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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Nov 15. 2023

커피 “리브레”의 원두를 추천하는 이유

직장이 청계광장 근처다. 이 동네는 스페셜티 커피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유명해진 테라로사, 드립커피로는 터줏대감인 다동커피집 그리고 우리나라 스페셜티 커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피 리브레, 신생 펠트(FELT)와 알레그리아 커피 로스터즈(ACR), 포스톤즈 등의 카페들이 경쟁하고 있다. 물 건너온 블루보틀 청계천 점도 목 좋은 곳에 있다.


이중에서 나는 커피 리브레라는 업체를 주로 이용한다. 서필훈 대표가 투자금이 없어 2009년 시장통에서 한약재 가구를 가져다 놓고 시작한 카페다. 우리나라 스페셜티 커피의 시작이기도 하다. 지금은 핫한 연남동에 어엿한 카페가 있다.


내가 다니는 카페는 명동성당 2층에 있는 리브레다. 리브레는 "자유롭다"는 뜻도 있지만, “나초 리브레”라는 코믹 프로레슬링 영화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하우스 오브 락의 “잭 블랙”이 마스크를 쓰고 “레슬러 리브레”로 나온다. 그래서 카페 브랜드도 이런 마스크다.  

던킨과 콜라보 중인 리브레의 원두


리브레의 장점은 몇 가지가 있다. 내가 가본 스페셜티 카페 중 가성비가 뛰어나다. 위에 언급한 커피 하우스들은 다들 맛있지만 리브레에 비하면 비싸다. 또한 명동성당점의 장점은 성당 1층에 있는 "르빵"에서 빵을 사 갖고 카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점심때 가게 되면 르빵을 들러 샌드위치나, 그날 먹어보고 싶은 빵을 집어든다. (르빵은 불어인데, the bread라는 뜻이다. 우리가 쓰는 빵은 여기서 왔다.)


다음으로 바로 앞 계단을 통해 2층 커피 리브레로 올라간다. 한바퀴 둘러보고 먹고 싶은 원두를 고른다. 200그램 원두를 사면 커피 한잔이 공짜다. 이 극강의 가성비여!


처음 사 먹는 원두라면 “배드 블러드”를 추천한다. 산미가 느껴지는 가벼우면서도 화사한 커피다. 이 원두로 집에 가서 드립해 먹을 생각에 바로 직전의 업무 스트레스가 순간 사라져 버리는 마법이 일어난다. 르빵의 샌드위치는 두툼하다. 한 끼로 충분하다.


구석 자리에 앉는다. 벽에 붙은 커피 리브레의 마스코트, 마스크를 그린 손님들의 엽서들을 천천히 보며 샌드위치를 베어 문다. 아마추어들의 작품이지만 특색들이 있어 질리지 않는다.

커피는 바로 마시지 않고 일단 천천히 향을 맡는다. 복합적인 향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스벅 커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향이다. 서두르지 않고 한 모금씩 마신다. 커피가 식어도 괜찮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커피는 식어도 맛있어야 정말 좋은 커피니까.


며칠전에는 퇴근길에 들렀다.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천천히 음미하던 중 시계를 보니 6시 55분이다. 카페도 문을 닫을 시간이다. 나는 마지막 손님이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눈 인사를 바리스타들에게 건넨다. 부지런히 바로 위 명동 성당으로 올라간다. 7시 평일 미사 참석을 위해서다. 오르간 연주와 수준 높은 성가대의 노래를 접할 수 있다. 카페인이 들어가서 머리도 맑아졌겠다, 집중도 잘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런데 어라? 오늘은 외국인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횽제자뭬 여러붕, 우리 죄럴 반성합시다~ 루까가 전한 거루칸 보금임니돠."


어눌한 발음이지만, 또박또박 최선을 다하는 사제의 진심 만큼은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성경의 말씀은 희한하게도 전달된다. 생김새는 남미에서 오신 분 같다.


커피 리브레의 서필훈 대표가 다이렉트로 들여오는 원두들은 대개가 남미의 것들이다. 니카라과, 온두라스, 베네주엘라, 코스타리카의 오지 농장에서 그가 직접 감별한 원두가 로스팅되어 나에게 까지 전달되는 것이다.


아는가? 우리가 서울에서 마시는 커피 1잔 값에서 오직 1% 정도만이 남미의 저 커피 생산자에게 돌아간다. 나머지는 임대료, 프랜차이즈 운영비, 인건비 등이다. 이윤이 주 목적인 다국적 커피회사의 포획으로부터 농장주들을 지키기 위해 커피 리브레가 산지의 업자들을 후원하고 장기간 상생의 관계를 맺어오는 이유다. 내가 굳이 리브레를 이용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남미는 거의 다 가톨릭 국가들이다. 커피 농장주나 나나 모두 같은 신자들인 셈이다. 미사를 드리며, 오늘 산 커피 원두에 눈이 간다. 커피를 만든 시골 농장의 그을린 투박한 얼굴과 주름진 손의 현지인들을 생각한다. 고개를 드니 오늘 미사를 집전하는 저 사제의 고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여,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푸소서


원두는 매장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위에 언급한 커피 업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직구로 진짜 스페셜티 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스텀프 타운", "인텔리겐치아", "Joe's Coffee", "Porto Rico Importing"  등을 권한다. 네이버에 직구 업체도 있으니 찾아보면 현지에서 사먹는 것과 가격적인 면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로스팅한지 오래되지 않은 것들로 말이다. 배송비가 있으니, 몇 봉 사서 다른 이들과 나눠서 마시거나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좋겠다. 하나만 고른다면 스텀프 타운의 "헤어벤더(Hair Bender)" 원두를 추천한다. 미국 서부 포틀랜드의 작은 미용실 자리에서 시작한 스텀트 타운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산미가 있는데 블렌딩이 참 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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