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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Feb 20. 2023

어쩌다 대치동!

교육 땜에 들어온게 아니랍니다.

신학년이 된 나의 딸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에서부터 옷과 가방을 내팽개친다.

그리고 조잘조잘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조숙한 여자애들 치고는 말이 없을 법도 한 나이 이지만, 의식의 흐름으로 시작되는 아이의 수다는 지칠 줄 모른다.


-엄마! 지연이네 엄마 아빠 모두 의사래!


신학기가 되어 아이들이 호구 조사에 들어간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딸이 소속 되었던 전년도 반에서도 절반 이상의 부모가 의사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도 아니라면 판검사, 건축사, 한의사..

모두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 종사자들..


이 곳 대치동 빅3 재건축 아파트에 살고 있는 고학력, 고연봉 전문직 종사자 및 사업가들에게 속설 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덴다.


A아파트에서 돈자랑 하지마라!

B아파트에서 학벌자랑 하지마라!!

C아파트에서 권력자랑 하지마라!!!


역시 대치동은 대치동인가 보다.


오늘은, 딸이 하교 하면서 또 다시 뜬금 없는 말을 내뱉는다.

“엄마! 가윤이네 아빠도 의사래!”

곧이어, 연잇는 말..

“근데, 우리 엄마는 실업자!!”


하아~ 맞다. 실업자!

내가 실업자가 된 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이 곳으로 흘러 들어오게 된 건,

부모에게 받을 게 많았던 금수저도, 교육에 목멘 맹모도, 부동산 투자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진짜 어쩌다 보니,

감사하게 이 곳에 발을 붙이게 된 거다.


단지,

요즘 재테크를 외쳐 대는 유튜버들이 늘상 주장하는 시드머니를 성실히 모았을 뿐이었고,

시간 테크가 가미 되었다는 점이 결정적 역할을 해 주었을 것이다.


조금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다른 친구들보다 결혼이 빨랐던 나는,

양가의 도움없이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당시 최선책이었던 마포에서 일명 ‘딱지’라 불리는 재개발 입주권을 덜썩 손에 넣었고, 친구따라 가봤던 화려한 잠실의 분위기에 매료 되어 부동산 불황기 때에 그 곳으로 갈아 탔을 뿐이었으며, 공교롭게도 둘째를 낳고 복직한 곳인 대치동에서 그 점잖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끌려 부동산 호황기가 시작되는 초입에 잠실과 대치의  갭이 좁혀진 틈을 타서 지금 살고 있는 이 곳으로 터전을 옮겼던 것이었다.


물론, 주변에선 말들이 많았다.

큰 금액의 부동산 덩어리를 어떻게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그리 빨리 결정하냐고들 말이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 땐 자산 증식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고, 늘상 의심많고 꼼꼼한 성격의 우리 집 부군이라면 절대 행하지 못했을 액션이었다.


왜 여자들이 부동산을 더 잘한다고 하는 줄 아는가.

바로 쇼핑을 잘 하기 때문이란다.

쇼핑 좋아하고 잘 하는 그 ‘매의 눈’이 부동산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 집의 자산은 훨씬 더 성장할 것이라는 것에 한 표.


여하튼, 우리는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곳 대치동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고, 생각보다 이 곳 대치동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란 것을 하루가 다르게 체감해 가고 있다.


어쩌다 살게 된 대치동에서 제대로 이 곳 파악도 하기 전에, 나름 굵직한 대기업 팀장과 외국계 은행의 팀장으로 고액 연봉을 받고 있던 우리 부부에게 닥친 나의 '퇴직 결정'은 실로 어마 어마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음에는 틀림 없었다.




양재천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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