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한 걸음 下

걸어나간 길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

by 흔한여신
겉보기에 나는 체력이 약하지 않다. 하지만 실제로는 꽤 허약한 편에 속한다.


물론 건강이 염려되어 활동이 위축되는 정도는 아니고 내가 예전에 그어둔 한계선보단 체력고갈을 버텨낼 의지와 역량이 있다. 다만 더 하고 싶은 욕구를 체력이 따라오진 못한다. 그래서 정신력으로 버텨낸 순간 다음엔 극심한 감정변화에 시달리곤 한다.


올해의 경우 지난 4월부터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삶을 살게 되며 체력이 동나기 시작했다. 우울했던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 찾아온 우연한 기회에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많은 자극을 받았다. 직장에서도 소속 팀을 옮겼고 크클에서는 본격적으로 메이트로 활동했다. 모르는 새에 나는 어디에서든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자임하고 있었지만 좋은 환경을 만난만큼 밝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일감은 쉽게 쌓였고 줄어들지가 않았다, photo by. 흔한여신


<3> 다채로웠던 이십대의 마지막 순간


새로운 걸 도전하는 데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기로 결심했던 만큼 여름이 오기까지 정말 정신 없이 바쁜 하루하루였다. 몇 개월 동안 거의 모든 주말엔 약속이나 일정이 있었고 그도 아니라면 일하러 나갔다. 처리 속도가 느린 탓에 쌓인 업무를 손봐야 하기도 했고 시험감독으로 근무를 서기도 했다. 평일에도 정시퇴근하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 가운데 크클 활동도 틈틈이 참여하고 있었다.


격주로 진행되는 정기모임 외에 '더 모임, 크클링' 같은 번외 활동에 참여하거나 정기모임이 없는 주에는 정기모임의 팀원들과 함께 놀러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매주 나의 to-do list는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때마침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지 않았고 야외활동하기엔 적절한 날씨였다. 아무렴 만물이 생동하는 따뜻한 계절이 찾아왔는데 가만히 앉아 있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그렇게 6월엔 난생 처음 서핑에 도전했다. 친목 모임에서 지인이 같이 서핑을 가지않겠느냐는 제안을 해왔다.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내가 아웃도어 스포츠라니. 그럼에도 마침 이 기회가 아니면 영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행동이 제빠르지 못하고 균형감각이 매우 부족한 나는 '업'을 하는데 실패했지만 올해도 빠짐없이 바다구경을 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바다는 언제나 옳다, photo by. 흔한여신


또 우연히 크클의 '더 모임'을 통해 강화도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처음엔 낯선 사람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다녀오고 나니 가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순간들을 영상으로 기록한 뒤 편집해 브이로그를 만들었는데 또한 신선한 경험이었다. 물론 일회성으로 해 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적어도 안 해 본 일들에 대한 경험치를 쌓았고 내가 그 순간들을 즐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예술 그 자체였던 조양방직, photo by. 흔한여신



하지만 하반기가 되어서
그 동력이 바닥났다.


주변에 애써 관심을 갖고 좀더 주의를 기울이는 모든 일들이 귀찮게 느껴졌다. 전부터 내가 애정했고 때론 존경했으며 의지했던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나니 그 허전함이 너무 컸다. 빈 자리는 곧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지만 이전 사람들이 전달해 준 좋은 기운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이 언제나 좋은 자극만 주는 것은 아니었다.


비일상적인 긴장과 스트레스가 더해지기도 했다. 사람들을 잘 챙겨줘야한다는 생각에 그들에게 마음을 쏟느라 내면의 공허함이 채워질 틈이 없었다. 그래서 휴식이 절실했다. 이전에는 밥 먹듯이 야근하느라 늘 부모님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나는 8월 쯤부터 집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늘어나며 내 주변환경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끊기 시작했다.


