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14화 태백산 ㅡ1
겨울 산행 1번지 태백산.
태백산은 자타공인 우리나라 겨울 산행지로는 첫번째가는 산이다.
눈이 많은 산이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위험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산행거리도 적당하기때문이다.
그렇지만 태백산이 겨울 산행지 첫 손가락에 꼽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산정에서 만나는 신비스럽기까지한 고사목 풍경 때문이다.
대관령 너머에 100년만에 최대의 폭설이 내렸다고해서 눈 산행 계획을 세워본다.
눈 산행지로는 역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태백산이다.
곳곳에 도로가 얼어붙어 빙판길이라는 뉴스에 승용차를 포기하고 산악회 검색을 했다.
여기저기 검색결과 안산 마중물 산악회라는 곳에서 태백산 산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좌석이 남아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아침 7시, 35명정도를 태운 버스는 차가운 겨울길을 미끄러지듯 잘도 달렸다.
100년만에 내린 1m가 넘는 폭설 소식에 차량이 많이 줄어든 때문인지 정체도 없다.
뿐만아니라 강원도 쪽에 들어서면 빙판길 때문에 차량통행에 불편을 겪을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덕분에 거침없이 달린 버스는 산행 기점인 유일사 주차장에 11시 40분에 도착했다.
아니나다를까 유일사 주차장에는 벌써 산행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전국의 산악회는 다 여기로 온 듯 했다.
현대사회에서 눈이 생활에 번거롭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좋아한다는 증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날씨는 눈발이 조금 날리기는 했지만 비교적 포근하고 바람이 없어서 산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윽고 산길에 들어서자 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눈꽃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초입부터 이렇게 황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몇일전 TV프로에서 보았던 이웃나라 일본의 홋가이도의 겨울 풍경에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동화 같은 풍경이다.
그 환상적인 순백의 세상으로 울긋불긋 사람꽃을 방불케하는 사람들이 연신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설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여기저기서 감탄사와 환호성이 터지며 고요한 설국이 왁자지껄 저자거리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언감생심 나만의 사색에 빠진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물밀듯이 밀려오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도 마치 물이라도 되는듯 밀려 올라갈 뿐이었다.
많은 산객들이 이런 순백의 풍경을 꿈구며 태백산을 찾는다.
나도 아마 여섯번쯤은 왔을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 설경을 만나기는 처음이다.
유일사
설국이라도 되는듯 한 착각에 빠져서 1시간쯤 걷다보니 어느새 유일사 삼거리에 도착했다.
유일사 삼거리는 사길령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유일사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 삼거리에서 100여m 내려가면 유일사가 있다.
유일사는 규모가 작은 아담한 사찰이다.
유래에 의하면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라는 사람이 백일 기도를 하던 중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아서 창건하게 되었다는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라고 한다.
유일사 삼거리까지 2.3km의 구간은 임도를 겸한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반해서 삼거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좁고 비교적 가파른 등산로다.
그래서 체증이 극심한 구간으로 유명하다.
오늘도 10여분은 줄을 서야 했다.
올려다 보고 뒤돌아 보고 앞을 보고 뒤를 보고...
눈이 눈을 만나 호강을 한다.
아무튼 덕분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힘든 줄 모르고 오른다.
아무데나 들이대고 셔터만 누르면 멋진 작품이 되는 풍경들 앞에서 나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혼자도 아니고 산악회를 따라왔다는 사실을 자꾸 망각하고 혼자처럼 행동하고 있다가 후다닥 따라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주목 군락지에 도착했다.
이제 힘든 코스는 끝났다.
여기서 부터 정상까지는 다양한 모양의 주목이 있는 풍경을 감상하며 걸으면 된다.
눈꽃...
죽은 주목에는 상고대가 최고다.
그리고 살아있는 주목에는 설화(雪花)가 최고다.
그 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주목 군락지 사이를 시간에 쫓기며 헤집고 다닌다.
이럴때 산악회가 아니고 혼자였다면 마음껏 여유작작 할 수 있었을텐데...
주목
붉은 나무라는 뜻의 나무로 추위에 강해서 고산지대에서 많이 자생하는 나무다.
수명이 길고 나무결이 단단해서 쉬이 썩지않아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신비스런 나무다.
설악산과 덕유산,소백산,태백산등 겨울산으로 유명한 산정에서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중에 군락지 규모로 보나 주목이 있는 풍경으로 보나 가장 주목을 주목답게 볼 수 있는 곳이 이곳 태백산이다.
보통 5~600년씩 된 주목 숲을 걸으면서 나는 우리 인간의 한 없는 왜소함을 본다.
아니 최소한 이 거목들 앞에서 만큼은 한 없이 겸손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이제 여기서부터 정상까지가 태백산에서도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구간이다.
위를 올려다보자 기하학적인 무늬의 눈꽃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에 아름다운 수를 놓은듯 했다.
그 풍경에 매료되어 고개가 빠지도록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그렇게 정신없이 순백의 풍경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해 오르는 사이 어느새 확 트인 조망이 눈을 휘둥그렇게 했다.
멀리 겹겹의 설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풍경은 태백산이 왜 명산중에 명산인지,그리고 왜 민족의 영산이라 일컫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멀리 함백산 정상이 보인다.
이제 유일사주차장에서 3.3km지점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정상인 천제단까지는 700m쯤 남았지만 빼어난 풍광의 능선길이라서 별 의미가 없는 거리다.
태백산에서는 고사목이 춤을 춘다.
춤사위가 제법인 저 고사목은 지나가는 산객들의 단골 사진 배경이다.
