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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여신 Feb 25. 2024

내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서울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서 일할 기회는 없었다.


  나의 고향은 서울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창시절을 보냈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막 상경한 사람들이야 복잡하고 꽉막힌 회색 도시라고 푸념할지 몰라도 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자라온 터라 그런 불편함이 익숙하다. 되레 인적이 드문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게 어색하다. 어두운 밤길은 고요했지만 외로움의 기폭제가 되곤 했고 혹시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사실 지금의 직장에 자리를 잡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서울에서 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출퇴근 할 때마다 한강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달리 임용 직후 경기도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3년 반을 안양으로 출퇴근을 했고 지난 2년간은 안산에서 지냈다.


  낯선 도시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은 늘 두렵고 떨렸다. 서울에서만 살아왔기에 서울 밖 다른 도시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상태였다. 게다가 아는 사람 하나없이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적응하게 되고 낯선 곳에 정을 붙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꽤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회사에 고충을 신청했다. 매번 잘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가족과 친구 없이 홀로 적응하며 지내기 어려우니 이번엔 연고지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옮겨달라고.


그리고 마침내 5년 반만에
서울로 가게 됐다.


 1월 초부터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그 동안 몇 차례 고충을 신청하거나 서울로 전보를 희망했지만 매번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처음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중되니 점점 포기하게 됐다. 주변에서 '잘 될거라'는 얘기를 하기보다 '되겠냐'하는 말을 많이 듣다보니 희망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두명씩 나와 비슷하게 서울 출신인 사람들이 서울로 근무지를 이동하는 것을 보며 조바심이 났다. 


  사실 안산도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지내다 보니 업무도 손에 익고 지내는데 큰 불편함이 없어서 타성에 젖어든 상태였다. 이토록 편안한 상황에서 굳이 변화를 추구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컸다. 익숙함과 편안함이란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데는 큰 결심이 필요했다. 한 때는 그토록 서울행을 외쳤으면서도 어느새 나는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인사발표가 나는 것은 1월 그리고 정식 인사이동 날짜는 2월. 하지만 인사 관련 고충신청은 그 전인 12월에 해야 했다. 그래서 작년 11월부터 나는 고충을 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과연 이번엔 원하는 대로 인사발령이 날지, 그리고 가는 게 내게 더 도움이 될지가 걱정이었다. 고충신청서를 작성하기 직전까지 치열하게 고민을 했다. 이제 막 좋은 팀원들을 만나 어려움 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지금 떠나면 고생길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하지만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잘 될 거라는 자신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는 마음으로 여러 장에 걸쳐 그간의 어려움을 적었다. 


  그런데 이번엔 정식 발표가 나기 전부터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았다. 이번만큼은 잘 될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내 감은 보통 좋지 않아 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정확히 들어맞았다. 지금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며 머물러 있기보다 과감히 새로운 도전을 선택할 때라는 판단 또한 정확했다. 바라던 대로 1월 초에 서울행이 결정되고 소식을 접하자마자 드디어 됐다는 기쁨도 잠시 그 동안 익숙했던 것들과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사실에 슬픔이 밀려왔다. 모르는 새에 많은 것들에 정을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울과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생활도, 새로 옮긴 발레학원도 꽤 마음에 들었고 좋은 동료들과 함께해 만족스러운 생활이었다. 하지만 기쁨을 누리고 슬픔을 삭일 시간이 많지 않았다.


  당장 새로 자취방을 구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그 동안은 운좋게 관사에서 지냈지만 이제는 내 이름으로 부동산 계약을 해야 했다. 하지만 경험이 없어 정말 무지한 상태였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졌던 터라 좋은 매물을 찾을 수 있으려나 하는 불안감이 매우 컸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대출에 손을 뻗쳐야 한다는 것도 심란했다. 하필 회사 업무가 많을 시기에 '거주지 이전'이라는 미션을 해결해야 하다보니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눈 뜰때부터 감을 때까지 내내 회사의 업무와 개인적인 용무를 처리하느라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남들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단 걸 알지만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두렵고 불안한 법이다. 익숙한 편안함을 벗어던지는 건 꽤 아쉬운 일이었다.




새로운 한 해가 될 예정이다.


  이제 업무환경과 주거환경 모두 뒤바뀌게 되었다. 이 변화가 낯설긴 한데 그 동안의 변화와는 달리 두려움보단 설렘과 기대가 더 크다. '적응'이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긴 했으나 현재까지는 아주 순조로운 출발이라 앞으로가 기대된다. 사소한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가는 게 걱정스럽기보다 기다려진다. 아직 이사는 마무리할 일이 좀 남았고 정식으로 업무를 시작하기 전 교육생 신분이지만, 새롭게 첫 발을 내디딜 그 순간이 머지 않았다. 좌충우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갈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시작에 축복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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