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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Apr 21. 2020

나는 늙은 강아지와 산다

나는 늙은 강아지와 산다. 강아지가 아기일 때부터 십년 넘게 같이 살아왔다. 삶의 뒷부분에 와 있는 강아지를 보면 인간이 별로 좋지 않은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모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강아지는 자연에서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살 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도시의 애견인들은 그들의 반려견을 키우는 일에 실패한다. 강아지뿐 아니라 인간과 공존하는 대부분의 동물들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동물들은 인간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그들이 자연 속에서 누릴 수 있었던 행복에 대한 권리를 당연한 듯 박탈당한다.


미루(내 강아지의 이름이다)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미루는 늙었다. 털색도 바랬다. 몇 년 전 다리뼈를 수술한 이후 몸이 급격하게 약해졌다. 걷다가 종종 엎어진다. 혼자 자라서인지 사회성이 좋지 않다. 자신과 우리 가족을 제외한 모든 낯선 생물을 보거나 들으면 우선 짖고 본다. 요즘 텅 빈 집에 가장 많이 있는 사람이 나라서 그런지 나에게 병적으로 집착한다. 아마 미루의 삶은 꽤 단순할 것이다. 미루의 인생에 있어 우리 가족은 거의 전부다.


미루의 대부분인 우리 가족은 바빠서 낮시간에 집에 잘 있지 못한다. 미루는 아마 큰 상실감을 느끼며 혼자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종종 문 밖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리면 공포감을 느끼며 죽일듯 짖어댄다. 그런데 사실 미루는 짖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겁이 많고 작고 약하기 때문이다. 미루는 한 번도 사람을 문 적이 없다.



많은 애견인들은 강아지의 성욕을 억제하기 위해 생식기를 제거한다. 강아지의 성욕은 생각보다 왕성해서 귀찮고, 주인은 ‘강아지가 해결되지 않는 성욕을 가지고 있으면 고통스러울 거야.’ 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미루는 그 수술을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수술이 못할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루는 한 번도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 번식에 대한 욕구는 동물의 욕구 중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모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번식하려 한다. 그런 중요한 욕구를 인간들은 마음대로 제거하거나 억누른다. 수술을 하는 것과 수술 하지 않았지만 해소되지 않는 욕구만 가지고 사는 것, 어떤 것이 더 불행하고 고통스러울 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건 둘 다 부당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미루가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에서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하며 우물쭈물 댔고, 지금은 미루가 늙어버려 적절한 시기를 놓친 상태다. 한 생명의 삶을 제멋대로 망쳐 버렸다는 죄책감이 든다.


군에 복무할 때, 동기들과 종종 채식주의자들을 놀렸었다. “한 개인이 해 봤자 의미 없는 채식을 왜 하지?” “자기 만족 아니야?” “멋으로 채식하는 거 아니야?” “분명 불행할 거야.”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낄낄댔다.


비로소 지금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동물들이 미루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또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안다. 그들 역시 미루가 느끼는 불안과, 내가 느끼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지구에서 태어난 생명체다. 자연의 섭리인 약육강식은 자연스럽지만 나는 종종 인간이 너무 많은 동물들의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저 오지에 있는 동물조차 인간이 올려놓은 지구의 온도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동물은 아마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명백히 지구에서 가장 강한 동물이다. 인간은 그 힘에 책임을 져야 한다. 왜냐하면 ‘힘있는 자가 마음대로 힘을 사용한다.’ 라는 말이 다름 아닌 우리 자신, 인류에 의해 끊임없이 반박되어 왔기 때문이다. 인류는 힘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개인이나 단체, 국가에 대해 그것이 부당하다고 외치며 저항해 왔다. ‘인간은 강하기 때문에 약한 동물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라는 말은 인류의 저항의 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모순된다.


<생명>이라는 주제어를 보자마자 우리 집에 살고 있는 작은 생명이 떠올랐다. 인간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살아가는 생명이었다. 이어서 억압당하는 모습의 생명들이 셀 수 없이 떠올랐다. 생명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그들에 대해 적지 않을 수 없었다.


2019년, 2020년은 무엇보다 차별에 예민한 해들이었다. 차별과 억압의 문제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이제는 동물에게까지 활발하게 퍼지고 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건강한 일이다. ‘동물권’ 이라는 단어가 인권만큼 널리 쓰이는 지구를 상상해 본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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