대의 현실이구나 싶다. 인간관계에서는 더욱이 기대를 내려놓고 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직장에서나 선후배, 일상에서 만나는 가게 사장님, 이모님들 까지도) 그저 내가 어려울 때에도 옆을 지켜주던 가까운 이들이게 더욱 잘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냉정한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니 다른 사람이나 내가 처해진 상황을 탓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꿔나가고, 차근차근 내 실력과 능력을 키우는 것이 결국 빛을 보게 되어있다.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기에, 누구나 자기에게 맞는 적절한 타이밍이 있다. 당장 힘들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고, 지금 좋은 상황에 있다고 자만할 것도 없다. 인생은 그냥 현재 있는 곳에서 꾸준히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노력해 나가면 그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