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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Apr 23. 2023

가볍게 쓰는 일기 09

오늘의 하루를 담다,

벌써 한 달 넘게 글 한 자 쓰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내면이 정말 엉망진창이 됐다. 사실 3월까지만 해도 당장 닥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느라 내면의 빈자리를 느낄 새가 없었다. 2월이 되지마자 예기치 못하게 이사를 해야했고 그런 김에 부모님 집도 대대적인 정리에 들어갔다. 바뀐 집에 어울릴 인테리어를 고민했고 유투브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남들의 자취방을 구경했으며 가구쇼룸을 방문하느라 바빴다. 늦은 밤에도 뭔가가 생각나면 줄자를 들고 여기저기 치수를 쟀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찾을 때까지 끈질기게 검색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꽤 피곤하고 힘든 것이었으나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원래 목표는 한 달에 한 두번이라도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잠시 매달려 온 일들이 모두 끝나자마자 허전함이 몰려왔다. 드디어 룸메이트와 지내던 투룸에서 벗어나 작지만 따뜻한 원룸에 혼자 살게 됐고 오랜 먼지로 뒤덮인 부모님의 집도 말끔한 자태를 뽐내게 됐지만 어쩐지 나는 홀로 먼지더미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에 훨씬 더 똑부러지게 미래를 설계할 수도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현재의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처한 현실은 왜이렇게 되는 것 하나 없이 답답한 거지. 알 수 없는 갈증이 나를 고통으로 이끌었다.


전엔 곧잘 바깥 공기를 쐬러 산책에 나서곤 했지만 이제는 혼자 어딜 나서는 것 자체가 꺼려져서 방안에 처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머릿 속엔 어두운 생각들로 가득차게 됐다. 걷잡을 수 없이 어딘가로 추락하는 기분이었지만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가깝게 지내고픈 모두가 멀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들 힘든 시기이니 나의 우울함 또한 아무 것도 아니리라, 긴 인생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달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생각만큼 쉽게 덜어내지지 않았고 그렇게 글 쓸 의지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photo by. Rojoy


미래를 바꿀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있던 때가 좋았다.


과거 수험생이었던 기간 그리고 이직의 꿈에 부풀어 있던 때가 차라리 좋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희망으로 반짝이고 있었으니까. 잘 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쫓기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 미래엔 반드시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믿음 아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고 목표에 매달렸던 때가 사실 행복했던 것 같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노력이 조금 부족했고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더라는 결과에 대한 건 제쳐두고, 나는 그 시간이 지금의 시간보다 훨씬 즐거웠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어떤 목표도 없고 뭘 해야할지도 모르는 채로 암흑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답답하고 우울함이 가득한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어 혼란스러운 마음을 두서없이 적는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조금씩만 사정이나 환경이 나아져도 행복했었는데, 이제 갖출 것들이 얼추 갖추어지고 나니 더 큰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인지. 자꾸 스스로가 작게 느껴지고 처한 상황이 암담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다들 지금 이 순간이 힘들고 벅차다고 느낄까. 아니면 복에 겨운 내가 그저 홀로 되뇌는 넋두리 같은 것일까.


내 자신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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