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색 트레이닝바지, 회색 후드티, 검정 패딩 점퍼를 입은 그들이 온다.
대치로 들어온지 4년차.
우리 막둥이가 초등 1학년 끝나갈 무렵 이 곳에 들어왔던 지라, 아직까지 이전 지역의 초등 1학년 맘들과 단톡을 함께 하는 사이이다.
내가 이사와 함께 자연스런 퇴장을 해도 그만이었지만, 당시 직장맘이었고 코로나로 인해 이 지역 엄마들과 도통 연계할 수 있는 끈이 없었던 탓에 굳이 그 단톡방을 나오지는 않았다.
그리고 엄마들은 다 공감하지 않는가.
코로나 이전의 1학년 맘들이 아이들의 그룹핑을 위해 얼마나 끈끈한 인맥을 유지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지난 주, 갑작스레 모임이 진행 되었고, 나역시 간만에 OO대교를 건너 이전 지역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나름 반가운 얼굴들을 볼 생각하니, 뭐라도 그녀들의 손에 앉겨 주고 싶은 마음에 근처 스콘 집에 들러 두어 박스 포장을 하여 갔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대치동 가니까 좋아요?
또 다른 B,
-언니! 여기도 이제 OO동에 학원가 쭉 생겨서 좋아졌어요. 사실 X동으로 학원 라이드 하느라 힘들었었는데 이젠 해결이 되었네요. 근데 AA는 대치에서 공부 잘해요? 잘 따라가기는 하나요?
또 다른 C,
-거기 애들은 학잠이 다 SNU라면서? AA도 부담되겠네~
또 다른 D,
-우리 조카는 대치동 학원 한 번도 안가고 이번에 서울대 붙었어^^
그냥 여기까지만 하겠다.
‘대치’라는 곳에 사실 교육 땜에 들어온 것이 아닌 나로서는, 이런 그녀들의 이야기가 다소, 아니 너~~~~무나 부담스럽다.
이 곳 대치는 일명 ’SKY’를 가야 본전 일테고, 못가면 애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부각 시키며 부모는 헛돈 쓴 모질이 취급을 당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구역이다.
비단 그녀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 곳에 들어올 당시, 회사 직원들 중, 애 엄마들이라면 대부분 색안경을 끼고, 꼭 어디 잘 되나 보자라는 팥쥐맘 심보로 내 심경에 스크래치 냈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또한 남들만 그러겠나.
시댁 어른들은 아예 대놓고 부모 욕심에 애들 고생만 시킨다는 둥, 거기서 교육시키면 서울대 가야하는 거 아니냐는 둥 속 모르는 소리만 해대고 있으니.
지금처럼 학원에 대한 회의감과 공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보내는 나에게 최악의 적들이 도처에 깔려있었던 셈이었다.
그냥 난 그들에게,
늘상 같은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는다.
네. 성적이 원하는 만큼 아니어서
저도, 아이도 힘들어 한답니다!!
(됐습니까? 원하는 답이 되셨나요??)
-근데, 대치동에 그렇게 정신과랑 심리치료가 많다면서? 그리고,, 자살도.. 그렇…게 많아??
나와 동갑인 여느 엄마의 말을 듣고,
에라~~~~잇!
사들고 간 스콘 박스를 냅다 집어 던지고 나오고 싶은 맘이 진짜 굴뚝 같았다.
아이들이 공부만 해서 인성이 개차반이다 뭐다, 학원에 가져다 바치는 돈이 도대체 한 달에 얼마냐. 학원 전기세, 임대료 내주는 꼴 안되려면 탑권에 들어가야하는 거 아니냐는 등등..
토픽이 ‘대치’로 시작하면, 끝도 없이 몇 시간이고 언성까지 올라가며 대화가 끊이질 않는다.
결국 기.승.전.‘대치는 갈 곳이 못돼!’로 마무리 되는 대화.
밤 10시.
검정색 트레이닝바지, 회색 후드티, 검정색 패딩 잠바(겨울), 키 160전후.
무채색 옷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누군가 그러더라.
밤 10시 넘어서 딸래미 데리러 갔는데, 다… 우리 딸래미인 줄 알았다고.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이다.
애들은 그 어렵고 많은 공부. 진심을 다해 한다. 무채색 옷만 입고, 화장 얼굴은 보기 힘들고.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대치동 엄마들은 어떠한가.
내가 지금껏 지내면서 겪었던 그녀들은 솔직하다.
최소한 숨기고 안하는 척은 안한다. 솔직 당당하게 학원은 몇 개 보내고, 과외는 뭘 시키고.
애들 하나 더 먹이고 더 공부시키려고 막간을 이용해 간식과 밥을 챙기고, 종종 걸음으로 학원가의 설명회와 마트를 다니며, 학교와 학원에서 힘들었을 아이들 마음을 잊지 않고 다독거려 주기도 해야 한다. 여느 지역과 다름 없이 아이들에게 ‘지극정성’이란 말이다. 부유한 고소득자들도 많지만, 아이들 공부를 위해 들어온 소시민들도 많은 지역이라 생각한다. 엄마 본인에게 여유 부리지 않고 아이를 위해 온전히 시간과 돈을 다한다.
교육에 허황된 욕심을 품고 들어와 아이들 쥐 잡듯 학원으로 몰아가는 여편네들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극단으로 치닫는 엄마들로만 채워진 동네라고 치부하지는 말자.
지극히 일반적인, 자식의 공부를 위해 열심인 엄마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지역적 특색으로 비교 아닌 비교가 더해져 조금 더 치열하기는 할테다.
그런데, 사실 나같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불안한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내 아이를 파악했다는 가정 하에 그에 맞는 교육을 시키는 여자.
사실, 이 곳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겸손해 지는 동네이기는 하다.
공부든 뭐든 열심인 곳이다. 진심을 다하는 곳이다. 그래서,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음’을, 드라마에서만 그려지는 ‘돼지엄마 대치모’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너무 극단으로 치닫으며 상처 주는 말들은 어줍짢게 이 곳에 발 붙이고 있는 나에게 가려 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오늘도 밤 10시.
어김없이 이어지는 무채색 옷들의 행렬!
그들을 생각하며, 나 역시 마음을 다잡고 오늘의 목표를 다해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