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 명산 산행기 3화 오봉산
등산하기에는 별로 좋지않은 흐릿한 겨울 아침이다.
그렇지만 휴일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서 계획대로 100대명산 세번째 산행을 나선다.
오늘 계획한 산은 춘천의 오봉산이다.
흐릿한 날씨때문에 꾸물대다가 오전 10시에서야 집을 나섰다.
춘천가는 길은 언제나 가슴 설레고 미지의 세계로 가는 듯한,아니 추억으로 가는듯한 뭔가가 있다.
춘천이라는 이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많기 때문이다.
첫 인연은 군대에서 맺었다.
남쪽이 고향인 내게는 비록 군대생활이지만 춘천이라는 미지의 도시에 간다는 것이 설레임이었다.
1개월여의 쫄병생활이라서 시내를 개인적으로 돌아다녀보지는 못했지만 후평동이라는 시 외곽의 부대 초소에서 담너머로 보이는 차와 사람들,그리고 집들까지 모두가 특별함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새롭다.
그리고 진짜 추억은 아내와 결혼 전 연애시절 첫 여행지로 택했던 청평사 여행이다.
어느 봄날이었다.
자가용이 없던 시절이라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지금까지 그토록 애틋한 여행을 해본적이 없다.
버스 안에서 눈물로 사랑을 고백했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내생애 최고의 순간이었다.
좀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경춘국도를 달리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차는 고속도로에 들어서 있었다.
아쉬운 감은 있지만 쭉 뻗은 고속도로를 드라이브 기분을 내면서 신나게 달려서 도착한 소양호는 제대로된 겨울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가야할 오봉산은 소양호 건너에 있다.
덕분에 배를 타고 소양호를 건너는 낭만은 오봉산 산행과 청평사 여행의 별미다.
오봉산은 여행인듯 한 산행인 셈이다.
매서운 겨울 강바람과 차가운 강물을 가르며 달린 유람선이 10분만에 청평사 입구에 도착했다.
청평사입구 선착장에서 청평사까지는 1.6km다.
중간중간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산책로로 30여분 걸리는 거리다.
산행이지만 기차나 버스를 타고,혹은 승용차로 경춘가도를 드라이브하고,
다시 배로 소양호를 건너고,산책하듯 걸어서 청평사에 도착해 천년고찰의 고즈넉함에 흠뻑 빠지기까지는
여행인 셈이다.
청평사에는 옛날 당나라 공주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 설화에 의하면 '당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한 청년이 있었는데 태종이 청년을 죽이자 청년은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붙어서 살았다. 당나라 궁궐에서는 상사뱀을 떼어 내려고 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공주는 궁궐을 나와 방랑을 하다가 청평사에 이르게 되었다.이곳 공주굴에서 하룻밤을 자고 공주탕에서 몸을 깨끗이 한 공주는 스님의 옷인 가사를 만들어 올렸다.그 공덕으로 상사뱀은 공주와 인연을 끊고 해탈한다.이에 공주는 당나라의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청평사를 고쳐 짓고 탑을 건립하였다.
이때 세운 탑을 공주탑이라고 하고 공주가 목욕한 곳을 공주탕이라 하였으며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난 곳을 회전문이라고 했다'고 한다.
평강공주의 전설을 음미하며 운치있는 계곡길을 걷다보면 제법 그럴싸한 폭포가 나온다.
구송폭포(九松瀑布)다.
등선폭포,구곡폭포와 함께 춘천의 3대 폭포로 알려진 구송폭포는 주변에 아홉그루의 소나무가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도 하고,주변의 환경에 따라서 아홉가지의 소리를 낸다고 해서 구성(九聲)폭포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뭏튼 표기는 구송폭포로 되어있지만 아홉가지의 아름다운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빙폭이라서 들을 수 없는 아쉬움을 안고 지나쳐야 했다.
아뭏튼 청평사는 절 자체도 천년명찰이지만 절마당까지 굽이굽이 휘돌아 가는 1.6km의 여정이 하나의 짜임새 있는 별도의 여행이다.
덕분에 산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덤인 셈이다.
영지 명문바위다.
이 바위 윗부분에 한문으로 지은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눈이 덮여있어 볼 수는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ㅡ심생종종생(心生種種生):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생겨나고
심멸종종멸(心滅種種滅):마음이 사라지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네.
