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5화 북한산 ㅡ4
오전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듯 그치고 상큼한 푸른 하늘이 드러나고 있었다.
장맛비가 많은 피해를 주고 물러가면서 그 반대급부로 주는 선물은 언제나 엑티브한 파아란 하늘과 상큼한 맑은 공기다.
그래서 장맛비가 끝나면 더위와 장마철의 끈적함을 한 방에 날려버리기 위해서 습관처럼 산을 찾는 나는
오늘도 부랴부랴 오후 산행에 나선다.
계획없이 즉흥적으로 산행을 실행 할 때면 둔감한 내 머리도 제법 잘 돌아간다.
수리산,관악산,청계산,북한산...몇몇 산들이 머릿속을 맴 돈다.
그중에서 요즘 거의 매주 북한산 봉우리들을 섭렵하는 중이라서 북한산 백운대를 망설임 없이 찍었다.
머릿속에 목적지가 정해지자 저녘 도시락과 만약을 위해서 렌턴까지 일사천리로 준비를 끝내고 도선사를 향해서 달린다.
달리다가 문득 숨은벽 코스가 생각났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밤골탐방안내소로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변경 한다.
참 세상 편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목적지만 입력하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척척 목적지에 데려다 주는 세상...
오후 2시 30분에 밤골에 도착했다.
10여년 전쯤에 한 번 올랐던 밤골코스는 등산로 정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코스다.
더군다나 초입부는 딱히 볼거리가 있는것도 아니어서 찾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제법 북한산을 안다는 산객들이 숨은벽의 비경을 보기위해 주로 찾는 코스다.
우거진 숲길에서 야생에서 보기 힘든 금낭화도 만나고 매발톱꽃도 만나고...
그렇게 한시간쯤 오르다보니 멀리 가야 할 숨은벽 정상부가 이름처럼 보일듯 말듯 왼쪽 인수봉과 오른쪽 백운대 사이에 숨어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앞쪽에서 보는 인수봉의 매끈한 모습과는 완전 딴판인 인수봉의 거친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인수봉의 두얼굴이다.
그 인수봉 뒷태를 설교벽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맞은편 백운대의 뒷태를 원효봉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원효능선이라고 부른다.
숨은벽은 그 사이에 있다.
그래서 백운대나 인수봉 쪽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보이는 곳이 사기막골 쪽이다.
그렇게 꽁꽁 숨어있다고 해서 숨은 벽이라고 부르게 된 암벽이다.
숨은 벽을 앞에 두고 잠시 숨을 고른다.
평일 오후 산행이라서 산행중에 만난 몇 안돼는 산객중 한 분이 무아의 경지를 맛보고 있다.
여기서부터 위험한 숨은벽 암릉 릿지구간이다.
릿지에 자신이 없는 나를 기죽게하는 거대한 암벽 앞에서 한 참을 쉬었다.
그리고 당연한듯 우회로를 택한다.
설교벽
암릉을 피해서 우회를 했지만 안전하기만 할 뿐 가파르기는 마찬가지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숨은벽 정상 바로 아래에서 쳐다보는 인수봉의 뒷모습은 웅장하고 매끈하게 잘 생긴 앞모습과는 전혀 딴판이다.
옛날 여인네의 잘 땋은 머리 같기도 하고 승천하는 용의 비늘 같기도 한 우악스럽고 거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험악해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이름은 낭만적이다.
설교벽(雪郊壁)
처음에는 누군가 설교를 해서 붙은 이름인가?하는 단순하게 생각 했는데 알고보니 참 낭만적인 이름이었다.
한자를 풀이하면 '눈쌓인 성 밖의 벽'이란 뜻이란다.
산악인들이 그렇게 부르게 된 이유는 인수봉 뒷면은 북향이라서 겨울에 눈이 가장 먼저 쌓이고 봄에 가장 늦게 녹는다.
그래서 항상 눈이 쌓여있는 모습이 마치 눈 쌓인 성밖의 벽 모습과 같다고해서 란다.
그러고 보면 산악인들은 거칠고 위험한 직업에 비해서 참 감성적인것 같다.
산행시작 2시간 30여분만에 숨은벽 정상에 섰다.
숨은벽 정상에서는 인수봉과 백운대의 뒷태를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바위들이 보는 방향에 따라서 다르다고 하지만 인수봉과 백운대만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암봉도 드물것이다.
숨은벽 정상에서 본 숨은벽 능선.
보이는 쪽은 완경사의 흙과 나무가 자라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반대편은 말 그대로 바위 벽이다.
인수봉과 백운대에 가려서 북한산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게 숨어있는 봉우리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숨은벽은
정상의 높이가 768m이다.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칼날같은 능선과 봉우리는 이름처럼 대부분의 공식 지도에도 표기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표기가 되어 있다.
그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던 숨은 벽이 세상에 알려진것은 1973년 고려대 산악회의 백경호씨를 비롯한 동료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한달여에 걸쳐서 이 암벽의 루트를 개척하고 이름을 '숨은벽'으로 붙였단다.
여기서'봉(峰)'이 아니라 '벽(壁)'이라 이름 붙인 것도 하나의 봉우리로 보지 않고 암벽등반의 대상인 벽으로 보았기 때문이란다.
숨은벽 정상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마치 거대한 기관차가 폭주하는 듯한 인수봉을 뒤로하고 다시 백운대를 향해서 간다.
주로 아침시간에 일출감상을 겸해서 올랐던 백운대를 오늘은 일몰감상을 위해서 저녁시간에 오른다.
백운대는 수도 없이 올랐지만 오를때마다 특별한 감회를 안겨준다.
거기에다 오늘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백운대 일몰 풍경을 감상 할 요량이다.
인수봉의 상처
어떻게 저 거대한 암봉에 일부러 칼질이라도 한것처럼 선명한 상처가 생겼을까?
숨은벽에서 백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20여분을 더 올라야 한다.
역시 저녁시간이라서 정상에는 산객이 거의 없다.
해가 넘어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정상을 찍고 종종걸음으로 바로 내려간다.
그러는 사이 거대한 수도 서울이 서서히 저녁 채비를 한다.
그렇게 어둑어둑 해지는 서울 하늘에 오리떼같은 구름이 줄지어 떠가는 모습이 신기하다.
해는 이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서서히 일몰 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황홀한 일몰쇼의 준비는 완벽했다.
적당한 구름,서해바다까지 조망되는 가시거리...
다만 한가지 나에게 부족한 것은 삼각대였다.
일몰 쇼의 시작.
황혼빛 색감과 빨강,주황,노랑, 삼색의 선을 이룬 구름.그리고 반짝이는 선샤인,멀리 인천 앞바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황금빛보다 더 찬란한 해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멋진 쇼를 보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달랑 셋...다른때 같으면 호젓해서 좋다는 생각을 했을텐데 오늘은 셋이서만 본다는 것이 오히려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황혼 빛의 긴 여운을 남기고 화려한 일몰 쇼는 끝이났다.
삼각대를 가져가지 않아서 일몰 촬영의 제약이 있었지만 눈으로의 감상은 완벽했다.
황혼의 여운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백운대 정상부의 거칠은 쇠줄타기가 걱정되어서
어둡기전에 서둘러 하산했다.
그 쇠줄구간만 하산하면 나머지는 헤드랜턴이 있으니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산행코스: 밤골탐방지원센터 ㅡ사기막골 삼거리 ㅡ숨은벽능선 ㅡ숨은벽 정상 ㅡ백운대 ㅡ백운산장 ㅡ깔딱고개 ㅡ도선사.
ㅡ2016.07.06.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