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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Sep 26. 2023

상처입은 아들과 아빠 그리고 치유

영화 "여덟개의 산"을 씨네큐브에서 감상했다. 칸느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수작이다. 그러나 독립영화니 며칠 내로 스크린에서 내려 갈 것이다. 어제 씨네큐브의 아담한 상영관도 10명이 채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볼 생각이었으나, 다행히 퇴근 후 근처에서 일하는 대학동기가 함께 해주었다. (고맙다 석부야!)


부산국제영화제 이용철의 영화 소개가 좋아 가져왔다.

파올로 코네티의 소설을 가져오면서 펠릭스 반 그뢰닝엔은 공동연출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두 인물이 끌고 가는 원작이 그러하듯. 십 대 초반에 만난 두 친구의 오랜 연대기는 단순하면서 심오하다. 여덟 개의 산과 바다를 여행하는 자와, 태산의 정상에 오른 자 중에 누가 더 큰 깨달음을 얻었을까? 멀리 네팔을 떠도는 피에트로는, 후자의 삶을 갈망했던 아버지와 산의 무게를 껴안은 친구 브루노의 삶을 생각한다. 다니엘 노르그렌의 애절한 노래가 가슴을 후벼파는 가운데, <여덟 개의 산>은 탁한 눈을 씻어주고 영혼을 달래준다. 산에서 안식을 찾는 이라면, 나무와 풀과 계곡에서 뽑아낸 아름다운 컬러와, 그 위를 덮은 온화한 햇살과, 숭고한 산의 영기가 안겨주는 매혹에 흠뻑 취하고도 남을 것이다.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 이용철)

영화는 도시소년 피에트로와 산골소년 부르노의 우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부분의 영화 소개글이나 감상평도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게는 아들 피에트로와 아빠의 관계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서로가 입은 상처 그리고 치유와 화해 말이다.


어린 피에트로는 이태리 토리노(스위스 국경에서 가까운 곳으로 200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 피에트로와 엄마는 여름방학 때마다 알프스의 험준한 산이 감싸고 있는 시골마을에 머물게 된다. 아빠는 토리노에서 일하고 있다. 피에트로의 아빠는 산을 광적으로 좋아했다. 하지만 아빠를 따라 다니던 피에트로는 몸이 약해서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었다. 어느날 아빠와 아들 피에트로, 그리고 친구 브루노 셋이서 빙하를 보러 산을 오르게 된다. 시골소년 브루노는 씩씩하게 산을 오른 반면, 피에트로는 고산병이 왔다. 결국 모두가 중도 하산하게 되었다. 피에트로에게는 좌절감과 잊혀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피에트로다. 시간이 지나도 친구가 없다. 그래서 여전히 브루노와의 우정이 소중하다. 그러나 피에트로는 다가가는 방법을 모른다. 둘은 성장하면서, 피에트로 가족이 브루노 마을을 찾지 않게 되면서 멀어져 버렸다.


영화는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피에트로와 아빠를 보여준다. 아빠가 아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여전히 등산이었다. 아픈 아들을 위한 일이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성한 아들은 등산이 싫다. 그래서 아빠와의 등산을 단호히 거부한다. 도리어 아빠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 만다.


아들이 떠나버리고 카메라는 늙어버린 아빠를 비춘다. 일터인 공장에서 담배를 피우러 나오는 장면이다. 몇십미터는 되어보이는 긴 철제 원통 창고 중간에 조그만 문이 있었다. 그 문을 드나들며 아빠는 바깥 공기를 겨우 쐴 수 있었다. 담배연기를 뿜으며 홀로 서 있는 아빠의 모습은 강철기둥의 차가움과 공중에 뜬 난간이 결합되어 더욱 차갑고 위태로워 보였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피에트로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을까?

아빠는 얼마 안있어 운전 중 급작스럽게 죽는다. 심장마비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아들의 심약함도 사실 아빠의 유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등산을 통해 이를 극복하려고 했고, 아들도 같이 하기를 바랬던 것이다.


아빠의 장례 이후 브루노가 피에트로를 찾아온다. 놀랍게도 아빠와 브루노는 연락하고 지내는 사이였다. 브루노는 친구의 아빠를 만날 때마다 피에트로의 안부를 물었고, 아빠는 아들의 친구를 친자식처럼 대해주었다.


브루노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다 쓰러져가는 산장을 다시 지어달라는 친구 아빠의 살아생전 부탁 말이다. 둘은 산장을 같이 보수하고 낮밤을 함께하며 어린 시절의 우정을 재확인한다.


산은 변화무쌍한 날씨로 둘을 괴롭히기도 했지만, 영험한 햇살을 비추며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했다.


피에트로는 산장 더미에서 작은 나무를 캐내어 잘 보이는 자리에 옮겨 심는다. 그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피에트로는 말없이 지켜본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산에서의 시간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아빠를 공감하고, 이해 받지 못한 아들이 받은 상처 모두를 치유하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영화 음악을 맡은 다니엘 노르그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잔잔한 목소리와 깊이 있는 가사가 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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