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13화 소백산 ㅡ1
겨울에 하얀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고해서 소백산이라 부른다는 산.
이국적인 초원의 봄풍경과 순백의 겨울풍경으로 유명한 소백산은 종주산행 명소다.
종주산행이야 물론 지리산 종주가 최고이지만 소백산은 당일산행이 가능해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는 산이다.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그 소백산 종주를 위해서 여러가지 가상의 계획을 세워본다.
산악회를 통하지않고 종주산행을 한다는것은 소백산이 아니더라도 여러가지 제약이 많다.
종주의 특성상 시간을 많이 필요로 하기도 하고,출발점과 하산완료 지점이 다를수밖에 없어서 교통편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소백산 종주의 시작점 중에 한 곳인 희방사를 염두에 두고 여러 시나리오를 점검한다.
아니 여러 시나리오라기 보다도 교통편을 알아 본다는 말이 더 맞는 말 일것 같다.
희방사는 희방사역이 있기는 하지만 청량리 출발이라서 접근성도 좋지 않고 열차도 많지 않아서 그냥 포기하고 승용차로 결정했다.
뭐니뭐니해도 겨울 산행은 상고대나 눈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소백산이라면 더욱...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찍 가면 상고대를 만날까 싶어서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나름 일찍 출발했는데도 희방탐방지원센테에 도착하자 아침 8시 반이다.
희방사매표소에 도착했을때 멀리 보이는 소백산 정상의 하얀눈이 소백산 이름을 다시한번 생각케했다.
산행시작 10분여만에 희방폭포에 도착했다.
희방폭포는 높이가 28m로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폭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겨울에만 두번째 찾는 폭포라서 원래의 물이 쏟아지는 폭포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덕분에 신비스런 모습의 빙폭만 본다.
그 모습을 보면서 겨울엔 폭포도 잠을 잔다는 생각을 해본다.
희방폭포는 마치 얼음이불을 덮고 동면에라도 든 듯했다.
그나마 폭포라는 느낌을 느끼게 하는건 얼음속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물소리뿐이었다.
폭포를 지나면 곧바로 희방사가 나온다.
산사 다음 폭포가 나오는게 일반적인 순서일듯 한데 이곳은 폭포를 먼저 지나고나면 산사가 나온다.
희방사는 일반 사찰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일반 목조주택같은 분위기의 건축물은 희방사의 유래를 보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희방사(喜方寺)
신라시대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두운조사가 창건했다는 희방사는 1400년 가까운 세월을 품고 있으나 그 어디에서도 그 오랜세월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문화재 관람료 2000원을 받는다.
그래서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한때 월인석보의 목판을 보존하고 있었던 명찰이었으나 6.25동란때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53년에 중건한 후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며 경북유형문화재 226호인 동종과 월인석보 책판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희방사 설화에 의하면 두운스님이 수도 하면서 임신한 호랑이를 보살펴줘서 세마리의 호랑이 세끼를 낳을 수 있도록 해준뒤 훗날 호랑이 세마리가 어여쁜 처자 한명을 잡아다 놓고 사라졌다.
나중에 스님이 그 처자를 잘 보살펴 돌려 보내니 처자의 아버지가 감사의 표시로 이곳에 절을 지어주고 딸이 살아서 돌아온 기쁜소식을 전해준 방향에 지었다는 의미의 기쁠喜 방위方을 써서 희방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눈쌓인 희방사 경내를 한바퀴 돌고 이제 본격적인 종주산행에 들어간다.
희방사로 올라가서 천동리로 내려오는 소백산 주능선 16km를 종주하는 대장정이다.
그동안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있던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비단길같은 순백의 능선길을 걸어볼 작정이다.
그 순백의 소백산 종주산행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다.
나도 오랫동안 품어왔던 그 선망의 갈증을 드디어 오늘 풀게된 셈이다.
지겹도록 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진 깔딱고개를 오르면 첫 조망점이 나온다.
그 조망점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완만한 경사를 1km쯤 오르자 종주할 능선의 시작점인 연화봉이 나왔다.
산행시작 2시간 40분만이다.
연화봉 정상에서 언젠가 tv 인간극장에 나왔던 분들을 만났다.
두분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한컷 부탁하자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주시며 웃는 두분 모습이 참 이뻤다.
