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달라진 너와 나의 현주소

by 흔한여신
우리는 한 때 하나였다


학창시절, 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목표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어울렸던 친구들과 졸업과 동시에 완전한 남이 되었다. 물론 남이었던 그들과 조우해 '친구'가 되었지만 각자가 선택한 길대로 흩어지고 나니 영영 만날 길이 없어졌다. 그 시절, '입시의 경쟁자' 혹은 '인생의 동반자'라고 명명할 수 있는 그들과 보냈던 하루는 가족과 함께 한 시간보다 더 길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한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도 대단했다. 학술적으로는 이를 '또래압력(peer pressure)'이라고 한다. 단순히 교칙과 선생님들의 통제 아래에 놓여서가 아니라 각자의 존재가 얽힌 상호작용이 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같은 반에서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도 저마다의 꿈을 키웠다. 누군가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PD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시를 생각하는 친구도 있었고 판검사를 희망하는 친구도 있었다. 다들 멋진 꿈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멋있게 전진해 나가는 빛나는 사람들이었다. 수없는 장난과 농담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희망의 빛이 눈에 가득했던 친구들이었다. 몇 번을 돌이켜 생각해봐도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만났던 이들 중 가장 잘난 부류였다. 너무 멋진 사람들이라 어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오히려 비교했을 때 깎아내려진 건 나였다.


그래서 졸업 이후 나는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면 너무 부러울까봐 내 어리석고 못난 마음이 자괴감에서 헤어나지 못할까봐 그들과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 혹시나 마주칠까 그들이 진학한 학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안부를 묻는 정도의 가벼운 인사조차도 내겐 버거웠던 시절이었으니깐. 우연히라도 마주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의 소식을 일절 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들이 시야에서,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출처: 대학내일


뛰어났던 그들의 능력은 내 삶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들과의 연락을 끊고난 이후 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좇으려 노력했다. 나태해질 때마다 그들의 노력을 떠올렸고 그들과 비교해 내 현 위치가 어디인지를 헤아려보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잣대는 내가 애쓰게 만드는 힘이자 자존심이 무너지게 만드는 망령이었다. 그래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내 행복의 기준은 '뒤처진 내가 그들의 능력을 흉내내는 것'이라는 환상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알게 된 그들의 소식은 여전히 내 마음을 얼어붙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지난 날 오래도록 나를 괴롭혔던 망령에서 벗어나 전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삶은 계속 이어나가는 여정이기에 큰 방향만 정해졌을 뿐 아직 무언가 완성한 것은 없다. 어떤 모양으로 빚어야 할지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가끔 잊고 지냈던 그들의 소식을 접할 때가 있다. 우연히 내 대학친구의 연인으로 건너 알게된다든지 아니면 TV에 나오는 모습을 마주한다든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알게 된 그들의 현모습 또한 여전히 멋있다. 꿈 꿨던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지만 그래도 큰 아픔이나 상처없이 잘 살아온 것 같다.


출처 http://m.blog.daum.net/kimskims77/18336182


그런데 그런 소식을 접하고 나면 나는 왠지 헛헛함을 느낀다. 그들의 성공 혹은 삶의 궤적을 비하하거나 부러워함이 아니라, 긴 세월 그들의 뒤통수만 바라봐 온 내 자신에 대한 씁쓸한 심경이다. 기껏 한 배를 탔던 친구 사이로 인연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연을 잇지 못한 것에도 착잡한 심경이다. 손가락질을 받은 것도 아니기에 누군가의 탓을 할 수는 없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여러모로 편치 못하다. 그들의 잘난 모습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눈물 방울이 숨어 있을지 짐작은 하지만서도 여전히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이는 건 평생 풀어야 할 나의 숙제다.


나 또한 누군에게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시선과 편견에 휘둘림 없이 나만의 길을 걸어나가는 그런 날이 내게도 올까?


갈림길 저 편에서 잠시 만난 나의 오랜 친구들을 떠올리며, 여러가지 생각이 스치는 밤이다.



출처: http://naver.me/FppIEt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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