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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May 30. 2020

<고양이>2편

2편

식빵은 혼날 때마다 잘 구워진 은어 한 마리를 물고(아니면 저녁 반찬중 아무거나 맛있어 보이는 것을. 물론 그것들은 훔치는 것이다.) 담을 넘어 유키에게 갔습니다. 담에 휘리릭 올라타서는 입에 맛난 음식을 물고 도도하고 시크한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유키에게 갔습니다. 그렇게 유키 앞에 도착해 “자 너 이거 먹어.” 하고 은어를 조심스레 내려놓으면 유키는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도도하게 고개를 돌린 유키 옆에는 보통 은어 뼈다귀가 쌓여있었습니다. 아니면 참치 캔이 쌓여있던가요. 그래도 유키는 먹을 것과 상관없이 식빵이랑 곧잘 놀았습니다. 우선 또래 고양이가 별로 없었고, 식빵이의 외모도 뭐, 그럭저럭 봐 줄 만 했거든요.

 둘은 바닷가를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마을 안에서는 재밌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닷마을은 아무래도 바다를 빼면 좀 지루한 곳입니다. 특히 유키나 식빵 같은 젊은 고양이들에게는 더 심심한 곳입니다. 둘은 해변을 산책하면서 보말을 주웠습니다. 보오말은 유키가 특히 좋아했습니다. 유키라는 이름만큼 보말도 예쁜 이름이지 않나요? 두 고양이는 물 빠진 바위들을 폴짝폴짝 넘어 다녔습니다. 서로 넘어지지 않게 손도 잡아주었습니다. 둘은 소라게도 구경했습니다. 소라껍데기도 주웠습니다. 주황빛 노을도 봤습니다. 그러니까 바닷가에서 할 수 있는 낭만적인 짓이란 짓은 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유키의 배가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식빵은 유키와 잔 적이 없었습니다. 식빵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유키는 식빵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식빵은 혼란스러웠고,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식빵은 더 이상 유키네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마을에서는 밤마다 유키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식빵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2층집에서 나오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식빵은 유키를 보러 가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유키가 없는 식빵의 삶은 금방 불행해졌습니다. 식빵은 자기의 거의 대부분인, 그 낡은 2층집에서 매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습니다. 이제는 생선을 훔치지도, 막내를 할퀴지도 않았음에도 식구는 꾸준히 식빵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어쩌면 옛날에 지어진 1층 집이나, 아주 현대식인 아파트에서 어린 부부 둘과 함께 살아야 했을 고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적합한 자가 생존하는 것. 이것을 적자생존 이라고 하지요? 안타깝지만 식빵은 그 집에 적합한 고양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밤중에 식빵이 방파제에 혼자 나와 있습니다. 왜 나와 있을까... 저 녀석 눈빛이 심상치 않네요. 괜찮은 걸까요? 몹시 신경 쓰이는 얼굴입니다. 왜 자꾸 방파제 및을 내려다볼까요? 거긴 차갑고 딱딱한 바위와 검은 바닷물밖에 없는데요. 왜 자꾸...

 말하는 순간, 역시 식빵이 방파제 밑으로 뛰어내리고 말았습니다. 식방이 뛰어내리자 방파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적자(適者)가 아닌 자는 곧잘 자살하곤 합니다. 자연의 순리입니다. 자연은 원래 잔인한 녀석입니다.

 물은 차가웠다. 짰고. 수면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해초 같은 것들이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녔다. 짜고 차갑고 무서운 바닷물에 빠지자 나는 겨우 고개만 내밀 수 있었다. 털들이 몽땅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이제 나는 곧 가라앉을 것이다. 허파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내장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큰 배가 가라앉듯이 천천히 바닷속으로 내려갈 것이다. 자고있거나 울고 있을 유키를 상상하며 이리저리 부유하던 중 파도가 나를 덮쳤다. 그 짜고 어두운 바닷물들을 들이키는 순간 내가 스물넷이었을 적의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바다 한 가운데에 거대한 수챗구멍이 있는 것처럼 나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검푸른 바닷물보다 더 어두운 수챗구멍 속으로. 그곳엔 나의 이십대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물의 거센 흐름에 허우적대며 그곳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 나는 이십대였다. 스물 셋쯤의 나이였다.

 그때의 나는 다양한 여성들을 만났다. 나이가 많은 여자,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집착이 심해 무서운 여자, 나이가 같은 여자, 문자 메시지 한 통이면 잘 수 있는 여자, 우연히 알게 된 여자, 중요한 자리에서 알게 된 여자 등등. 한 나라의 수도에 사는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 다 겪는, 그런 평범한 일이었다.

