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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Feb 22. 2023

대치동 사람들 3.

우리 통로 이웃

-엄마! 나 오늘도 뚱땡이 아줌마 만났어.

인사하기 싫은데, 눈이 마주쳐서 인사할 수 밖에 없었지.


작은 아이가 하교 후 현관문을 들어오며 재잘거린다.


뚱땡이 아줌마.

이렇게 표현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외관상으로 보여지기로는 비대한 몸집에 뒤뚱뒤뚱 걷는 모양새가  진.정. 임신 8개월 차는 되어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


그녀는 얼마 전, 우리 통로에 이사온 우리 작은 아이와 같은 학년 아이의 엄마이다.

큰 체격에 걸맞게 편한 소재의 헐렁한 검은면 원피스만을 입고 다니며, 넓은 채양의 모자를 푹 뒤집어 쓰고 늘상 검정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짧은 머리에 히피펌. 게다가 단단히 하나로 묶어 쥐꽁지를 연상시키는 희귀한 헤어스타일은 우리 엄마들 시대에나 있을 법 할까. 그냥 존재만으로도 눈이 가는 여자이다.


그녀는 제네시스 EQ900을 타고 다닌다.


아침마다 코 앞 초등학교를 자차로 등교해 준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차 안을 흘끔 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그 럭셔리할 만한 차 안이 이사 차량처럼 짐이 넘치고 넘친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쓰레기 더미에 덮쳐진 담요에 베개까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아이들은 엘레베이터이건 길가에서건 자주 보이는데, 남편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참 미스테리했다.


그런데 지난 주 드디어! 보았다.

왜소한 키에 마른 장작같은 외모. 그녀의 남편이 분명해 보였다.

평일 아침 늘 같은 시각에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이 드.디.어 목격된 것이었다.

과연 직업이 뭐기에.. 평일 아침에.. 부인이 안하는.. 집안 살림을??

갈수록 궁금해지는 집이다.



그녀는 늘 엘레베이터에서 내려올 때나 집 앞 인도에서 마주칠 때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고 있다.

무언가 바쁘다. 자세히 엿들어보면, 학원과 혹은 학부모들과 레벨테스트 얘기를 주고 받는다.

오로지 모든 열정과 관심사는 결국 애들 공부.

차 안에서 주로 생활하는 이유도 아이들이 학원 갈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그 육중한 몸매로 자꾸 왔다갔다 하는 것이 분명 귀찮았을테고, 어찌보면 시간도 아까웠을 테고 그랬던것 같다.


그 집 아이들은 빵을 주식으로 생활 하는 것 같았다.

아침 등교할 때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적이 여러번 있는데, 한 손에는 빵을 한 손에는 우유를 들고 먹으며 차에 올라탄다.

지난 번에는 엘레베이터에서 그녀가 들고 내린 음식물 쓰레기냄새로 우리 아이들이 집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헛구역질 했던 기억이 있다. 거의 집안 살림이나 밥은 안 할 것으로 예상된다.(보다 못한 남편이 대신 하는 것이 아닐까)

진짜 그녀의 집을 들어가면 혹시 거실에 큰 책상과 벽면에 걸린 칠판이 전부인 진정한 대치동 ‘돼지 엄마’가 아닐까.


<‘돼지엄마’라는 사전적 정의는 ‘교육열이 매우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돼지엄마가 사는 통로는 절대 시험기간에 잡음과 소음으로 아이들 교육에 해를 끼쳐서는 살기 힘들다 했다.

수시로 인터폰 경고를 해대고, 엘레베이터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째리는 눈빛에 기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고 작은 아이 친구 엄마가 귀뜸해 주었다.

시험 기간에 경찰 차가 오는 경우도 흔치 않게 보이긴 한다. 분명 누군가의 신고가 있었으리라.


허나, 오래된 낡은 아파트라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인테리어 잡음들.

절대 돼지맘 통로에선 불가한 일일 것이다.그래서 인테리어 진행을 위해 이사오는 사람들이 케잌이며 선물이며 이웃 집에 켜켜이 안겨주며 극도로 눈치를 봐야 한다.

나 역시 이 곳으로 이사올 때, 이웃 집들에게 케잌을 사서 안겨 주었으나, 끝끝내 아랫집에선 받지 않겠다며 거부했고, 소음이 심할 경우 강한 컴플레인을 놓겠다는 엄포까지 놓는 바람에 여간 난처하지 않았었다.


여하튼 체격적으로 보나 뿜는 포스로 보나, 그리고 하는 행동으로 보나 그녀가 ‘돼지맘’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난, 그녀와 인사를 트고 싶진 않다.

아무리 어마 어마한 학원정보가 그녀의 뇌 소프트웨어 안에 내재되어 있을지라도.




또 다른 부류의 ‘돼지 엄마’라 예견 되는 여자도 살고 있다.


초등학생 두 명의 아들들과 함께 동행 하는 여자인데, 미국에서 살다가 나온 게 딱 티나는 각이다.

우리도 미국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모양새나 행동에서 확실히 미국 스멜(smell)이 난다.

