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13화 소백산 ㅡ3
아내 덕분에 엉겁결에 소백산 여름 산행에 나선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제안에 급조된 산행 계획...
그래서 좀 편한 코스,빠른 코스를 검색하다보니 어의곡 코스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소백산은 빠른 코스, 수월한 코스란 없다.
1973년 이후 가장 긴 장마가 끝났다는 일기예보는 있었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아직도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다.
그러나 다행히 소백산은 비가 오지 않는단다.
새벽에 집을 나서는데도 수도권은 비가 내린다.
아무튼 일기예보를 믿고 소백산을 향해서 달리다보니 어디쯤에선지 비가 그쳤다.
어의곡코스는 정상에 오르는 최단코스 이면서 탐방객이 많지 않아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단다.
그래서 일단 택하고 본 코스다.
산행기점인 어의곡은 새밭유원지가 있을 정도로 청정계곡이었다.
주차를 하고 산길에 들어서자 어젯밤까지 내린 비 때문에 계곡에는 폭포소리를 방불케 하는 물소리가 자칫 무기력해지기 쉬운 여름 산행의 무기력함을 해소시켜주었다.
거친 물소리를 들으면서 시작하는 상쾌한 산행이다.
거기에다 촉촉히 젖은 산길 또한 인위적이지 않고 호젓했다.
사실 소백산은 여름 산행지로는 조금 망설여지는 산이다.
정상부의 그늘없는 초원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등산 코스가 편도 6~7km로 다른 산들에 비해서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의곡코스는 오히려 여름 산행지로도 손색이 없는것 같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내내 무성한 숲길을 걷기때문이다.
뿐만아니라 내노라하는 국립공원이지만 다른 산들의 등산로들이 찻길을 방불케하는 넓고 인위적인데 반해서 어의곡 등산로는 오솔길 같은 운치있는 길이어서 여름 산행에 최적화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완만하던 산길은 가파라지면서 돌계단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목계단으로 바뀌었다.
이윽고 계속 이어지던 물소리가 끝나가는 1.5km지점에 도착했다.
아직도 정상까지는 3.5km, 여기서 첫 휴식을 취한다.
급경사와 완경사가 적당히 반복되는 약간은 지루한 구간이지만 햇볕 걱정 없는 숲길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세상 이치가 다 그렇듯이 하나를 가지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힐링하며 숲길을 더위 걱정없이 걸을 수 있는 반면에 볼거리는 거의 없는 것이다.
참나무숲, 잣나무숲,자작나무숲이 연이어 나오고 그 숲 사이로 난 오솔길 같은 작은 등산로를 힐링하듯 오르다보니 어느 순간 하늘이 열렸다.
장마철에 보는 햇볕...
그것도 싱그러운 나뭇잎을 뚫고 들어온 은은한 연두색 햇빛은 마치 피톤치드를 눈으로 보는듯 했다.
드디어 하늘을 본다.
3시간만이다.
다르게 말하면 3시간동안 피톤치드로 샤워를 한 셈이다.
올라 온 길을 뒤돌아 본 모습이다.
그런데 다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에 간간이 비추던 햇빛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부터는 그늘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한편으로는 소백산의 트래이드마크인 파아란 하늘과 푸른 초원의 이국적인 풍경 감상을 내려놓아야 해서 아쉽기도 했다.
드디어 푸른초원으로 대변되는 소백산 정상부에 올랐다.
이제 정상인 비로봉까지는 600여m,
쉬엄쉬엄 그림같은 풍경의 초원을 걸으면 된다.
국망봉 가는 능선길이다.
구름이 연신 고개를 넘지 못하고 흩어지고 있었다.
그 신기한 현상을 한 참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구름도 울고 넘는 고개가 아니라 구름도 울고 넘지 못하는 고개인 셈이다.
드디어 동화같은 길에 들어섰다.
소백산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상부가 거칠지 않은 산이다.
거기에다 자연적인 초원이 형성되어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자랑하는 산이기도 하다.
정상부에는 비비추가 만개하고 고추잠자리의 군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말 그대로 평화로운 천상의 풍경이다.
그 그림같은 풍경이 일순간 운무에 휩싸였다.
운무에 감춰졌다 드러났다를 반복하는 비로봉 오르는 길이 마치 신선이 거니는 신선의 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우리도 가야할 길인데 여기서 잠시 우리 부부는 의견이 맞섰다.
아내는 빨리 올라가서 정상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고, 나는 저 신비스러운 풍경을 보면서 여기서 점심을 먹고 올라가자고 하고...
결국 내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점심을 먹고 마지막 구간을 오른다.
사실 저 풍경을 더 감상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진짜 내 속내는 시간이 지나면 어쩌면 파아란 하늘이 열릴것 같은 생각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심을 먹고 잠깐동안의 여유를 부리고 나서도 운무는 그칠 생각을 하지않았다.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신선이라도 된 느낌으로 운무를 뚫고 정상을 향해서 간다.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에 섰다.
