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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뷴 Aug 27. 2023

영화 오펜하이머의 명대사들

오펜하이머의 누적 관객수가 2백만을 넘어섰다. 나는 광복절 개봉일 아이맥스로 보고, 오늘 아내와 함께 동네 영화관에서 한번 더 보았다. 나로서는 영화를 2번 이상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만큼 수작이다. 다음 오스카상은 오펜하이머가 휩쓸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경쟁작을 쉽게 따돌릴 수 있는 분야가 "각본상"이라고 본다.  영화는 원작을 두고 있다. 2005년에 출간된 평전 “American Prometheus"다. 퓰리처 상을 받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해 준다. 그 죄로 영원히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을 받게 된다. 핵폭탄을 인류 역사상 처음 개발한 오펜하이머는 미국판 프로메테우스였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경의도 잠시, 핵폭탄 투하 후 그의 여생은 만신창이가 된다.


뛰어난 원전은 명화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놀란 감독은 이를 잘 안다. "배트맨 시리즈 3부작, 덩케르크, 인터스텔라, 인셉션, 메멘토, 인썸니아 그리고 프레스티지." 하나 같이 블록버스터다.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영리한 감독이다.  놀란 감독은 시나리오와 대사의 힘을 알고 직접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작에서도 각본은 그가 썼다.


오늘은 오펜하이머의 대사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내도 기억에 남는 대사들이 많았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시작해 보자.


Can you hear the music Robert?
로버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가?

오펜하이머는 성이고 이름은 로버트다. 영화 초반부에 닐스 보어(Niels Bohr) 교수라는 물리학의 석학이 나온다. 오펜하이머의 대학에 강연 차 방문한 그가 대학원생 오펜하이머에게 건네는 대사다. 그는 오펜하이머에게 지금 연구하고 있는 분야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지' 묻는다.


무슨 의미일까? 음악의 천재 모짜르트를 생각해보자. 그는 하나의 곡을 완성하기 전에 이미 머릿속에 무수히 많은 음악이 들렸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모짜르트가 직접 손으로 오선지에 옮겨 놓지 않으면 현실세계에서 다른 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재탄생할 수가 없다. 오펜하이머 역시 양자역학 분야의 천재였다. 그의 머릿속에는 별들의 탄생과 소멸, 중력, 에너지의 파동 등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영화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오펜하이머가 자신 만의 음악을 현실로 구현한 것이 원자폭탄 폭발 실험이었던 트리니티 프로젝트였다.


Power stays in the shadows
권력은 그림자 속에 있는 법이야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맡은 "스트로스"는 빌런이다. 해군 제독 출신의 그는 과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워싱턴의 정치공학에는 능수능란한 사람이었다. 그는 과거 원자력위원회 의장 시절 오펜하이머에게 망신을 당한 이후 오펜하이머에게 앙심을 품는다. 그리고 오펜하이머를  깎아내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정치인 스트로스는 상공부 장관이 되고 싶어 했다. 이 대사는 불리한 상황이었던 그가 유력한 타임지 잡지의 기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발간되게 한 후에 보좌관에게 말하는 장면이다. "Amateurs chase the sun and get burned. Power stays in the shadows"  "아마추어들은 태양을 쫓아다니다가 화상을 입고 말지. 권력은 그림자 속에 있는 데도 말이야." 스트로스의 말이다. 영화에서 스트로스가 나오는 장면은 유독 흑백이다. 그가 어둠 속의 혹은 그림자 속의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고 본다.


You don't get to commit to sin and then ask all of us to feel sorry for you when there are consequences.
당신은 죄악을 저지르지 않는 줄 알고 있다가는 막상 (처참한) 결과가 일어나니 우리들이 슬퍼해주기라도 바라는 거야?


자막의 번역을 원작에 충실하게 바꿔보았다. 에밀리 블런트가 오펜하이머의 아내 역할을 연기했다. 오펜하이머의 여자관계는 복잡했는데, 그는 진 태틀록이라는 여성과 불륜을 이어간다. 한참을 사귀던 오펜하이머는 그녀에게 더 이상 만나는 건 어렵다고 이별을 통보한다. 이에 진 태틀록은 자살을 해버린다. 충격을 받은 오펜하이머는 야산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방황한다. 부인 키티 오펜하이머는 여장부였다. 새벽녘 오펜하이머를 바위 아래에서 찾은 그녀는 남편의 옷깃을 움켜쥐고 속사포처럼 저 대사를 뱉는다. 오펜하이머에게는 죽비였고 그를 일으켜 세운 한마디였다.



Now I am become death, the destroyer of worlds.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영화 초반부다. 오펜하이머와의 잠자리에서 태틀록은 산스크리트 어로 된 책을 한 권 발견한다. 산스크리트 어도 읽을 줄 아냐며 소리 내 읽어보라고 하는데, 바로 그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다.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하지만 한편으로는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힌두어는 그의 미래를 예고하는 대사였다.


Just remember, it won't be for you... it would be for them
기억해요. 그건 당신을 위한 게 아니랍니다.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일이지요.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의 사용까지 통제할 수는 없는 일개 과학자일 뿐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비밀 프로젝트가 성공한 것 같다는 고백을 털어놓는다.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오펜하이머에게 전해준다. 그 사람들이 당신을 충분히 벌준 것 같을 때, 연어도, 감자샐러드도 대접하려고 할 거예요. 당신을 칭송하는 연설도 하고, 영광스러운 메달도 주겠지요. 당신 등을 두드리며 "이제 다 괜찮아요."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요. 그건 당신을 위한 게 아니랍니다.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한 일이지요."



영화 후반부에는 제이슨 클라크가 로저 롭 역할로 나온다. 어디서 봤다고? 맞다. 터미네이터 제네시스 편의 존 코너다. 원자폭탄이 개발되고 10년 가까이 되어 매카시즘 광풍이 불 때, 비공개 청문회가 조직된다. 오펜하이머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억지로 씌워 그가 이룬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의 보안 권한을 박탈하고자 만들어진 억지 청문회였다. 영화에서도 이 청문회 장면에 상당시간을 할애한다. 오펜하이머를 취조하는 역할을 바로 제이슨 클라크가 했다. 주고받는 대사의 양이 너무 많아 여기에 적기는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영화 전체에서 그의 연기가 가장 좋았다.


"인간 내면의 단순함과 복잡성, 인간 상호 간의 신뢰와 배신, 비범한 능력자들의 나이브함과 평범한 사람들의 야비함, 권력의 무자비함과 인간의 존엄성" 등이 그의 청문회 질문에서 세밀하게 그려지고 대비된다. 저 좁은 방에서 주고받는 대사들에 불과한대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몰입하게 되는 이유는 연기도 좋았지만 그 밑바탕이 되는 대사들의 힘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평전을 읽고 나서 내 브런치에 기고한 글이 있다.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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