처음엔 웃음기가 사라진 내 모습에 나도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색해보이지 않도록 애써 밝은 텐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마음 저 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울한 그림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어쨌든 2번째 메이트로서의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결국 솔직하게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첫 메이트 시절 잔뜩 차려입은 행색으로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살피느라 신경이 곤두섰던 때와 달리 나는 한결 유연한 자세로 모임에 임했다. 평소에 회사에 출퇴근 하듯이 다소 남루하지만 편안한 복장에 민낯으로 사람들 앞에 섰다. 어짜피 내 매력이 외모에서 발산되는 게 아니라고 믿으며.


에너지의 단계


발산할 에너지를 끌어모을 힘이 부족해진 뒤로 내 차림새나 외형에 대해 거의 신경쓰지 않고 지내고 있다. 물론 예쁜 아이템들에 눈길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한 복장일 때 가장 마음이 안정되어 좋다. 또한 내 예상대로 사람들은 단순히 외적인 모습으로만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는다.


물론 편견을 갖는 일차적인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말과 행동에 그 사람의 기운과 생각이 스며있기 때문에 반드시 첫인상이 모든 걸 좌우하지 않는다. 약간의 슬럼프를 겪으며 나는 힘든 내색을 감추려 노력했던 몇 달 전과 다르게 사람들에게 지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두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게 내 본래 모습이기도 하다. 억지로 리액션하지 않고 억지로 웃지 않고 때론 냉소적이고 때론 쉽게 짜증을 내기도 하는 게.



다른 사람 장단에 맞추지 말고
네 장단에 맞춰 춤 추다보면 네 장단에 맞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고 어디선가 본 말인데 유명한 유투버 박막례 할머니의 책에 쓰인 문장으로 기억한다. 마음에 위로가 된 매우 인상 깊은 구절이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이라 우리는 본래의 자기모습이 어떠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만큼 정형화된 부품이 되어버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엔 모두가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 퍼즐조각이었을텐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맞추다 보니 고유의 모양이 깨지고 뒤틀려 결국 서로가 엇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조직이란 틀에 맞지 않는 조각은 과감히 버리기 십상이다. 결국 사람들은 '무난하다'고 여기는 즉 사회가 옳다고 여기는 기준에 맞추어 살아간다. 정답의 기준을 남에게서 배우는 셈이다. 그렇게 세상살이의 쓴 맛을 배운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사람의 내면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틀에 박힌 모양으로 찍어내고 싶어도 이리튀고 저리튀는 감정이며 개성이 숨겨지지 않는다. 나 역시 그조차도 문제라고 생각해 고쳐야한다고, 그렇게 남들과 비슷한 평정심을 유지해야한다고 늘 자각하고 있었는데 이 말 한마디에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했다. 반드시 남의 비위를 맞출 필요 없다는 그 위로가 새삼 새로웠다. 남의 평가를 걱정할 게 아니라 그 기준에 난도질 당한 내 자신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잊으면 안되는데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엔 시름이 없다, photo by. 흔한여신


나는 지금껏 노력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 방향이 맞는걸까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주위 시선을 의식하면서 달려왔다. '부족하다'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책이 내가 달려온 동력이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조급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걱정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내 행동을 극구 말리고 있다.


남들보다 더 빨리 고지를 점령해야한다는 경쟁의식은 내재된 본능이자 학창시절 혹독하게 훈련받은 기질인지라 쉽게 멈춰지지 않는 습관이다. 그런데 최근에 사주를 보면서 들은 말이 있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다가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가게 될지 이런 것들이 불안하다고 털어놓았다. 내 상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늘어놓진 않았는데도 사주 보는 이는 딱 잘라 말했다.


"남한테 제 자리 뺏길리 없는 사람인데 뭘 걱정해. 너, 네 자리는 절대 안뺏겨."


걱정이 늘 태산인 내게 얼마나 후련한 한 마디였는지 모른다. 이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나는 또 다음 행보를 준비하게 된다. 쉬는 동안 응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이다.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 나라 안팎이 뒤숭숭한 가운데 나는 또 다시 작은 성장통을 겪으며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본격 나아가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