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차도록 달려왔던 과거의 시간들
나는 반복되는 평온한 일상이 싫었다.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기엔 고고히 빛나는 나의 이상은 더 나아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재촉했다.
나는 본디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내 한계를 시험하는 일을 즐긴다. 또한 나는 스스로의 가치를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에 따라 평가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라 공연히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걸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적절한 생존본능을 잘 키워온 까닭이다. 부레가 없어 지느러미로 열심히 헤엄쳐 살아남는다는 상어처럼 나는 끊임없이 꼼지락거린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때면 공연히 불안하다. 물론 바쁘게 달려가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는 순간들을 맞게 되고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성취감 없이 그저 삶이 쳇바퀴처럼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때면 공허함이 밀려든다. 열정으로만 매 순간을 채울순 없겠지만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비해 아직은 주어진 역할이 미미한 탓에 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을 수 없던 존재의 가벼움
몇 년 전 국회에서 무급 인턴을 한 적이 있다. 보좌관으로서의 삶은 어떨지 호기심에 도전해 본 일이었다. 당시 정기국회나 임시국회가 열리던 때가 아니라 설 연휴가 임박했을 무렵이라 의원회관 분위기는 조용했다. 별다른 의정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보좌관들도 일 년에 몇 안되는 모처럼 ‘쉬는 달’이었다. 뭐 하나라도 배워갈 의지로 자원했던 내게는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사실 다른 쟁쟁한 후보들 틈에서 대학생이었던 나는 아직 검증된 인재인지 알 수 없어 의정활동이 많은 시기에 기용될 리 만무했을 테다. 거저 얻은 기회였던 만큼 내 가능성을 어필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뭐라도 얻어가야 한다는 데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한낱 '체험' 정도에 지나지 않는 기회였지만 스펙쌓기 열풍에서 뒤쳐질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비록 보잘것 없는 위치에 불과하더라도 내 존재감을 각인시키겠다는 그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내게 주어진 일은
‘자리보전’이었다.
처음엔 제대로 된 자리조차 없었다. 필요 없는 잉여인력이 들어온 탓에 탕비실 한 켠에 놓인 컴퓨터 한 대 앞에 머물 자리가 마련됐다. 남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인데다가 손님이 오면 자리를 비켜야 했다. 하지만 굴욕적이란 생각이 들 것도 없이 나는 빨리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한다는 의욕이 앞섰다. 사무실엔 대화소리조차 없이 마우스 클릭 하는 소리와 타자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할일이 없이 멍하니 앉아있던 나와 달리 프린터기는 하루종일 바쁘게 제 할일을 다 하고 있었다. 알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남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철저한 이방인이었던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조차 알기 쉽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임무는 매우 소소한 것이었다. 첫 날엔 신문 스크랩을 하라고 했다. 그 다음 날에도 아침 문안 인사와 신문 스크랩 외엔 할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마음 한 켠으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소망하며 그저 조용히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마침내 보도자료 쓰는 연습을 해 보라는 작은 과제가 주어졌다. 뭐라도 잘 해서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는 그 일을 몇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참 의연하게 처절한 상황을 이겨내고 있었다.
비슷한 일이 그 한 해 전에도 있었다. 때는 2014년. 대학에서 선발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부 장학금을 지원하는 ‘단기 해외 무급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유학이나 교환학생을 꿈 꾸었지만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별다른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않고 있는 이상 손을 벌리기가 어렵다고 판단해 단념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쉬움을 달래고자 이 단기 프로그램이라도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마침 몇 달 전까지 휴학하고 사무보조를 하며 모아 둔 돈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또한 별 도움이 되지 않은 경험에 불과했지만, 나는 미국생활을 더 유익하게 보내고 싶어 많은 준비를 했다.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고 영문과 수업을 들으며 실력을 다져놓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헛된 기대였지만 조금이라도 좋은 기회를 잡고 싶다는 야심이 가득했다.
