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
사진: 베르비에 페스티벌 연주 실황, Medici tv
임윤찬, 반 클라이번 콩쿨을 18세 최연소로 우승한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어제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와 협연했다. 현지 청중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현지 언론도 호들갑 떨며, 그의 이름 뒤에 붙는 수식어를 이야기한다.
"매진(Sold-Out) 피아니스트"
그는 이제 20살이다.
그런 그가 나이를 무색게 하는 테크닉과 깊이, 여기에 소셜 계정도 지워버리고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는 구도자적인 면모, 우승했다고 실력이 는 것은 아니라는 겸손함까지 갖췄다.
유럽의 클래식 평론가들이 유독 아시아계 피아니스트에게는 박한 편이다. 조성진의 쇼팽 콩쿨 우승 당시 한 심사위원이 최하점을 일부러 주었다는 점도 그렇고, 랑랑과 유자왕에 대하여는 테크닉만 뛰어나고 깊이가 없다는 평을 일부러 하기도 한다. 그런 평론가들이 임윤찬을 까는 경우는 별로 없다. 왜일까?
내가 눈여겨보는 점은 따로 있다.
그의 반 클라이번 콩쿨 우승 후 기자 간담회가 열렸는데, 임윤찬은 특이한 고백을 한다. 바로 단테(Dante)의 신곡(Divina Commedia)을 하도 많이 읽어서 외울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이 멘트의 중요성이나 맥락을 놓치고 가볍게 다루었으나, 절대 그럴 일이 아니다. 임윤찬은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연주하면서 신곡을 읽어야 곡을 소화할 수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그 이후 탐독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점가에 부쩍 "쓸모" 시리즈가 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직접적인 이익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는 세태를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다. 쓸모없는(useless) 것들에 당신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말라고도 들리기 때문이다. 엠지들에게 신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 손 들라고 하면 과연 있을까? 있다 하더라도 하도 많이 읽어서 외울 정도가 되었다고 할만한 친구는? 없다고 본다. (생각해 보니 전 세대를 거쳐 별로 없겠다.)
신곡을 읽는다고 당장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고전은 접근성이 떨어진다. 난해하면서도 지루한 데다 양까지 많다.
해롤드 블룸(Harold Bloom) 예일대 교수가 있다. 그는 "서구의 고전(Western Canon)"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서구 문명에 있어 큰 영향을 끼친 고전들을 집대성한 목록을 말한다. 그가 단테의 신곡에 대하여 책에서 어떻게 평가했는지 찾아보았다.
"단테는 비범하게 대담하며(extraordinary audacity), 전통 기독교 문학에서 대적할 자가 없다(unmatched in the entire tradition of Christian literature), 독자로서는 예술의 한계를 경험하면서도 그 한계가 확장되거나 부서져버리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단테 자신은 셰익스피어를 능가하여 모든 한계를 무너뜨린다. (Dante breaks through all limitations far more personally and overtly than Shakespeare does.)"
쓸모가 있을까 싶은 신곡의 영향은 사실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로댕의 지옥의 문,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소설 다빈치 코드와 인페르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웹툰 신과 함께, 애니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이 신곡이 체계화한 지옥, 연옥, 천국의 모습을 재해석하고 있다.
단테는 시인이며, 신곡은 대서사시다. 지옥의 문을 지나며 나오는 유명한 구절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는 너무나 시적이며 인간적이다.
임윤찬은 이 구절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너의 별을 따라간다면 영광의 항구에 실패 없이 도달하리."
"너의 길을 따르라, 사람들은 말하게 두라."
단테는 고향 피렌체에서 쫓겨나 망명자 신분이었다. 그는 감시와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구도자이자 순례자였다. 그럼에도 고뇌하고 외로워하고 괴로움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신곡을 활짝 꽃 피웠다.
임윤찬이 그런 단테에 매료되었다니. 대중적으로야 베토벤 황제 연주도 너무나 좋았으나, 그의 연주와 해석이 돋보인 것은 단연 같은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의 "전람회의 그림" 연주였다. 무소르그스키의 이 곡은 연주자로서는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하고 연주 자체가 쉽지 않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연주 실황을 많이들 극찬하는데, 나는 임윤찬의 연주 실황을 보고 감히 이에 필적하는 연주라고 생각했다. 고전을 가까이하고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는 약관의 피아니스트. 나는 그의 이런 면모가 이번 연주에서 잘 드러났다고 본다. 서구 음악계가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는 테크닉적으로 완벽했다. 우아한 핑거링과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눈빛은 절대지지를 보내고 있는 여심의 팬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온몸을 던지는 연주로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피아니스트의 면모까지 보였다.
그를 보면 무진기행이라는 한 시대의 걸작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김승옥이 떠오른다. 그는 전에 없던 감수성과 문체로 쓴 단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한권으로 문단을 평정했다. 23살 이었다. 임윤찬 만큼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말고 부디 오랫동안 곁에 있어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