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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Jan 30. 2021

팔공산 겨울산행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16화 팔공산

세상은 눈에 보이는듯 보이지 않는듯,느낄수 있을듯 느낄수 없을듯 끊임없이 변해간다.

교통수단도 마찮가지다.

도보에서 가마나 우마차,우마차에서 기차나 자동차,그리고 비행기에 이르기까지...

그러다 이제는 속도경쟁에 돌입했다. 

앞에 고속이 붙기 시작한것이다.

100대 명산 16번째는 KTX고속열차를 타고 대구의 팔공산으로 간다.

승용차로 광명역 ㅡktx로 동대구역(56,400) ㅡ택시로 파계사(15000),편리함만큼 교통비가 만만치 않았다.

자가운전과 대중교통의 차이점은 편리함과 편안함,교통비의 차이등에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었다.


 

승용차로 3시간쯤은 걸려야 할 거리를 고속열차는 1시간 30여분만에 동대구역에 정확하게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다시 택시로 산행기점인 파계사에 도착했다.

파계승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좀 특이한 이름이다 싶었는데 검색을 해보니 흩어진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의 파계(把溪)사라고 한다.

파계사는 오래된 절이기는 하지만 뭔가 좀 어수선했다.

하지만 유서는 깊은 절이라고 한다.

가깝게는 노태우 전대통령의 어머님께서 다니던 절이라고 하고(택시기사님께 들음).

멀리는 영조대왕을 낳게한 기도를 올린곳이기도 하다니까 왕기가 서린 사찰인 셈이다.



이 건물 안에 보물이 한점 있다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보지는 못했다.



아침 8시 40분,

한적한 아침 산사를 한바퀴 돌고서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간다.



산행시작 50여분만에 파계재에 도착했다,

파계사에서 파계재까지는 참나무계통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비교적 가파른 숲길이다.

아래쪽은 눈이 거의 녹고 없었는데 파계재에 올라서자 눈이 꽤 많이 쌓여있다.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게 살짝 걱정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다시 파계재에서 40여분만에 파계봉에 도착했다.

꽤 많은 눈이 쌓인 눈길이지만 여기까지는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도가 높아지면서 쌓인 눈이 많아져서 앞으로가 문제다.



최초의 조망이다.

파계봉을 조금 지난 지점에서 2시간여만에 최초의 조망을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조망이나 별다른 볼거리도 특색도 없는 조금은 지루한 평범한 산길이다.

오른쪽 맨끝 움푹 들어간 곳이 파계재다.



멀리 비로봉 정상이 보인다. 

파계사에서 3시간여,파계재에서는 2시간여를 올라온 지점,멀리 정상이 보이고 곳곳에 암릉미가 넘쳐나는 지점이다.

드디어 산행의 묘미가 있나 싶었는데 이번엔 빙판길이 문제였다.

오도가도 못하는 아찔한 난코스가 산재해있는 이름도 무시무시한 톱날능선이다.



중간에 퇴로만 있다면 내려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위험한 톱날능선,

2.6km의 거리를 2시간 반이나 걸렸다.

아찔한 바위능선에 빙판길이라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체력소모까지 극심했다.

아이젠 없이 겨울 등산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시한번 절실히 체득하며 4번이나 엉덩방아를 찧고 4번의 휴식등 천신만고 끝에 통과를 했다.



그래도 톱날능선을 통과하고나자 비교적 안전한 길이 이어졌다.



물론 아직도 가파르고 거칠기는 하지만 철계단이 설치되어있어서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다.



바위를 뚫고 살아내는 의지의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사서하는 산행의 고행은 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 생각을 하며 위안을 삼는다.



서봉(1153m)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서봉에 도착했다.

서봉은 팔공산 정상부를 이루고 있는 비로봉,동봉과 함께 세개의 봉우리중 하나다.

 파계사에서 출발한지 5시간 30분,거리로는 7km,너무 많은 시간과 체력을 소모해버려서 감상하고 즐길 여유를 뒤로하고 바로 동봉으로 향한다.



