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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고 Feb 24. 2023

대치동에서의 소시민이란..

내가 이 곳을 못떠나는 이유

‘소시민’의 정의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중간 계급에 속하는 소상인, 수공업자, 하급 봉급생활자, 하급 공무원 따위를 통칭하는 말.


현재 대치동에 살고 있는 내 입장에서 주관적으로 정의 내리는 소시민이란,,

우리 가정처럼 전문직이 아닌 외벌이이며, 자수 성가하여 어디 빌붙을 때가 없는, 나름 한 달의 급여로 빠듯하게 살아가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말한다.



내가 찾고 있는 소시민은 공감대가 비슷 하고, 사정이 별반 차이가 없다 보니 누가 더 상황이 좋고 나쁨의 비교를 덜 할 수 있는 동네 친구라면 참 좋겠다.(한가지 더 욕심을 내보자면, 술도 할 줄 알아  마음이 헛헛할 때 근처 치킨 집에서 생맥주 한 잔 걸칠 수 있는 사람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이전보다 시간은 많아졌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있다면 많은 의지가 될 거라는 생각에 브런치 글을 쓰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퇴사 후, 내 캡파를 능가하는 동네에 살며, ‘비교’의 늪에 빠져 하루 하루 버티고 있으니 나 혼자 괴로울 뿐이다.


인생의 터닝포인트와 같은 지금 시점에 서로 맘을 나눌 수 있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찾아 함께 동행해 나간다면 그래도 덜 힘들지 않을까.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속이 시끄러워 질 때면, 여러 생각들을 접어두고 바로 코앞의 양재천으로 나가 걷기 운동을 시작한다.

퇴직 결정을 앞두고서도 몇날 몇일을 수도 없이 걸었으며, 인간 관계에서 오는 상실감을 겪어낼 때에도 여지 없이 나와 함께 해 주었던 곳은 바로 양재천이었다.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추스르며 위안을 받아가며 걷고 또 걸었다.

양재천의 4계절을 모두 진심으로 느껴가며 역시 대치동은 살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걸 체감해 갔다.

열심히 걷다 보면, 늘 ‘연인의 거리’까지 우리 집에서 1.5 km를 걸어낸다.

어김없이 목표 지점을 통과 하고 나서 오늘도 운동량을 채웠다는 자축을 하고서는 내게 보상이라도 하듯 나의 아지트에 들어가 시원한 코젤다크시나몬 한 잔을 들이키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4계절이 모두 예쁜 양재천이지만, 봄과 가을을 맞이하는 태도는 달라야 한다.

봄에는 벚꽃 비로 나의 감성을 한 없이 자극하기에 나풀거리는 예쁜 스커트라도 입고 거닐어야 할 것 같고, 가을에는 초절정 단풍과 메테세콰이어 길에서 한참을 사색하게 해주므로 멋드러진 트렌치코트라도 걸쳐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양재천변 카페거리는 대부분이 테라스 식당이다.

외국을 방불케하는 분위기가 곁들어진 테라스에 앉아 와인 한 잔, 맥주 한 잔 마셔 준다면 ‘인생 뭐 별거 있나’ 싶은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한다.

특히나 외국 생활을 자주 했던 우리 가족에겐 이 곳들이 그리운 추억을 되살아나게 해주는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곳이 지척에 있으니, 이 아름다운 곳들을 놔두고 짐을 싸고 싶지는 않다.



양재천 카페거리 안쪽으로 들어오면 조그마한 많은 카페와 와인 식당들이 있는데,

그 중에 나의 최애 커피집이  된 이 곳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빵순이인 내가 가장 사랑하는 스콘 맛집으로 중독성이 있다. 겉바속촉은 기본.

비스킷 같은 겉의 바삭함과 속안의 촉촉한 버터향의 스콘 맛은 대한민국 최고라 칭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나갈 때 빈 손으로 가기 싫고 무언가 그들의 손에 얹어 주고 오고 싶은 날엔,

어김없이 들러 스콘 한 박스를 포장해 간다.

6개 들입이면 근사하게 한 박스가 완성된다.

스콘에 맛을 들이기 이전엔 화려하게 치장한 스콘들로만 눈이 갔지만, 결국 진정한 스콘맛은 버터밀크 기본 오리지널 스콘에서 느낄 수 있었다.

스콘과 함께 갓내린 커피 한 잔이면, 모든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라가는 듯 했다.


퇴사 후,

오전에 특별한 일이 없을 땐, 노트북을 싸 들고 이 곳 스콘 카페에 와서 아침으로 스콘과 커피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재직 중엔, 얼마나 그리던 로망이었던가.

회사에 다닐 때엔, 카페에 앉아 글을 쓰며 하루를 연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심한 사치라고 생각했던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런 기회가 왔는데도 하루 하루 제대로 ‘더해빙(The Havings)’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기웃 거리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참 한심한 삶을 살고 있었다.


가끔씩 생각나고 궁금하고 보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가면서, 나에게 주어진 환경에 ‘있음’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살펴 가며 살아가다보면, 내게도 또 다른 기회가 오지 않을까.

조급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그동안 나도 모르게 얻어졌던 기회에 감사하며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만의 길을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앞서 언급한 모든 아지트를 차치하고라도, 아무리 험블한 삶이라 자초하더라도 이 곳을 떠난다는 것은 아직 엄두가 나질 않는다.

누구들처럼 대치키즈로 자라난 것도 아닌, 지방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지극한 소시민이지만,

그렇다고 이 곳에 발 붙이지 못할 이유는 없으리라.

이 곳을 나만의 대치동으로 기억하며 소중하게, 그리고 알차게 살아내 보고 싶다.

나같은 소시민을 찾아 함께 걸어나가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찾고 있다.

대치동에서 나와 함께 동행할 '소시민'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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