점심시간 포함 4시간만이다.
비로봉의 높이는 1,439m로 우리나라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비로봉이라는 이름은 금강산,치악산,팔공산등 내노라하는 산들의 최고봉에 붙어있다.
여기서 '비로'는 불교의 '비로나자불'의 앞자로 최고라는 뜻을 가진다고 한다.
소백산의 가장 좋은 산행시기는 순백의 겨울과 연분홍의 철쭉이 만개하는 5월 말이나 6월 초쯤이다.
그래서 여름에 소백산을 찾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내가 하루 전에 제안을 해서 오른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은 태백산 가자고 한다는게 착각해서 소백산이라고 말했단다.
엉겁결에 소백에 오른것이다.
아무튼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소백산의 여름 풍경에 흠뻑 젖는다.
사실 분홍 철쭉꽃만 없을 뿐이지 봄 풍경과 별 차이가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한가지 아쉽다면 푸른 초원과 파아란 하늘의 조화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런날은 또 오늘같은 신비한 분위기가 감도는 운무의 풍경을 볼 수 없을테니까 아쉬워 할것도 없기는 하다.
역시 모든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오랜만에 이쁜 나비를 본다.
내가 어렸을때는 노란나비, 흰나비,호랑나비...참 이쁜 이름의 나비들도 많았는데 ...
소백산에서는 이국적인 푸른 초원의 풍경도 제멋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풍경을 참 좋아한다.
'산들의 단체사진' 이다.
이 풍경은 파아란 하늘이 배경이 되어도 좋고, 운무가 적당히 깔려도 좋고, 오늘처럼 그냥 흐려도 좋다.
산들의 배치도 짜임새있게 잘 되어 있을뿐만 아니라 원근감도 적절해서 산 사진으로는 이만한 풍경이 없다.
어디선가 본 '산들의 단체사진' 이라는 제목이 붙은 무명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그 시를 다 외우지는 못했지만 대충은 이랬다.
"앞산은 편하게 앉고
가운데 산은 무릎을 조금 굽히고
그 다음 산은 똑바로 서고
먼 산은 까치발로 서세요
그리고 찰칵 ㅡ"
뭐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내용이었던것 같다.
혹시라도 하늘이 열릴까? 하는 생각에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보지만 운무는 기약없는 춤을 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였다면 더 노닐었을텐데 무료하게 있을 아내 생각에 그냥 하산길에 든다.
하산은 소백산 산행의 가장 정통 코스인 천동으로 한다.
하산 완료지점인 다리안폭포 국민관광지까지는 7km 남짓이다.
아쉬운 풍경을 뒤로 하고 하산하는 길 천동삼거리 부근에는 고산지대에 피는 풍로초를 닮은 야생화 이질풀이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천동 삼거리를 지나면 소백산의 또하나의 상징인 주목 군락지가 나온다.
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을 보여주고 있는 고사목.
참 대단한 나무인것 만은 사실인것 같다.
하산 시작 30여분만에 천동쉼터에 도착했다.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쉼터다.
내려 설 수록 숲은 아름드리 숲으로 바뀌고 계곡의 물소리는 점점 커져간다.
어의곡 숲길과는 또다른 멋을 선사하는 숲길이다.
소백산 천동코스는 고도가 1400m에 이르는 높은 산이지만 계단이 거의 없는게 특징이다.
그대신 평지도 전혀 없다.
비슷한 각도의 길을 계속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루하기로 유명한 코스이기도 하다.
계속 이어지는 폭포를 방불케하는 계곡 ㅡ
천동코스의 멋은 다리안 폭포까지 계속이어지는 풍부한 수량의 계곡이다.
더군다나 긴 장마가 끝난 뒤라서 많아진 계곡물 덕분에 끝없이 이어진 폭포길 같다.
다리안폭포 상부다.
그야말로 긴 하산이 끝났다.
내려오는게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오르는것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않는다.
7km가 넘는 긴 하산길이지만 2시간 30여분만에 내려왔으니 말이다.
왕복 13km,
노니는 시간 포함해서 7시간 30분의 산행이 끝났다.
오늘도 소백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사실은 철쭉핀 푸른 풍경이 생각나서 5월 말쯤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워낙 난이도가 높은 산이라서 아내와 함께 가기가 망설여졌던 산이다.
그런데 아내 왈 '하나도 힘들지 않고 또 오고싶단다.'
그 한마디에 나와 아내의 체력이 역전 된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사는 수도권은 비가 많이 와서 물난리가 났다고 하는데 오늘 산행하는데는 비 한 방울 내리지않고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덕분에 소백산 읽기에 집중 할 수 있었던 하루였다.
산행코스:어의곡 탐방지원센터 ㅡ국망봉 삼거리 ㅡ비로봉 ㅡ천동삼거리 ㅡ천동쉼터 ㅡ다리안폭포(13km 사진촬영,휴식포함 7시간 30분)
ㅡ2020.08.01.소백산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