 여성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깃털을 잘 가꿔야 한다. 무슨 말이냐면 마치 공작새가 화려한 깃털을 뽐내는 것처럼, 나도 화려한 깃털들을 가지고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중 터무니없는 것이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이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것들을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작품들을 혐오한다. 나는 싫어하는 것이 거의 없다. 굳이 싫어하는 것을 꼽자면 가시가 많고 비린 생선조림 정도다. 그런 내가 혐오한다고 표현했으니 얼마나 싫어하는 지 알아주기 바란다. 어쨌든. 내가 그토록 혐오하는 것이지만 소설 속에 등장시킨 이유는 이것이 꽤 중요하고,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도중 마침 인스타그램을 선전하는 삐라가 바람에 불어와 내 방 창문에 척 하고 붙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겠다. 그렇게 하면 내가 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당신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 삐라를 보기 전에 여기엔 그릴 수 없는 삐라의 디자인을 말해보도록 하겠다. 눈은 살짝 감고 상상해 보세요.

 삐라의 전체적인 색은 분홍색이다. 그렇지만 빨간색이 많이 섞인 분홍색으로, 피같은 분홍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왼쪽 상단에는 인스타그램 어플 로고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상단에는 호리호리한 유니콘이 그려져 있다. 유니콘은 눈을 감고 있다. 유니콘은 보라색 갈기와 하얀색 몸을 하고 있다. 삐라의 크기는 주차위반 딱지만 했고, 글씨의 크기도 그와 비슷했다. 다른 점은 폰트가 구름같이 둥글고 뭉실뭉실했다는 점이다. 폰트는 보라색으로 유니콘의 갈기와 같은 색이었다. 삐라의 밑부분은 하얀색 구름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고 그 사이를 이름 모를 작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인스타그램 삐라의 내용>

인스타그램! 당신을 더욱 윤택하게 해주는 그 무엇!
인스타그램! 당신을 표현하고 창조하고 꾸며보세요!
인스타그램! 당신의 멋진 깃털이 되어줍니다!
인스타그램! 여기서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이든 될 수 있습니다!(끝)

 어찌됐던 이십대의 나는 인스타그램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여성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은 마치 63빌딩만큼 거대한 광고판 하나를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 이것으로 더 이상 지루한 인스타그램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지금 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거대한 수챗구멍에 빨려 들어가 20대의 나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나는 오래 전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회색 침대 커버였다. 고개를 반쯤 들어 창문을 보니 창문에는 오래 전 내가 일본여행에서 가져온 초록색 돗자리로 만든 커텐이 쳐져 있었다. 그 돗자리에는 일본에서 가져온 전단지와 기차표, 여자친구가 써 준 편지 등이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붙어있었다. 그래, 이맘때 나는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살면서 주말에는 경리단길에 위치한 무겁고 느와르적인 분위기의 LP바에서 일하고, 평일에는 바와 거의 반대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는 발랄한  여자친구와 데이트했었다. 시간이 남을 때는 일본 소설을 읽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러 다녔다.

 나는 이 사건(내가 이십대로 돌아가게 된 사건)을 겪고 조금 놀랐지만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눈물겹도록 많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거의 유일한 강점 중 하나는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마음껏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부엌의 냄비에는 카레가 있었다. 나는 카레를 떠서 고춧가루를 뿌려 먹은 뒤 잠시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바늘로 쿡쿡 쑤시는 정도의 슬픔이었다. 나는 침대에 바른 자세로 앉아 이십대의 내가 무엇이 그렇게 슬플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문제는 꽤 큰 문제로 여겨진다. 이것은 스무살이나 여든살이나 모두 같다. 나는 나름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밥을 먹고 나는 또 다시 잠이 쏟아져 잠에 들었다. 꿈을 꿨는데, 그것은 매우 지루한 꿈이었다. 마치 마라톤을 하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이 느리게 바뀌었다.  풍경이 바뀌는 시간은 깊은 한숨을 쉬고 맥주를 반 잔 들이키고도 남을 정도로 오래 걸렸다. 곁에서 같이 뛰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이 지나야 바뀌었다. 게다가 나는 속도가 느려서 뒤쳐졌고, 곧 내 옆에서 뛰는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때 그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마라톤 코스의 옆에 나 있는 터널 속에서 갑작스럽게 코스에 합류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에 내 옆에서 나란히 뛰고 있었다. 마라톤에 참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른 쪽에서 주최한 마라톤에 참가했거나 그냥 취미로 조깅을 하는 사람이거나, 부모님이 나가서 좀 움직이라고 등을 떠밀어 억지로 나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정색 나이키 스포츠 나시와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질끈 묶었다. 바람직한 마라토너의 복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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