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부딪혀 알게 된 인생의 쓴맛
흔히들 ‘경험’이 중요하다고 한다.
오랜 세월 다양한 경험을 쌓다보면 소위 ‘짬밥’에서 나오는 연륜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한다. 최근에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따라 ‘부장뱅크’를 보게 되었는데 KBS 현직 PD의 파업으로 생긴 프로그램의 공백을 부장급 인사가 메워서 연출했다는 자료화면이었다. 댓글엔 부장님이라 그런지 카메라워킹에 노련함이 있다는 등 칭찬일색이었다. 내가 봐도 연출이 전에 비해 매끄럽고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으니 가히 부장뱅크가 그리울만 했다. 역시 나 혼자 잘 할 수 있더라도 선배나 상사의 조언에 따라 일을 배우고 그 가르침을 대물림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험의 중요성은 미숙한 대응으로 인해 곤경에 처할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데 있다. 확실히 겪어본 사람들이 더 위기상황에 침착하게 대응을 잘 한다든가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왕좌왕하지 않는 여유가 있다. 물론 경험 때문에 선입견이 생기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에 창의적 사고를 저해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겪은 실패 혹은 성공이 참고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고참들이 ‘라떼는 말이야’라며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할만 하다.
다만 겪다보면 즐거운 일뿐만 아니라 힘든 일도 있는 법. 하지만 그에서 얻는 교훈을 바탕으로 다음 번엔 좀더 그럴싸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곤 한다. 그런 이유로 힘든 일을 겪었더라도 그게 전부는 아니니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라’며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다. 그만큼 경험은 지난 이후에 다양한 방식으로 앞으로의 삶을 변화시킨다. 실패했다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성공했다면 그를 발판으로 삼아 더 큰 도전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는 게 합리적일지 어떻게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지에 대해 각자만의 답을 만들게 된다.
나도 몇 가지 뼈아픈 경험을 통해 성장했다.
내 나이 스물 하나, 사회 초년생 시절에 돈을 떼여본 일이 있었다. 다달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지 않을 때였는데도 합한 금액이 한 90만원 정도 됐다. 몇 달치가 밀렸던거다. 당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과외 중개 업체와 계약하고 일을 하게 됐는데, 과외 중개 업체를 통해 과외생을 소개받는 대신 월급을 받는 식이었다. 그런데 시작한지 겨우 세 달만에 업체와의 연락이 끊겼다. 대표는 잠적했다. 부모님의 손을 벌리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던 터라 다달이 통장에 들어오는 몇 푼이 소중했던 시절이다. 그렇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당장 계약했던 업체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하지만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내가 뒤늦게 찾아간 거였는지 문 앞에 온통 욕지거리가 적혀 있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이내 발걸음을 돌렸지만 며칠 뒤 다시 찾아갔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그런데 그 때에는 몇 명의 사람이 더 있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같이 경찰서에 가서 진정서에 억울한 사연을 구구절절이 적었다. 경찰서는 처음이었고 갱지에 뭔가 써서 내는 건 학교 졸업한 뒤로 처음이었다. 경찰은 적은 내용을 쭉 훑더니 노동청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 거라고 했다.
그 뒤로 정확한 경위는 모르겠는데 한 번 대표를 만난 일이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 다른 사람들도 동행한 자리였는데 오래 전 일이라 어떻게 모이게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전 대표는 잠적을 했고 새로 사업을 인계받은 대표가 사무실에 나왔다. 카랑카랑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그녀는 자신도 피해자임을 호소했다. 임금을 떼인 피해자들 여럿이 되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가운데 신 대표는 목청을 높여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어느 한 남자분이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잔말 말고 체불된 임금 어떻게 할거냐고?
당신이 대표면 책임져야 할 거 아니야?"
말 한마디 못 꺼내고 굳은 얼굴로 발 아래를 응시하고 있는 사람들 틈에 용감하게 소리친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고함에 내내 빳빳이 고개를 들고 있던 대표란 여자가 우물쭈물하는 게 보였다. 전투적으로 쏘아붙이자 내내 피해자인냥 굴던 대표가 그제서야 죄송하단 얘기를 했다.
나중에 대표가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이 말 하기를 자신은 모인 사람 가운데 제일 나이가 많고 취업한 상태인데다가 떼인 돈이 9만원 정도 밖에 안되서 잃을 게 많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갓 학생 딱지를 뗀 어린 친구들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것을 보니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자기라도 소리를 쳐야 대표가 뜨끔한 줄 알겠다 싶어 총대를 맨 거라고 했다. 미처 말을 전하지 못했지만 그 사람의 용기에 눈물나게 고마웠다.
결국 그 모인 자리에서 돈을 받진 못했다. 알고보니 잠적한 전 대표는 사무실의 직원들에게조차 월급을 주지 않고 도주했다. 그래서 임금체불과 사기로 고소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 역시 내 주거지 인근의 고용노동지청에 가서 임금체불 관련해 조사를 받았다. 1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조사에서 얼마나 긴장되고 무섭던지. 내 피해사실을 알리고 구제받는 일은 힘겨웠다. 법에 정해진 절차는 잘 이해되지 않았고 복잡했다. 학교 다닐 무렵에 이런 걸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뒤늦게나마 인터넷을 뒤져가며 피해를 보상받을 방법에 대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크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체당금의 존재와 임금체불의 경우 어떤 조사가 필요한지 그리고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계약관계라고 한다면 채무관계 해소를 위해 어떻게 민사소송을 진행해야하는지에 대한 법적 대응 절차를 알게 되었다. 스물 하나의 나이에 밤잠을 못 이뤄가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때는 도움을 줄 사람이 없었다.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기에 한없이 무서웠고 걱정에 나날이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리고 1년 쯤 뒤에 이 일과 관련해 다시 연락을 받았다. 방송국에서 취재에 응해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이런 사기 피해가 의외로 많이 발생했던 모양이다. 나는 실물 취재 대신에 전화 인터뷰에 응해 1시간 여 통화를 하며 내 피해사실을 담담히 털어 놓았다.
그 뒤로 그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러 경찰서에서 검찰에 사기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는 한 통의 연락이 왔을 뿐. 사기죄의 구성요건은 성립한 모양인데 유죄인정이 된 건지 그 나쁜 범죄자 놈들이 잡힌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딘가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단죄받고 살기를 바랄 뿐. 나쁜 일이 지나고 나서 사실은 좋은 일이 생겼기에 나는 그 일에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중개업체를 통해 만났던 과외 학생들과 좋은 인연이 된 덕분에 쭉 과외수업을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업체를 통한게 아니라 더 수입금액은 많았다.
앞으로도 이 사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나의 치욕스러운 역사로 기억되겠지만, 그 이후론 계약할 때 발등찍히는 일이 없도록 꼼꼼히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그리고 그 일로 노동청을 방문한지 몇 년 뒤 생각지도 못하게 그 곳이 내 일터가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조사를 하는 입장이 된 지라 조사를 받는 게 무섭지 않고 법률을 들여다 보는 게 일상이라 이해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데도 사기꾼한테는 못 당할 일이다. 다만 울컥하는 설움이 전보단 그 농도가 얕아졌다는 사실만은 자명하다.
또한 나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 미약하나마 아는 한도 내에서 적극 도움을 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실천할 기회가 보이면 그래서 열심히 나서고 있다. 비록 나는 조언을 구할 만한 인생 선배가 없었지만 타인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선배 노릇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물론 가끔 꼰대냐 아니냐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부장뱅크의 부장님들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노련함을 자랑하는 노익장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