동봉(1167m) 

동봉은 서봉에서 1km쯤의 거리에 있다.

미타봉이라고도 하는 사실상의 정상이다.

비로봉이 30여미터 더 높지만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올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출발한지 6시간 반, 거리로는 8km,협소했던 서봉 정상과는 달리 동봉 정상은 거대한 암봉이지만 많은 사람이 쉴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북쪽으로는 비로봉이 버티고 있어서 조망이 없지만 나머지 삼면은 조망이 좋았다.

서봉,비로봉,동봉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팔공산 정상부는 특별히 빼어난 풍광은 아니지만 비로봉의 웅장함과 동,서봉의 암릉미가 조화를 이루고 두곳의 마애불이 있어서 신성한 기운이 감돌았다.

허벅지에 쥐가 나서 파스까지 뿌려가면서 오른 정상인데 찬바람 때문이기도 했지만 예약해 놓은 열차시간때문에 여기서도 역시 별로 쉬지 못하고 바로 하산해야 했다.


비로봉(1192.8m)

팔공산의 최고봉이지만 송신탑이 버티고 있어서 올라갈 수 없는 곳이다. 



팔공산의 유래에 의하면 원효와 의상이 이 산에 들어와 8명의 승려를 가르치며 함께 머문 까닭에 팔공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6세기 무렵 팔성사(八聖寺)라는 고찰이 있었는데 이 팔성사에 속한 8개의 암자에 각각 1명의 성인이 머물러 팔공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또다른 설에 의하면 원래 '공산'이라고 불리었는데 옛날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전투를 벌이다 전세가 왕건에게 크게 불리하게 돌아가며 결국 지금의 팔공산까지 오게 되었는데 왕건의 신하 8명이 왕건을 피신시키고 적들을 유인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결사항전을 벌이면서 왕건의 최측근이자 고려조 최고의 충신 중 한사람인 신숭겸이 왕건처럼 분장을  하고 후백제군과 싸우다 전사하고 김락등 나머지 8명의 장수들마저 견훤의 후백제군에게 모두 전사한 후 후일 왕건이 8명의 신하를 묻었다 하여 8공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산은 동화사로 한다.



팔공산은 대부분 이런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거의 모든 바위가 한 덩어리가 아니라 이렇게 갈라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등산로도 대부분 오른쪽 사진처럼 조각난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걷는데 피로감를 많이 느껴야 했다.



정상에서 동화사 까지는 4km쯤이다.

그중에 1.5km는 이런 포장된 임도다. 



동화사

봉황알

봉황의 정기가 서려져 있다는 의미의 봉서루앞에 있는 돌이다.

동화사터는 풍수지리상 봉황이 알을 품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은 신라시대인 832년 심지대사가 절을 중창 할때 오동나무꽃이 한 겨울에 상서롭게 피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동화사 대웅전(보물 제 1563 호) 

동화사는 신라시대 창건되어 8번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른 천년고찰이다.

지금의 대웅전은 영조시대인 1727년에서 1732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현재는 보물 15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요즘 전국의 사찰마다 불사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나라가 부유해지면서 불자들의 시주가 많아진 때문이 아닐까?

동화사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저기 공사중이라서 제대로 관람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수선했다.



동화사 관람을 끝으로 팔공산 산행 마무리했다.

15년쯤전에 다녀온 기억이 있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것이 별로 없다.

그때는 사진도 기록도 하지 않는 때라서 기억에만 의존 하려니 어디로 올라서 어디로 내려왔는지 조차 생각이 나질 않는다. 

도립공원인 팔공산은 의외로 규모가 컸다.

그래서 오늘 거의 종주에 가까운 긴 코스의 산행을 했지만 그 유명한 갓바위도 보지 못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쪽으로 가봐야겠다고 다짐하면서 16번째의 100대명산 탐방을 마무리했다. 


산행코스:파계사 ㅡ파계재 ㅡ파계봉 ㅡ톱날능선 ㅡ서봉 ㅡ동봉 ㅡ부도암 ㅡ동화사(1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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