천년을 살고 죽어서 다시 천년을 서 있는다는 주목, 거센 바람에도 꿋꿋히 춤추듯 서있는 태백산의 고사목은 숭고하고 신비스러우며 아름답기까지 했다.
다른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고사목의 춤사위에 취하여 걷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다.
산행이라기 보다도 산책에 가까운 발걸음이다.
그리고 태백산을 대표하는 풍경 앞에 섰다.
이 풍경은 사계절 신비스러움을 자아내는 풍경이지만 오늘 특히 최고의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가히 "신들의 정원"이라고 일컫을만 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이 풍경을 신들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다양한 수형의 고사목과 뒷배경의 산그리메...
워낙 유명한 국민포인트라서 좀 식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산정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인것 만큼은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 나를 가장 가슴 벅차게 한 풍경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나무 군락지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준 곳이다.
살아있는 주목나무와 죽은 주목나무가 연출해 내는 삶과 죽음의 공존.
그 장면 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벅찬 풍경인데 때마침 하늘이 열려서 신비스런 하늘색을 배경으로 채색해 주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설화를 보는 순간이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풍경앞에서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수 없는 풍경을 주목이 천년을 공들여 만든 풍경,언젠가 저 고사목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저 고사목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라는 좀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뭐 아무짝에도 쓸데없고 어떠한 도움도 되지못 할 생각을 하며 정상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하얀 설원에 핀 사람 꽃ㅡ
하얀 눈꽃과 울긋불긋 사람꽃이 연출해 내는 또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카메라를 어디에 들이대도 사람을 피할 수 없어서 애를 먹었다.
그래서 비켜주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사진 찍는 시간 보다 더 걸렸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또하나의 꽃이 되어준 것이다.
장군봉에 도착했다.
장군봉은 높이가 1567m로 태백산의 정상이다.
태백산 정상부에 있는 세개의 제단중 하나인 장군단이 있다.
그러나 천왕단이 있는 봉우리보다 제단이 작아서 정상 구실을 빼앗긴 봉우리다.
그 정상 구실을 하는 천왕단의 웅장한 모습이 저 멀리 보인다.
태백산 정상부는 두개의 완만한 봉우리로 되어있다.
그 두개의 봉우리를 잇는 능선길은 마치 천상의 길처럼 완만하고 정겹다.
그 길 중간쯤에는 천상의 예술품 같은 주목나무가 있다.
정상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기 쉬운 예술나무다.
나무 자체도 신비하지만 부드러운 산능선과 파아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말 그대로 한폭의 그림이다.
그 어떤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 이토록 아름다울까?
마치 조각품 같은 그 아름다운 모습이 만들어 지기까지는 수백년 아니 천년의 세월동안 바람결에 흔들리고
추위에 웅크리고 눈 비에 젖기를 반복한 댓가...
그 혹독한 자연에 순응한 댓가이리라.
그 인고의 댓가를 우리는 몇시간의 수고만으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천제단이 있는 영봉 정상에 섰다.
실제 정상인 장군봉보다는 7m쯤 낮은 위치에 있는 봉우리지만 천왕단이 있어서 실질적인 정상 역활을 하는 봉우리다.
거리로는 유일사주차장에서 4.4km다.
2시간 반쯤이면 오를 수 있지만 나는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비교적 바람이 없는 날인데도 역시 정상엔 바람이 세차다.
민족의 영산이라는 태백산에는 세개의 단이 있다.
정상인 장군봉에는 상단 장군단이 있고 조금 아래에 중단 천제단,부쇠봉쪽에 하단이 있다.
천제단에서는 신라시대 부터 하늘에 제를 지낸곳으로 지금도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룬다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태백시에서는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 태백제를 개최한다.
태백산 정상부는 워낙 바람이 세기때문에 눈이 거의 쌓이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자리를 상고대가 메워준다.
오늘 그 상고대의 진수를 본다.
이런 풍경은 눈이 너무 많아도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상고대는 차가운 바람과 공기중의 수분이 만들어낸 순백의 아름다운 꽃으로 눈꽃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리고 태백산 정상에서는 바람 피할곳이 마땅찮아서 오래 머물수도 없다.
그래서 급 하산길에 든다.
하산은 다시 유일사로 원점 회귀다.
왔던 길로 하산하는 덕분에 고사목이 춤추는 풍경을 다시 본다.
생각 같아서는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일행들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하산해야 했다.
아무튼 나름대로 부지런히 내려간다고 내려가는데도 멋진 풍경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순백의 서정 ㅡ
순백의 겨울 풍경, 예전엔 겨울이면 문밖에만 나서면 보고 느낄 수 있었던 풍경인데 이제 높은 산에나 올라야 볼수 있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아니 높은 산에서도 때를 잘 맞춰서 가야 만날수 있는 풍경이다.
내려오는 중간에 이제서야 올라가는 산객들을 만난다.
정상까지 다녀올려면 서둘러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남의 걱정을 대신한다.
다시 유일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왕복 8.8km.
혼자였다면 시간이 의미가 없었을텐데 산악회를 따라나섰기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한 덕분에 비교적 빠른 5시간이 걸렸다.
역시 겨울산은 태백산이다.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천제단이 있어서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산이다.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설화가 있는 신성한 산답게 수많은 산들에 에워싸여있는 모습에서 신령스런 기운이 감돌았다.
우리나라에서 함백산에 이어서 7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렇지만 높이에 비해서 산세가 완만하고 접근성이 좋아서 겨울산행지로는 최고로 정평이 나있는 산이다.
특히 주목과 고사목이 있는 흰백의 풍경은 환상적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