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한 한 걸음 中

크클에서의 생존기

by 흔한여신
2020년이 되어 나는
몇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가장 큰 화두는 '도전'이었다.

이미 19년도부터 크클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공부와 피아노 연습을 시작하며 눈코 뜰새 없이 바빴던 나는 이미 더 다양한 걸 해보고 싶단 욕구에 부풀어 있었다. 한번 운전대를 잡고 나니 엑셀을 더 밟고 싶어진 것이다. 물론 그러다 큰코 다치는 수가 있다는 것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코로나로 모든 게 이전과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시간을 나만의 색으로 물들여 나갔다.


모든 시도가 다 성공적이었다거나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적어도 스스로 규정한 한계 바깥으로 나왔던 한 해였다. 전에는 내가 부족하고 못하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 않았다. 물론 프로급으로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여전히 가능성이 충분한 상태였다. 내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자못 진지하게 들여다보지 않고 짐짓 그러려니 여겼던 내 착각이었고 외부 시선이 씌운 멍에에 길들여진 편견에 불과했다.


<2> 크클러로서, 메이트로서 보낸 1년


처음 크클에 참여할 당시의 나는 무척 아끼고 가까웠던 회사 내 같은 팀원들과 불화를 겪고 있던 터였다. 1년 여가 지난 지금은 내가 부족했던 부분이 더 많았다고 반추하게 됐지만 당시엔 가장 큰 괴로움이었다. 당시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관계였기에 일터에서의 사건사고는 나의 내면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었다.


사실 미숙했던 내가 더 단단하게 자라나는 과정이었다는 걸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더욱이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반복되는 일보다는 새로운 난관에 부딪혀 가며 성장하길 원했던 나는 내가 몸 담은 조직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그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기 위해 나는 크클을 찾았다.


크클 모임에서 단골로 나오는 질문은 왜 크클에 오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이유를 댔다. 새로운 경험에 목말랐거나 단조로운 일상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도 큰 게 대다수였고 쓰기팀의 경우 여기에 더해 글쓰기를 좋아하는 취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쓰기팀은 말하기보다 조용히 생각하고 글 쓰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서 모임 분위기가 주로 차분했다.


나만의 글을 쓰는데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직장에선 늘 밝고 쾌활한 이미지로 메이킹 되어 있는게 피곤했던 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크게 매료되었다. 게다가 조용한 사람들 틈에서는 내 의견을 내는게 부담스럽지도 않았고 돌아오는 반응도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팀원'으로 참여했을 때의 이야기다.


고요함이 주는 푸른빛 행복, photo by. Jundori


내가 크클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이 좋아서'였다. 글쓰기는 사실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다시 한 번 그 적지 않은 멤버십 비용을 감당할 욕구는 사람 때문에 생겨났다. 모임의 분위기는 참여자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사실 처음 소속된 팀(정기모임)에서는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결국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대화에 싫증이 난 나는 불만사항을 낱낱이 피드백에 적었고 그걸 본 거실지기(크클 직원)가 팀을 옮기도록 조치해 주었다. 그럼에도 마뜩잖았다. 깊이 없이 피상적인 대화가 오가는 것도 괜히 감정을 자극하는 듯한 신파도 싫었다. 주제에 맞게 짜여진 각본이 있는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불 비용의 가치에 대해 꼼꼼히 따져들다보니 생긴 불만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놀러가기'를 통해 다른 정기모임 팀에 참석하면서 이 모든 계산적 사고방식이 바뀌었다. 까맣게 짙은 어둠이 깔린 방에 켜진 촛불이 온 방을 훤히 밝히는 듯한 분위기랄까. 우아하고 지적인 대화가 오고 가는 순간에 크게 감동했던 나는 그렇게 놀러간 팀에 굴러간 돌로 박히게 되었고 그 인연을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주관적으로 느낀 바가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와닿진 않겠지만 여하튼 그랬다. 나에게는 그 잊을 수 없는 따뜻한 분위기가 다음 시즌을 지속할 이유가 되었다. 또 다른 기적같은 인연을 기다렸던 것이다. 물론 돌이켜보니 인연의 초석이 될지언정 이어가는 데는 또다른 수고와 우연이 필요한 법인데 난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나다운 해석이긴 하지만.


그런데 갑자기 코로나가 찾아왔다. 대면모임을 지향하는 크클인만큼 타격이 없을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 집합금지명령이 내려지거나 대면모임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된 만큼 잠시 문을 닫는 기간이 생기게 됐고, 모임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이 생기면서 모임의 흐름도 깨지게 되었다. 그 때쯤 나는 일이 너무 바빠 체력적으로 버거웠기 때문에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론 '메이트를 해보고 관두자'하는 목표를 단념하기 아까웠다.