앞을 못보시는 부인을 데리고 마라톤도 하시고 등산도 하시는 남편....
나도 헌신적인 모습에 감명 받았던 프로였다.
연화봉은 높이가 1,383m로 왼쪽능선상에는 죽령과 소백산 천문대가 있고 오른쪽 능선 끝에는 오늘 종주의 끝지점인 비로봉이 있다.
다른 산들과 달리 그 장쾌한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오는게 소백산의 매력이며 특징이다.
맨 오른쪽 흰 봉우리가 가야할 비로봉 정상이다.
꼭 7년전 연화봉에 올랐을때 걷고 싶었던 길이다.
그때 시간때문에 걷지 못했던 길을 오늘에서야 비로소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6km라는 긴 거리이지만 걱정보다 설레임이 앞서는 이유는 뭘까?
다른 능선길과 다르게 멀리서 보는 확트인 능선의 아름다운 곡선미가 유혹하기 때문이다.
소백산의 정상부는 여름엔 초원, 겨울엔 설원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산의 곡선을 그대로 볼 수 있다.
혹시나 하고 은근히 기대했던 상고대도 없고 하늘도 청명하지 않아서 약간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가시거리가 비교적 길어서 조망은 좋았다.
조망이 좋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나긴 종주길에 들었다.
그리고 1시간여만에 제1연화봉에 도착했다.
뒤돌아보니 걸어온 길이 어느덧 까마득하다.
제1연화봉은 1,394m로 소백산 종주능선 중심부에 있는 봉우리다.
한가지 아리송한건 연화봉보다 높다는 것이다.
연화봉에서 다시 앞을 보니 저 멀리 가야할 소백산의 정상 비로봉이 보인다.
사진처럼 장쾌한 능선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소백산 종주의 묘미다.
바람의 흔적 ㅡ
능선길에 만난 풍경들이다.
원래 바람이 세기로 유명한 길이지만 오늘은 바람도 잔잔하고 날씨도 춥지않아서 걷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그렇지만 상고대와 칼바람과 함께하는 종주를 해보고 싶었는데 좀 아쉽기는 하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그동안의 적설량이 많아 아름다운 설원과 군데군데 백설과 어우러진 고목나무의 풍경이었다.
소백산 겨울 종주산행은 사실 눈구경하기 산행이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겨우내 눈을 보고 살았는데 지금은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도 않고 설사 온다고 해도 금방 녹아버리고 만다.
또 녹지 않으면 제설작업을 해서 치워버리기때문에 어차피 일상에서는 '설원'이라는 풍경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왼쪽이 출발한 연화봉이고 오른쪽 사진이 가야할 비로봉이다.
지나온 연화봉은 더욱 멀어지고 가야할 비로봉은 더욱 가까워지고...
한 쪽이 멀어지면 다른 한 쪽이 가까워지는 세상 이치를 몸으로 체험한다.
소백산 능선상에는 나무와 바위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에다 바람이 강해서 나무가 높이 자라지 못해 초원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능선길이 참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나무 숲과 바위가 있는 유일한 구간을 지난다.
소백산 종주는 능선길에 한 번 들어서면 탈출로가 아예없다.
그래서 지리산 종주만큼은 아니지만 난이도가 제법 높은 종주길인데도 꾸준히 산객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여럿이 또 때로는 혼자서 고난의 행군을 사서 하는 것이다.
더욱 가까워진 정상
정상으로 가는 그야말로 그림같은 길이다.
대부분의 산들이 정상으로 갈수록 등로가 가파르고 거칠어지는 반면 소백산은 정상으로 갈 수록 길이 완만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정상은 가까워졌지만 그에 비례해서 체력은 바닥을 찍을 태세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산객도 북적이기 시작했다.
아무튼 호젓한 산행은 여기까지일듯 싶다.
천동 삼거리를 지나자 이제 아예 줄을지어야 했다.
이국적인 풍경도 장관이지만 길게 늘어선 사람 풍경도 장관이다.
이렇게 줄지어 오르는 모습도 아마 소백산만의 독특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바람의 노래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비교적 잠잠하던 바람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유명한 소백의 칼바람은 아니다.
두꺼운 털모자 귀덮게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흡사 노랫소리 같다.
바람의 노래...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감미롭게.....