여기서 말하는 미국 냄새란 라이프 스타일이 어메리칸처럼 외향적이라거나 자유로워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교환 교수나 혹은 유학을 생활을 마치고 들어온 주부의 모양새라는 것이다.


단정하고 깔끔한 외모에 엘레베이터 안에서 아이들과 미국식 영어로 대화를 하고, 학원 숙제를 점검하며 그날의 스케쥴을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설명해 준다.

다정한 말투 속에 단호함이 있으며, 그것이 당연한 규율이라 여기는 듯한 아이들의 눈빛과 태도는 꽤나 순종적이다.


'숙제해라, 학원가라' 늘상 하는 나의 잔소리에 한 마디면 열 마디로 대꾸하는 나의 작은 아이와는 사뭇 다르다.

한 때는 순종적인 아이들을 가진 그녀가 부럽기까지 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아이를 대하는 그녀 역시 진정 교육에 올인하는 엄마 일게다.

늘 학원으로 아이들을 라이드 하느라, 주차장을 서성이는 경우가 많이 목격되며, 아이들을 모두 픽업해서 데리고 들어올 저녁시간에는 양손 가득히 반찬 가게에서 공수해 온 음식들이 한아름 들리어져 있다.


여기서 잠깐!

대치동의 반찬가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겠다.

이 곳의 반찬 가게들은 일반 지역보다 그 숫자와 이용 빈도에 있어 과하다.

하루 종일 붐빈다.

거의 기업과도 같다. 맛 좋기로 입소문이라도 나면, 매출액이 실로 어마 어마하다.

그래서 반찬 가게들도 우후죽순 늘어나는데, 대부분 망하는 가게는 못찾아 볼 정도이다.


처음엔, 나 역시 음식에 나름 자신이 있어서 직접 만들어 아이들을 먹였지만,

반찬 가게에서 그 날의 메인 음식과 사이드 음식들을 몇 가지 사서 맛보고서는 굳이 힘들게 돈들여 가며 해 먹일 필요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맛이 과하지 않다. 어떨 땐 집에서 한 음식보다 더 집밥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물론 가격이 사악해서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반찬 만드는데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돼지맘들에겐 굉장히 필요한 곳이리라.

여튼지간, 대치동에서의 반찬 가게의 숫자와 이용 빈도는 타지역보다 훨씬 우세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나왔던 일타 강사와 반찬 가게 사장의 러브스토리라는 소재는 가히 상상할 수 있는 꺼리임에는 분명한 듯.




또 다른 부류의 돼지 엄마도 있다.

작은 아이의 반에 최근 우리 아이와 친해진 A가 있는데, 우리 아이가 집에 와서 조잘대며 말하는 A는 아주 부지런하고 똘똘한 돼지 엄마를 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아침식사를 하는데, 식사의 종류로는 오트밀과 베리류의 과일, 그리고 우유를 먹는다고 했다.

식사 후, 등교 전까지 딱 20분의 여유 시간에는 꼭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을 엄마와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주고 받고 온다고 했다.


Wow~

정말 매일 이런 시간들이 모여 몇 년 후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드러나겠구나 싶었다.


이 곳은 돈보다 시간을 중요시 여기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교육’이라는 일념으로 한 곳을 향해 매진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은 금과도 같은 곳이리라.


이밖에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돼지 엄마들은 이 곳 대치동에 무지기수로 많을 테다.

아마도 각 호의 모든 집들의 엄마들이 죄다 돼지 엄마일 수도 있겠다. 단지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이 낡은 아파트 안에서 질 낮은 삶을 살아가더라도 대치동으로 꾸역꾸역 들어오는 이유들이 있는 것이다.






책 ’원씽‘에서 보면 카네기 철강 회사의 대표 앤드루 카네기가 펜실베니이아 피츠버그에서 상업전문대학 학생들 앞에서 연설한 대목이 인상 깊다.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달걀을 모두 한 바구니에 담고 그 바구니를 잘 지키는 것이 성공하는 길입니다!!


주위를 잘 살펴 보면 달걀을 가장 많이 깨뜨리는 사람은 하나의 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많은 바구니를 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공의 기본 조건이자 위대한 비밀은 바로 자신의 에너지와 생각, 돈을 현재 본인이 선택한 가장 중요한 하나의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곳 대치동에 와서 최종 종착지인 성공적인 입시에 제대로 붙어보고자 한다면, 진짜 이 돼지맘들처럼 자신의 에너지와 생각, 돈을 모두 ‘교육’에 초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잡념과 전혀 득도 되지 않는 패배 의식으로 하루하루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내가 또 조급해지는 대목이다.

뭐 한가지 일념도 목적도 없이 주변사람들만 기웃거리며, 그들의 삶에만 취한 나머지 ‘비교’라는 헛된 마음에 감정 소모만 하고 있으니..


아이 교육이면 교육, 재테크라면 재테크, 내 커리어라면 커리어..

제발 한 가지라도 좀 집중 하자고 채찍하게 하는 날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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