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고 Feb 22. 2023

대치동 사람들 2.

비교에 얽매인 삶

추워진 겨울, 몽클레어 키즈 패딩을 입고 조그마한 여자 아이가 마이크로 킥보드를 타고 우리집에 놀러 왔다.

둘째 아이와 친해진 아이였다.

너무나 왜소했고, 집에서 간식으로 주는 과자도 잘 먹질 않았다.

저녁 늦게까지 놀고 집에 간다는 그 아이를 나와 둘째 아이가 그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분명 저 집도 대단한 집이겠지.’


그러한 생각이 들었던 건, 노후화 된 아파트들만 빼곡한 이 곳에 새로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아이에게 사주기엔 큰 금액인 몽클레어 패딩에 마이크로 킥보드면 대강 각이 나온다.

그 아이의 아파트 입구에 들어가려는데, 그 아이 엄마가 색깔만 다른 똑같은 패딩을 입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엄마예요. 아이들이 친하게 놀아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첫인상은 참 친근했다. 빼쩍 마른 외모에 단정하게 묶은 머리, 그리고 몽클레어 패딩.


-는 지금 휴직중이에요. 공사에 다니고 있고요. 전세 난민이랍니다. 내년에 만기인데 전세가가 너무 올라 이사가야할 판이네요. 흐흐


하하.

초면에 또 커밍아웃. 전세 난민이라는 말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답해줘야할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내심 드디어 나와 같은 소시민을 찾았다는 마음에 반가웠다.


여기에도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있는 동네였어!


물론 모든 호구 조사가 끝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간 내가 만나왔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이후에도 몇 번의 티타임을 통해 아이들의 학원문제, 성적문제, 그리고 재테크 등등 조금씩 그녀를 알아 가게 되었으나,  간간히 나오는 대화 속에 끊임없이 나보다 덜한가 더한가를 재며 소시민 찾기에 급급한 나를 보면서 더이상의 만남은 무의미하다고 결론 지었다.


이를테면, 그녀가 8개월 전에 자신의 차로 테슬라를 뽑았는데 아직도 미출고 중이란다. 그 사이 차값이 올라 차테크에 성공했다는 둥(나는 아직 자차도 없는 뚜벅이 신세), 자신의 딸이 이번에 부반장이 되었다는 둥(나의 딸은 반장 선거에서 낙방했지만), 혹은 여자는 직업이 꼭 있어야 한다는 둥(현재 나는 퇴직하여 무직 상태) 대화 속에서 자꾸 그녀와 나를 비교하며 나를 잃어가는 기분들이 싫어졌다.


그녀 역시 대화 속에서 부동산 매매를 못한 것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워킹맘으로 큰 아이를 제대로 케어 하지 못한 탓에 대치동 학원 열차에 올라 타지 못하고 과외를 전전하는 현 상황을 자학하는 말들로 가득했다. 늘상 교류 후에 나를 거스르는 그 무언가들로 나는 어렵게 찾은 소시민을 정리하기로 했다.


비교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다.

경중의 문제이지, 그 누구도 '비교'라는 지옥에서 빗겨나가기 쉽지가 않다.

안타깝게도 나같이 예민한 사람들은 그 비교의 무게가 커서 주변에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잃어가며 살아가는 것 같다.

은연 중에 나의 생각이 행동으로 반응할테고, 또한 말로써 내 아이에게 나와 똑같이 ‘비교의 삶’이라는 헛된 짐을 지어 주게 되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볼 일이다.

분명 나도 모르게 못된 고질병처럼 아이에게 전염되고 있는건지도..


서늘해지는 밤이다.




이전 02화 대치동 사람들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