그 바람에 할퀸 바람의 흔적이 마치 거대한 레코드 판 같았다.
그 레코드판은 쉴세없이 노래가 새겨졌다 지워지고 또 새겨졌을 것이다.
나는 그 새하얀 설원에 새겨진 노래를 귀가 아닌 눈으로 들으며 비단길 같은 길을 기계적으로 걷는다.
다른 산과 달리 소백산 정상에서만 가능한 기계적 걷기다.
소백산은 한 눈 팔고 기계적으로 걸어도 위험하지 않다.
그래서 그림같은 풍경 감상을 하면서 마음 편하게 걷기 좋다.
내가 왔던 길의 반대편,국망봉과 어의곡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종주의 종점인 비로봉에서 시작점인 연화봉을 뒤돌아 본다.
저 까마득한 능선길이 내가 걸어왔던 길이라니...감격스러운 순간이다.
다시 한 번 어렸을때 아버님께서 하셨던
"사람은 눈이 가장 게으르단다."
라는 말을 실감한다.
국망봉 방향
순백의 설원도 장관이지만 사방에서 줄지어 오르는 모습도 장관이다.
이국적인 선과 면의 조화가 왜 소백산이 겨울 산행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인지 말해주는듯 하다.
소백산의 정상 비로봉.
높이는 1,439m로 사방이 거칠것 없이 확 트여서 조망이 환상적이다.
흰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고 해서 소백산이라는 소백산의 정상 비로봉은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 유명한 칼바람 때문에 서있을 수 조차 없어서 인증샷찍고 내려가기 바쁘다는데 오늘은 칼바람도 없고 그렇게 춥지도 않아서 사람들이 장터를 방불케 했다.
그래서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으려고 줄을 섰다가 포기하고 이곳에서 대신 찍는다.
그리고 소백산의 대표 사진촬영 포인트인 국망봉쪽으로 하산한다.
하산 방향은 아니지만 잠깐 사진 촬영과 풍경 감상을 위해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올 요량이다.
소백산 대표 포인트에서 본 정상 모습이다.
소백산을 가장 소백산 답게 보여주는 포인트로 정상으로 오르는 세갈래길이 인상적이다.
소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세방향이다.
어의곡과 국망봉쪽에서 오르는 지금 내가 서있는 길과 오른쪽 내가 왔던 길, 그리고 왼쪽 비로사쪽에서 오르는 길이다.
끝없이 늘어선 산객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도시에서의 눈은 애물단지 취급을 당하지만 산에서의 눈은 감정에 메마른 어른들을 동심으로 안내하기에 충분하다.
소백산 정상부에는 주목나무 군락지를 조성중이다.
철쭉과 함께 소백산을 대표하는 주목나무인데 모진 바람을 견뎌내고 살아낼지 모르겠다.
아무튼 눈 이불을 뒤집어 쓴 듯한 모습이 포근해 보였다.
소백산 정상은 위치에 따라서 눈의 높이가 다르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은 눈이 내리자마다자 날아가 버리기때문에 왠만큼 폭설이 내리기 전에는 높이 쌓이지 않는다.
바람이 빚어 놓은 신비한 풍경이다.
이제 다시 하산을 위해서 왔던길을 되돌아간다.
다시 정상을 지나 천동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소백은 역시 소백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천동으로 하는 하산길도 만만치 않다.
거리로 7km를 내려가야 한다.
하산길은 주목 군락지를 지나면 별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한가지 다행인것은 거의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어서 거리는 길지만 긴장하지 않고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시 30분에 하산 완료 ㅡ
거의 예정된 시간에 하산했다.
파란 하늘이라든지 환상적인 상고대라든지 하는,비록 특별한 풍경을 연출해주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심하지 않고 가시거리가 길어서 충분한 조망과 광활한 설원을 천천히 만끽할 수 있었던 행복한 산행이었다.
한편으로는 소백산의 그 유명한 칼바람과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산행코스:희방사 ㅡ연화봉 ㅡ제1연화봉 ㅡ천동3거리 ㅡ비로봉 ㅡ국망봉 삼거리 ㅡ비로봉 ㅡ천동 삼거리 ㅡ천동휴게소 ㅡ천동주차장 (보통걸음8시간)
ㅡ2014.02.16.소백산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