여시구멸이(如是俱滅已):이와 같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처처안락국(處處安樂國):곳곳이 모두가 극락세계로구나.ㅡ라고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스님이 깨우침을 얻고 나서 지은 시라는 뜻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한다.
깨우친 스님들께는 죄송하지만 보잘것 없는 내가 간단하게 정리한다면 수년 전 광고 멘트로 유명했던
'생각 하기 나름 '이라는 뜻이 아닐련지...
영지 명문바위에 이어서 나오는 영지(影池)다.
영지는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인데 물이 얼어있는데다가 사람들이 들어가서 흙발자국으로 지저분해서
영지의 느낌마저도 느낄 수 없었다.
비록 오늘은 볼 수 없지만 영지는 고려시대 이자현이 조성한 직사각형 연못으로 오봉산의 부용봉에 있던 견성암이 연못에 비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하옇튼 우리 선조님들의 지혜와 풍류는 대단하다.
배에서 내려서 40여분만에 청평사에 도착했다.
청평사 고려선원은 973년(고려 광종24년)에 백암선원으로 창건된 천년 고찰로 우리나라 명승 제70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의 이자현,나옹선사등과 조선시대의 김시습,보우등 당대 최고의 고승과 학자들이 머물며 학문과 사상을 전파하고 자연과 문화를 노래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이자현은 무려 37년간 머무르며 청평사 주변에 암자와 정자,연못 등을 조성했다고 한다.
회전문(廻轉門),보물 제 164호.
공주에게 붙었던 상사뱀이 윤회를 벗어나 해탈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문으로 1,555년 보우대사가 세운 청평사의 대문이다.
청평사는 으리으리한 건축물과 특별한 절마당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담하면서도 정갈해서 오히려 천년고찰의 고즈넉함이 곳곳에 배어있는 절이다.
20여분 휴식을 겸해서 사찰 구경을 마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산행은 대웅전 뒷쪽 800년된 주목을 끼고 시작된다.
바로 오봉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라서 산행 시작 10여분만에 직벽구간이 시작되었다.
첫번째 암벽을 5분쯤 로프를 타고 오르자 아담한 청평사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눈이 많이 쌓여있지 않아서 좀 그렇지만 산사의 전경은 역시 겨울이 최고다.
그리고 다시 조금 더 오르면 더 멀어진 청평사 전경과 흰눈 쌓인 산그리메 너머로 소양호가 빼꼼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직벽에 가까운 암벽이다.
그런데도 계단이 아닌 밧줄하나 달랑 설치해 놓았다.
물론 10m안밖의 그리 높지 않은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스릴을 좋아하는 산객들에게는 좋은 코스이지만 초보자에게는 아주 힘들고 위험할 수도 있는 코스다.
그래도 한 구간 한 구간 오를때마다 뒤돌아보는 재미가 솔솔해서 지루할 틈이 없는 산행이 계속되고...
다시 한 구간 오르자 아름다운 소나무 한그루가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뭏튼 10m쯤으로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중간중간 마다 겨울 산그리메에 휩싸여 점점 멀어져가는 청평사와 멀리 아름다운 소양호의 풍경이 거친 숨을 고르게 해준다.
그리고 능선이 가까워지면서는 기암 괴석과 아름다운 분재형 소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왜 청평사가 명찰이고 왜 오봉산이 명산인지를 말해주는 구간이다.
청평사 진입로에 있는 거북바위와 달리 이곳 거북바위는 보다 더 사실적으로 생겼다.
소양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듯 한 모습이 등위에 오르기라도 하면 당장 소양호로 날아갈듯 하다.
거북바위를 지나면 바로 촛대바위와 천단이 나온다.
천단(天壇)
청평사에는 제석천(帝釋天)에 제사를 올리는 제석단과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단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제석단은 청평사 경내에 있었으며, 천단은 촛대바위가 있는 이곳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천단으로써 손색이 없어 보이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요대(逍遙臺)
보우스님이 지었다는 시 '소요유적(消遙遺寂)이다.
ㅡ봄이 깊어 꽃이 땅에 무늬를 놓을 때
소요대를 찾으니 산허리 쪽으로 비틀어졌네
하늘이 푸르러 뜬 구름은 걷히고
산이 개어 묵은 안개가 사라지네
구천은 멀리 낮은 곳에 있고
삼신산은 아득하여 부르기 어렵네
한 번 삭막한 참선의 적적함을 달래니
유유히 흥이나 저절로 풍요로워지네 ㅡ
그러나 청평사를 한 눈에 바라볼수 있다는 소요대는 생각 만큼 특별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소요대에 있는 아픈 상처를 안고도 의연하게 살아낸 소나무 한그루가 더 눈길을 사로잡았다.