원래는 잡지사 인턴기자를 지망했다. 그 때만 해도 기자가 꿈이라 학교에서도 관련 수업을 듣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영어도 능숙하지 않은 내게 취재 기회가 주어질 리가 만무했다. 열심히 연습한 실력을 발휘해 인터뷰를 치렀지만 배우는 학생 수준에 불과한 실력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어느 유대인 변호사 개인 사무실에 심부름꾼으로 두 달 여의 시간을 보내게 됐다. 외국인에게 큰 편견이 없었던 데다가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에서 그 동안 질좋은 인력을 많이 섭외해 온 신뢰가 있었던 것일까, 유대인 변호사는 선뜻 사무공간 한 켠을 내주었다. 하지만 또 할 일은 없었다. 나는 매우 초조해졌다.
보잘 것 없는 기회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고 조금이라도 내 미래의 선택지를 넓히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애를 썼다. 특히 주변에 아는 이들 중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기회를 잘도 낚아채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성취는 나에게 큰 자극제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에서든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배우겠다는 의지를 적극 드러냈다. 그리고 다행히 그런 나를 주변에선 눈여겨 봐주었다. 그런 덕분에 기대했던 만큼의 수확은 없었을지라도 나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었다. 경험 그 자체에서 해답을 얻을 순 없었지만 어린 내가 사회생활에서 자존심이 꺾이지 않고 되려 다음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국회에서 겨우 자리보전하고 있을 무렵 나는 종일 자괴감에 시달린 탓에 귀갓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겉으로는 안달나는 마음을 숨기고 항상 방긋 웃으려고 노력했던것 같다. 내가 온 지 며칠 뒤 그만 둔 직원의 자리로 나는 책상을 옮기게 되었고 덕분에 조금 더 안락한 자리에서 드디어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를 만났다. 2주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장생활의 애환이 담긴 소소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특히 호기심 많은 나를 배려해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한다든가 국정감사 시즌의 국회의 모습은 어떻다든가 하는 얘기도 들려주었다. 결국 내가 별 도움이 된 일은 없지만 큰 불편함 없이 지낸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적어도 이방인이라고 무시하거나 무관심 속에 배제되는 그런 수모는 겪지 않았다. 되려 시기가 시기인지라 가르쳐 줄 게 별로 없어 미안하다며 마음 써준 일이 아직도 감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미국 인턴십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인 내가 여행자로서 도시를 구경하는 이상 법원에 가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시 나는 변호인으로 재판에 참여한 변호사를 좇아 법원에 간 일이 있었다. 검은색 법복을 입은 판사가 뭐라뭐라 하는 얘기를 코앞에서 들었던 게 생생히 기억난다. 무슨 내용인지 잘 못알아 들었지만. 또 영문으로 된 민사소송 기록을 읽을 기회도 흔치 않은 일이다. 물론 대부분 채무나 계약 이행과 관련된 개인적 송사라 재미있을 법한 사건은 없었고 내가 전문적인 법률 용어를 다 알지 못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함께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이들은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가게 점원으로 손님을 상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별다르게 할 일이 없이 멍 때리다 오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쓸모가 있기를 따지자면 서로 도토리 키재기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유대인 변호사는 법원에 서류를 파일링 하는 심부름을 시키는 등 내게 좀더 알아볼 기회를 주고자 배려했다. 나라면 그런 호의를 베풀 수 있었을까 싶다.
지나고 나니 호시절이었다고 결론내린 것이지만, 겪을 당시에는 내 미미한 존재감에 속상함이 컸다. 미처 주변에서 베풀어준 호의를 알지 못하고 잘 나가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데 열중했다. 더 빨리 제대로 된 결과물을 얻어야 하는데, 답답한 마음이 쉽사리 풀리지가 않았다. 미국에서도 내내 성과물이 없이 돌아간다는 사실이 아쉬워 자주 깊은 고민에 빠지곤 했다. 좀더 마음을 내려놓고 즐겼으면 그만이었을텐데 그 때는 그럴 심적 여유가 없었다. 오히려 더 높은 목표를 바라보며 나는 항상 좀더 나은 내일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쉬어가는 때가 있었다.
그 때의 경험들이 내게 의미 있는 교훈을 남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연락이 이어지는 사람도 없다. 신기한 건 순간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찾은 장소에서 오히려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처음엔 달갑지 않았던 결과였지만 그 시간을 가끔 그리워할 정도의 기억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인생의 모든 시간이 다 헛되지도 않고, 의미 있지도 않는 법이니. 결국 쉬고 난 뒤에 난 답을 찾아 다시 떠나게 됐으니 그걸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