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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 파파야 향기 Apr 30. 2022

도움과 오지랖은 어디서 오는가

오지랖이 넓다
오지랖이란 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관용 표현인 오지랖이 넓다는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이나 참견하는 면이 있는 사람에게 사용한다.


#그 할머니는 과연 고마웠을까?


목욕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에 다녀왔다.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니 노곤 노곤한 것이 피곤이 풀리고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벌떡 일어나시더니 우리 옆 자리에 서 계시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수도꼭지를 틀어 주셨다. 목욕탕마다 수도꼭지를 트는 방법이 달라서 처음 온 사람이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조금 멈칫하기도 한다. 그걸 보시고 그새를 못 참고 할머니에게 다가가 수도꼭지 트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분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분은 쑥스러운 듯 고맙다고 하시면서 우리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셔서 혼자 씻으셨다. 


엄마는 목욕탕에 딸이랑 같이 오는 것을 자랑처럼 말한다. 그런 엄마가 보기에 혼자 오신 할머니가 안쓰러우셨는지 또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분에게 가서 등을 밀어드리겠다며 막무가내로 등을 밀어주셨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늘 민망함을 느끼는 것은 내 몫이다. 등을 밀어드리고 자리로 오셔서 뿌듯하셨는지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 혼자 오시면 등 못 밀 텐데 내가 밀어드렸으니 시원하겠다. 그렇지? 나 잘했지?
 나 :  아이고 엄마, 저 할머니가 엄마한테 밀어 달라고 하지 않았잖아. 이건 오지랖이야. 
        요즘 사람들은 혼자 와서 조용히 씻고 가지  다른 사람에게 등 밀어 달라고 말하지 않는단 말이야. 
        왜 이렇게 오지랖이 넓으셔요~ 아이고... 진짜...


이렇게 잔소리를 해도 엄마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신다. 아마 엄마의 성향인 것 같다. 상대방이 말하지 않아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면 무조건 다가가서 도와주시는 분이다. 상대방이 고마워할 수도 있겠지만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오지랖을 너무나 싫어하면서도 그 엄마의 그 딸인지라 나도 오지랖이 넓은 편이다. 내가 먼저 도와주고 나서 그 사람이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거나 내 도움이 필요 없었다는 것을 느낄 때 뭔가 섭섭하기도 하다.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다른 사람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도와준다는 것은 과연 나쁜 일일까?

나의 해방 일지 중 

요즘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 속 한 장면을 보면서 문득 도움과 오지랖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물어보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도움을 준 것은 과연 나쁜 것일까?


염창희는 옆집 남자에게 계속 관심을 가지고 말을 건다. 그리고 그 사람과 더 친해지고 싶어서 원하지도 않는데 술을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준다. 냉장고에 술을 넣다가 우연히 집 안쪽 방 하나 가득 쌓여 있는 술병을 보고 물어보지 않고 모두 버려주기로 마음먹는다. 혼자로는 안 되니까 친구까지 불러 그 많은 병들을 낑낑대며 힘들게 방에서 꺼낸다. 그런데 그것을 본 술병의 주인 구 씨는 언짢아하면서 그냥 두라고 한다. 이에 창희는 선한 마음으로 도와주려고 한 일인데 그 마음도 몰라주고 오히려 기분 나빠하는 구 씨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씩씩대며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여동생 염미정은 어제 오빠와 구 씨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오빠 친구에게 들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말한다. 


염미정: 도와 달라고 했어? 치워 달라고 했냐고? 근데 왜 함부로 손대?
염창희: 그럼 봤는데 그냥 나오냐?
염미정: 인간을 갱생시키겠다는 의도가 오만해.....  혼자 버릴 수 없는 양 혼자 먹었어. 그리고 들켰어.
염청희: 뭘 들켜? 몰랐어? 우리가? 동네 사람들 다 알아.


오지랖이 넓은 나는 염창희가 그 병을 치워주려고 했던 선한 마음도 알겠고 염미정이 말한 물어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오만이라는 말도 100% 공감한다. 맞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려고 할 때 자신의 선한 마음도 중요하지만 먼저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것이 우선이다도와 달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고,  아직은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그 사람에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가끔은 자기가 도움이 필요한지 모를 때도 있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또는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데 망설일 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결국 드라마 속 구 씨는 다음 날 그 병들을 자기가 직접 다 치워버린다. 만약 염창희가 오지랖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빨리 치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염창희의 오지랖이 없어도 언젠가는 구 씨가 스스로 그것을 치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염창희의 오지랖이 계기가 되어 그 문제에 더 빨리 접근하게 되고 해결하게 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오지랖으로 원하지 않은 일들이 생겼을 때 당황하고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 일들은 어차피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였기에 누군가의 오지랖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오지랖이 넓은 한국 사람들은 문제가 많은 사람들일까? 


오지랖이 넓다는 우리나라의 관용 표현 중 하나다. 이 표현을 예를 들어 설명할 때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오지랖이 넓은 편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마 그것은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다 보니 그런 말들도 생긴 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깊고 넓다. 한국 사람의 특징을 말할 때 '정이 많다'라는 말은 빠지지 않고 나오는 특징 중 하나다. 그런데 '정이 많다'를 살짝 부정적인 시각에 본다면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과도 연결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22년에서 볼 때 오지랖은 거의 100%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단어가 되었다. 개인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초개인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서 오지랖은 그야말로 간섭과 월권행위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선한 오지라퍼들이 나타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미담 기사들이 실린다. 보이스피싱에 돈을 빼앗길 뻔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눈치껏 도와 범인을 잡게 한 택시기사라든가 은행 직원이라든가 이런 선한 오지라퍼들이 우리나라에는 어디서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아직은 우리나라가 살 만한 나라라고 느낀다. 


나는 선한 오지라퍼를 꿈꾼다. 조언하기를 좋아하고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게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통은 상대방을 위한 선한 마음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섭섭하기도 하고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하나 싶기도 하지만 내 도움으로 누군가가 잘 되고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기쁘다. 상대방과 상관없이 뿌듯해진다.  


다행히 목욕탕에서 만난 할머니는 오랜만에 등을 밀었다면서 커피 우유 두 개 사 주셨다. 고맙다고 인사하시고 나가시는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오지랖이 싫긴 했지만 할머니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흐뭇했다. 오늘의 오지랖으로 반성도 하고, 희망도 가져본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웃으며 도와주는 사람들이 고마울 때가 있다. 그래서 나의 착한 오지랖도 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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