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와 아이들
대치동 학원가 근처 카페는 평일이고 주말이고 발 디딜 틈이 없다.
대치동 아이들과 엄마들은 초, 중, 고 할 것 없이 모두들 학원과 학원 사이의 짜투리 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 놓고, 다이어리에 입시 정보를 빼곡히 담고 있는 엄마들.
혹은 학원과 학원 사이의 틈새를 숙제와 복습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 모여든 아이들.
아니면 미리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아이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간식을 조금이라도 먹이기 위해 기다리는 여자들.
사실 시간을 돈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대치동 사람들이다.
직접 이 곳에서 살며 체감하다 보니, 교육에 진심인 그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지나가던 아이들의 눈빛과 행동에 대해 놀랐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화장을 했다거나, 커플로 다니는 남녀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수수한 체육복 차림에 피곤해서 많이 쩔어보이는 낯빛들.
자신의 아이를 중학교에 첫 입학 시킨 한 학부모는 고액의 비용을 들여 교복바지, 치마 등 종류별로 2벌씩 구매했지만, 늘상 입고 다니는 것은 체육복. 결국 거의 입지 않은 새교복은 이제 작아져 못입게 되었음을 끌탕했다. 차라리 체육복이나 여분으로 더 사주는 편이 나았을 거라며..
이처럼 대부분 학교나 학원가에 몰려드는 아이들은 하교 후 편한 학교 체육복을 입고 서성인다.
이사 온 후로 며칠 지나지 않아 한 여중생과 부딪칠 뻔 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가 영단어장을 외우며 걸어가는 바람에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일어난 경우였다.
나 역시 발을 접질러 크게 다칠 뻔 했으나 겨우 중심을 잡았고, 그 아이는 나를 치고도 빤히 (피곤에 쩐 눈빛으로) 쳐다보며 전혀 미안한 기색도 없이 또다시 영단어책을 외우며 지나쳐 갔다.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라서 내가 주의를 주려는 시간조차 허용 되질 못했고, 이미 그 아이는 저 멀리 가버린 터이기도 했다.
이후에도 몇 번 같은 경험을 했었고, 그래서 아이들이 영단어를 외우며 갈 때에는 나도 모르게 조심히 피해 주는 경우가 생겼다.
치열한 경쟁과 과도한 학습량으로 이 곳 학생들에겐 조금의 여유도 보이질 않는다. 물론 타지역도 요즘과 같은 입시에서는 같은 양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곳은 한 문제 차이로도 입결에 영향을 미치는 등급이 1~2개씩 밀려 난다고들 한다니, 더 말해 뭣하랴 싶기도 하다.
그렇게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이라는 12년의 소중한 청소년기를 입시 경쟁판에서 치열하게 보내고 나면, 대학교에 들어가 그리고 사회에 나와 요즘처럼 공정과 상식을 외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말의 학원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아침부터 전국구에서 몰려드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인파로 주변 상권은 대목이 된다.
일전에 인천에 거주하는 회사 동료는 자신의 아이가 필요로 하는 ‘미적분’ 강의를 대치동 일타강사에게 듣기 위해 주말마다 올라온다고 했다.
새벽같이 올라와서 오전 수업을 듣고 아이와 함께 점심을 먹어주고 난 후, 오후 수업 마칠 때까지 그 직원은 대치동 일대를 배회한다며 말했다. 대화를 하다보니, 주차료 때문에 너무 부담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내가 우리 아파트 방문 차량으로 해서 주차하라고 권하기도 했었지만, 그것도 부담스러웠는지 생각해 보겠다는 말만 하고, 더이상 이야기가 없었다.
이런 부모와 학생들이 비단 한 둘은 아닐 것이다.
학원 주변에선 캐리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지방에서 주말마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며 주말 학원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경제력이 뒷받침 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경제력이 된다 하더라도 매주 반복되는 이러한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테다.
그래서 모두들 공부 좀 한다치면, 대치동으로 부득불 이사오는 것이리라.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일들이 제각각이라 내 관점 내 시각에서 피력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사고 방식을 존중하고, 나 역시 필요로 한다면 아이와 함께 이 나라의 입시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다.
하지만,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어진 현시점에서 구태의연한 이전의 교육방식을 따르며 돈과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이미 6년 전, 현재의 교육시스템과 상황을 정확히 예측한 바 있는 메가스터디 손주은 회장이 얼마전 사교육 시장의 절벽이 오고 있음을 주장하고 있어 현재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는 현재 사교육 시장의 말기적인 상태, 학령 인구의 감소로 인한 사교육 종말을 언급하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한 교육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고 계속해서 사교육에만 올인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세상은 우리의 예측보다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대치동 교육은 현재 '의치한'을 위해 초등부터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다.
'의치한'을 가기 위해선 초중고 수,과학 커리를 꿰고 있어야 하며, 연관 단원끼리의 흐름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초등 3학년 말에는 중등 수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원가의 마케팅에 여러 부모들은 조바심과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이것이 현재 대치동 교육의 현실이다.
향후에도 결국 살아남는 직업을 위한, 그 좁은 문을 향한 걸음을 지치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어떠한 방법과 방향이 향후 정답이 될런지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 아이를 잘 관찰하고 내 아이의 상황에 맞게 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도 공부해야한다. 아이에 대해, 그리고 입시에 대해 말이다.
결국 대한민국에 살고 있고, 이 나라의 입시를 치루겠다고 결정했다면, 현명한 부모로 거듭나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묵묵히 나아가는 방법 밖엔 도리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