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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Feb 22. 2023

대치동 사람들 1.

매력적인 그녀들.

‘bonjour! 차 한 잔 합시다!’


아침부터 카톡이 울린다.


작은 아이 친구 엄마다.

같은 업종에 일하고 있고(물론 그녀는 나와는 레벨이 다른 임원급이다!), 쉬는 날에는 백화점을 놀이터 삼아 명품 쇼핑을 하며, 퇴근길엔 동네 반찬 가게에 들러 자신이 좋아하는 반찬을 마구마구 사서 들어가 저녁을 포식하는 아주 통통 튀고 매력적인 여자다. 그녀는 ‘대치 키즈’로 자라 이 곳 대치에서 자신의 외동딸을 자신 처럼 ‘대치 키즈’로 키우고 있는 직장 여성이다.


평생 대치동 근방인 삼성동과 청담동까지가 자신의 행동 반경의 전부라, 강변 북로나 올림픽 대로를 타고 나간 경우도 일평생 한두번 밖에 없다면서 ‘강남 촌뜨기’라고 자칭하기도 한다.


첫 대면부터 자신의 이력을 가감 없이 커밍 아웃 하는 바람에, 상반된 성격이었던 나는 잠시 불편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사람 상대 많이 했던 나의 직업병상 재고 간보는 성향의 사람보단 솔직한 그녀의 성격이 오히려 진실된 매력으로 다가왔다.


대치 키즈답게 친정 식구들 모두가 대치동에 똘똘 뭉쳐 살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과 언니네 식구들.

그래서 어느 음식점이 맛있는지, 어느 미용실이 잘하는지, 어느 병원은 어떠한 경력을 갖고 있는지 등등..

참 정보가 많다.


난 늘 들어주고 오는 편이다. 딱히 내가 아는 정보도 없거니와, 내세울 것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지라 그녀가 빈틈없이 말하는 내용들을 잘 듣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들은 참고하는 편이다.


그런 그녀가 오늘 연차인가 보다.

카톡으로 만나자고 하는 걸 보니,,


카톡으로 연락은 가끔씩 하지만, 얼굴 본지는 꽤나 된 것 같아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고, 깔끔하게 잘 차려입고 근처 카페로 나갔다.

그녀는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모두 명품으로 휘감은 듯 하다. 내돈 주고는 절대 살 것 같지 않은 화려한 명품을 오히려 그녀는 잘 소화해 낸다.

이런 그녀와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추려면 적어도 명품백 한 개 정도는 들어줘야 하고, 옷도 ‘꾸안꾸’차림으로 나가줘야 행색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을 터였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명품 외에 대다수가 모르는 명품들.

그녀는 쇼핑을 즐기기 때문에 쇼핑 얘기도 늘상 소재에 오른다.

나는 사실, 반은 알아듣겠고, 반은 모르는 브랜드들이다. 그래도 그냥 수긍하며 '아는 척'한다.

거기서 뭐,, 계속 물어보는 것도 대화의 흐름을 끊어 놓을테고, 나 역시 아는 척 한다해서 그녀가 눈치를 못챘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알아서 대충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끊어주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겠지.


여튼 쇼핑 얘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아이들 학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다.

지금 시기엔 어느 학원으로 옮겨줘야 한다면서, 레벨 테스트를 당장 예약하라고 학원 링크를 카톡으로 바로 보내 준다.


그녀는 멀티가 되는 사람이다.

대화 도중에도 생각나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보내준다. 반면에 나는 이야기 듣기도 대화를 하기도, 그리고 그 정보를 내 머릿속에 입력 하기에도 버겁다.

늘상 대화를 끝내고 돌아올 때면 기빨린 듯, 에너지가 바닥나지만, 그래도 그녀와의 만남은 늘 유쾌하다.


사람 자체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일 뿐, 이걸 잘난 척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것일 게다.

그렇기에 자신의 불행한 결혼 생활 얘기도 적나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같은 사람은 손꼽는 친구 몇에게만 할 수 있는 치부 드러내는 얘기들을 말이다.


그녀와 얘기를 하다보면, 그 대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소재 거리도 워낙에 풍부하기도 하지만, 우리 같은 금융인이나 알아들을 법한 회사 바이어 이야기를 할 때면 더더욱 공감대가 형성된다.

특히나 그녀의 빅고객인 훈남 프랑스인 사진도 내게 보여 줄 땐, 나도 깔깔깔 웃을 정도로 유쾌하고 재미진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19금 외화를 추천해 주기도 하며, 명예 퇴직을 하는 나를 부럽다며 치켜 세워주기도 하는 그녀는 정말 깜찍하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이러한 당당함과 자신감은 아마도 있는 사람에게나 나올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싶다.






얼마 전,

둘째 아이와 단짝친구인 엄마와 녹색 활동을 같은 날 하게 되었다.


둘째 아이의 단짝친구는 같은 아파트 단지, 바로 옆동에 살고 있어 등하교 짝꿍 친구이기도 했거니와 성향도 비슷한 면이 많아 아주 친해졌다.


알고 보니, 그 친구의 부모는 명문대 의대를 함께 나와 현업이 의사였으며, 아이도 훌륭한 유전자를 받았는지 학원 스케줄에 맞춰 꼼꼼히 잘 따라가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어 몇 번 보았는데, 어른과 이야기 하는 것을 매우 즐겨하며, 헛투로 넘기는 것이 없는 아주 똘망한 아이였다.


녹색활동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그 아이의 엄마를 처음 보게 되었다.


-원래부터 대치동에 계셨었나요?


불현듯 내 입에서 튀어나온 첫 질문이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나와 같은 질문을 했다.

난 엉겁결에 이전에 미국에 좀 살았었고 대치로 들어온 건 3년 정도 되었다고 했다.

물론, 미국에도 살았었고, 대치를 3년 전에 들어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치에 들어오기 바로 전엔 마포에 있었고, 미국에 살았던건 우리 막둥이가 다섯 살 때이니, 한 참 전의 일이 아닌가.

왜 불쑥 미국 얘기가 나온건지 아직도 이해 불가다. 그 날 밤, 난 계속 이불킥을 했었더라는…


분명 그 이면에는 대치 토박이 의사 학부모에게 꿀리지 않겠다는 의도와 우리아이는 해외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아이이니, 지금 당장은 당신의 아이만큼은 못하더라도  열심히 하면 당신 아이처럼 똘망하게 잘 할 것이다.. 뭐 이런 자신감 없고 쪽팔린 비교우월적인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자존감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상황에서나 어느 시점에서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태도.

생각해 보면, 여태껏 나는 ‘누구보다 나은 상황이야.’ ‘누구보다는 더 괜찮아’를 되내이며, 끊임없이 늘 상대와 나를 지속적으로 비교하고, 비교 우위에 설 때에 자기위안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곳 대치동에선 그동안 살아왔던 나의 생존 방식들은 도리어 나를 험블한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 것임에 분명하다.

나 자신이 제대로 서지 않는 한, 이 거대한 대치동 왕국에서는 버틸 재간이 없으리라.


‘그래도 그간 잘해왔잖아.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헤쳐 나가면서..물론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성공했던 경험이 있었으니까 또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있음을 느껴야지.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며 살아 가다보면, 또 다른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테고.. 내자신을 살피고 존중하며 당당하게 살아 나갈거야.’


당당한 그녀들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독려해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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