출처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1761


마침 20년 첫 시즌을 함께했던 모임의 메이트가 나를 새로운 메이트로 추천함에 따라 선발에 지원했다. (사실 그는 나에게 따로 추천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다..) 처음엔 코로나의 여파로 전체적인 모임 규모가 축소되어 선발되었음에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다행히(?) 개인사정으로 하차하게 된 메이트가 생겨 빈 자리에 재섭외되었다. 그렇게 나는 소위 ‘크클의 꽃’으로 불리는 메이트가 되었다.


메이트는 크클 직원이 아니다. 다만 모임의 처음과 끝이 그들 손에 전적으로 달렸다. 리더형 혹은 자기주도형의 적극적인 인간 유형이 많은 크클에서 메이트를 원하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메이트가 되면 주어지는 혜택은 멤버십 유지에 드는 비용이 없다는 것. 그러니깐 크클을 공짜로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일정 정도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짊어진 채로.


메이트 교육 때부터 줄곧 너무 부담을 가지지 말고 편히 마음 먹되 의논할 사항은 언제든 거실지기(크클 직원)들을 찾아 달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듣는다. 경험상 모임진행에 너무 많은 애정과 열정을 쏟은 사람은 에너지를 빨리 소진해 크클을 더 빨리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분명 이 말을 새겨들었건만 사람에게 정을 쏟지 않는 것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꽃잎이 고개를 내민 봄, 시작의 계절, photo by. Jundori


마침 메이트를 시작했던 첫 시즌은 봄이었고, 꽃들이 저마다 피어나기 바쁜 계절이자 나 역시 소속팀을 옮기게 되면서 내외부적으로 변화가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처음엔 일에 적응하기 바빠 모임 운영이 마음을 쓸 틈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자칭 ‘진행병’이 있었기에 그 재주를 모임시간에 적절히 뽐내면 될 뿐이었다.


사회자 역할은 제일 잘 할 수 있는 배역 중에 하나였고 실제로 분위기를 이끌고 주도하는데 처음엔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물론 첫 날엔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얼떨떨했다. 특히 이름을 외우는데 젬병인지라 자리 순서대로 이름을 써놓고 부르는데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긴장도 덜어지고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사람들과의 관계도 점차 진전이 생겼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메이트는 또 다른 나의 가면이자 직업이었다. 막상 리더의 위치에 있으니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경쓰였다. 스스로 지칭하기를 이건 ‘병’이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에 남의 눈치를 밥 먹듯이 보는 희한한 체질 때문에 내가 희생을 해서라도 남을 배려하려고 하는 마음이 앞서다보니 쉽게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부서질 것 같이 허약한 내면이든 때론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에 덩달아 한껏 우울해진 기분이든 솔직하게 내비치기가 힘들었다. 꼭 내 탓이라기보단 적당히 좋은 마음으로 좋은 것만 보여주며 알고 지낸 사이라 그렇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메이트와 팀원이라는 관계가 벅찼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런 나약한 나의 내면을 알지 못한다.


물론 정해진 ppt 순서대로 그 날의 주제와 목적에 충실한 진행을 하는 게 주어진 의무의 전부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인 만큼 놀고싶고 친해지고 싶은 욕구 역시 상당했기에 그런 니즈를 만족시켜줄 백업도 필요했다. 메이트가 되기 전 지인에게 내가 뒤풀이를 주도해야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런 의무감에 시달리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상대에게 마음이 쓰인 이상 나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침묵만이 흐르는 정적이 나를 안달나게 만들었고 다음날에 써야할 체력을 땡겨 써 가면서 나는 광대가 된 마냥 웃고 떠들었다. 팀원들에겐 이 같은 사실을 털어 놓은 적이 없지만 모임 다음 날이면 하루종일 앓는 심정으로 앉아 있었다. 입꼬리를 너무 올린 탓에 입근육이 아팠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내게 또 다른 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잘 하려고’ 너무 애쓴 탓이다.


바스라져 버릴 것만 같은 붉은 열정, photo by. Jundori


때마침 체력엔 한계가 왔고 2년여 간 믿고 의지했던 친한 동료들도 내 곁을 떠났다. 모든 게 허무해져버린 이상 남에게 쓸 마음이 더 남아 있지 않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해야할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차기 메이트 선발에 또다시 지원한 상태였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까닭에 곧 내가 인관관계에 피로함을 느껴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란 걸 하하호호 웃고 떠드는 동안 알지 못했다. 코 앞에 다가와 있는 불행한 감정은 마침내 나의 왕성한 활동욕을 억제하기에 이르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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