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티뷴 Aug 10. 2024

아빠와 아들의 2박 3일-부산

피처링: 엄마

아들은 고1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얼마전 아들과 허벅지 씨름을 한 적이 있다. 부자는 의자에 앉아 마주 본다. 나는 아들의 허벅지를 쪼이고, 아들은 반대로 아빠의 허벅지를 벌리는 그런 씨름이다. 나는 평소 로드 자전거를 탄다. 몇 년 되었다. 나이 먹어 근육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 허벅지는 쓸만하다고 자부해 왔다. 이참에 아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물의 왕국에 여전히 아빠가 왕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내심이었다.


"하나, 둘, 셋"

씨름이 시작되자마자 경기는 1초 만에 끝났다.

순식간에 내 허벅지는 지하철 쩍벌남 부럽지 않게 온 세상을 향해 열려있었다. 씨익 웃으며 아들은 일어났고 나는 시간이 멈춘 듯 망연자실한 채 그 자세로 몇초를 보냈다.


그 이후 변화가 생겼다. 아들의 방문을 갑자기 열면 녀석은 화들짝 놀래서 움찔했는데, 요즘은 느긋하고 짜증 나는 표정으로 "뭐?", "왜?" 하는 반응이다. 그렇게 심바는 바위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큰 애는 재수 중이다. 이번 여름 여행은 없겠거니 했다. 그런데 집에만 있기에는 올여름의 폭염이 너무나 무덥다. 딸은 학원에 가더라도, 나머지 식구들이라도 어딘가 도망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만 두고 다녀오자니 길게는 못 가고, 피서지 기분을 낼 수 있는 곳, 바다가 있는 부산으로 2박 3일 다녀오기로 정했다.


여행 첫날 7월 31일 아침이다. SRT 수서역 출발 시간은 08:00. 딸은 7시에는 집에서 나가 학원으로 향한다. 가까운 지하철 역까지는 데려다주고 와서 기차역으로 갈 생각이었다. 아내에게 전화가 온다.


"00이 택시 타고 가다가 내려주고 우리는 기차역 가면 되는 거 아냐?"

"그 생각을 못했네. 알았어"


시계를 보니 시간이 이미 애매하다. 차를 돌려 주차장에 세우고, 딸은 카카오 택시를 불러서 학원에 먼저 보냈다. 아내와 아들은 캐리어 가방을 끌고 아파트 앞 큰길로 내려온다.


"자... 이제 택시를 한대 더 부르면 되겠구먼."


아뿔싸. 딸이 타고 가고 있는 택시가 도착하기 전에는 한 대 더 부르는 게 원천적으로 안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다급히 아내를 손짓해 부른다.


"여보, 지금 당신 앱으로 카카오 택시 좀 한대 불러봐."


여행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카카오 택시? 나 그거 써본 적 없는데?"


"뭐라고? 그럼 지금이라도 앱 깔어!"


왜인지 모르겠으나 앱 설치하는데 하세월이다. 초조하게 지켜보는 내 머리에서는 벌써부터 김이 난다. 겨우 택시를 불렀는데, 16분 걸리는 거리에서 온단다. 시계를 보니 글렀다. 기차는 취소수수료를 내고 환불한다. 기차표를 구하러 앱을 들여다보지만 부산가는 기차는 매진이다. 주차장으로 도로 들어온다.


차 앞에 세식구가 모였다.


"차 끌고 부산 가자. 내가 운전할게"

아내는 할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가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아들이 나선다. “아빠, 그건 아닌 거 같아. 5시간은 걸릴 텐데 너무 멀고 아빠 힘들어"


순간 내가 미쳤지, 아들 말이 맞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정작 운전을 시작했으면 불평을 한 바가지는 쏟아냈을 나다. 돌아오는 기차표는 살아 있으니, 버스 타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아내는 이제는 능숙하게 앱을 연다. 가늘고 긴 손가락을 우아하게 움직여 고속터미널로 향하는 택시를 불렀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힙지로 유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