세월이 빚어낸 아름다운 소나무는 소양호와 청평사,그리고 첩첩 산그리메를 아우르며 묵묵히 서 있다.
얼마동안이나 비바람에 맞서고,눈보라에 맞서고,강추위에 맞서고,세월에 맞섰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그 소나무에 올라서서 사진 찍는것이 통과 의례가 되어버렸다.
모진 비바람과 간단없는 세월에 맞서기도 버거울진데 그 많은 사람들에게 짖밟히기까지 해야하는 소나무가 안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무를 보호하자는 팻말이라도 붙여놓는다면 지각없이 무심코 올라가지는 않을 텐데...
소요대에서 다시 정상을 향해 가는길에 있는 구멍바위라고도 하고 홈통바위라고도 하는 또하나의 명물 바위다.
바위에 구멍을 내고 일부러 사다리를 설치 해놓은듯 한 바위가 산행의 재미를 더해주는 구간이다.
산객이 많은 철에는 정체가 일어나기 딱 좋은 바위터널로 배낭을 벗어서 안고서야 간신히 통과 했다.
음과 양
겨울 산에서는 상식과는 반대의 현상을 본다.
상식적으로 한다면 밝은 곳이 양이고,어두운 곳이 음인데 겨울산에서는 하얀부분이 음이고 어두운 부분이 양이다.
양지쪽은 눈이 녹아서 검은 색을 띠고, 음지쪽은 눈이 그대로 있어서 하얀색을 띠기때문이다.
그 음과 양이 빚어낸 곡선이 아름답다.
오봉산 정상(779m)
예정보다 조금 더 늦은 시간에 정상에 도착했다.
오봉산의 정상은 의외로 평범했다.
옛날에 한 번 왔던 곳이지만 별 기억이 없고,그때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아서 사진으로도 없다.
많이 느끼고 많이 볼려면 사진을 찍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사진의 위력 또한 무시 할 수 없다.
사진을 보며 기억하면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머릿 속에서 불러낼 수 있지만 그냥 기억하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다.
결국 두가지 다 장단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낸다면 적게 찍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는게 정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산은 적멸보궁이 있는 비교적 완경사의 코스를 택했다.
원래 오봉산은 다섯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정상만 찍고 내려간다.
완경사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암벽길만 아니었지 만만치 않은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흙길 급경사라서 오히려 미끄러지기 쉽고 힘든 편이다.
하산길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소양호 조망이다.
늦은 오후 시간이 되자 벌써 하늘에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소양호는 충주호에 이어서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큰 다목적 댐으로 건설된 호수다.
소양댐에서 양구까지 뱃길로 8시간을 갈 수 있다고하니까 그 크기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다.
진락공 세수터
이 주변에 암자를 짓고 조용히 수양을 하던 이자현이 손과 발을 씻기 위하여 바위에 홈을 파 놓은 곳이라고 한다.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이라는데,
다른 적멸보궁들이 신성시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반면에 여기 적멸보궁은 외진 바위위에 왠지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것 같았다.
척번대(滌煩臺)는 조용하고 전망이 좋아서 이 바위에 앉아 수행을 하면 번뇌와 망상이 사라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척번대도,폭포도 이름값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어서 나오는 공주탕이다.
모든게 얼어있어서 공주탕의 본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공주설화에 의하면 평양공주가 목욕제계를 하였다는 곳이다.
그렇게 산행이 마무리 되었다.
산행시작 4시간만이다.
소양호의 아름다운 조망과 기암괴석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수 있는 오봉산은 이름처럼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다.
그래서 오봉산 산행의 정석은 배후령에서 1봉부터 차례로 오르면서 정상인 5봉까지 오른후 청평사 뒷마당으로 하산하는 코스다.
그러나 장거리 산행에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시간관계상 최단코스로 정상인 오봉만 올랐다.
아쉬움이 남는 산행이었지만 다음에 가을이나, 봄 산행을 한 번 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산행코스:청평사 ㅡ 소요대 ㅡ구멍바위 ㅡ정상 ㅡ구멍바위 ㅡ적멸보궁 ㅡ해탈문 ㅡ청평사(천천히4 시간)
ㅡ2006.01.19.산림청선정100대명산 3번째 춘천 오봉산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