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저울이 균형을 잃고 무너지지 않는 방법
벽지처럼 살아야 돼.
있는 듯 없는 듯. 티 안 나게.
직장 생활 10년 차 선배가 종종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는 그 말이 유독 내게는 뼈아프게 꽂힌다. 온전한 힘으로 예쁘게 피어나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고 싶은데, 꽃인지 알아볼 수 없게 자신을 위장해야 한다니. 휘날리는 바람은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선보일 기회조차 쉽게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전에 같았으면 남의 잣대에도 굴하지 않고 멋진 내 모습을 보여주고 말리라 하는 의지를 불태웠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과거의 나는 내 의지가 중요하다고 믿었지만, 그동안 겪은 크고 작은 시련을 통해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되었다. 전체 공정과정에서 하나의 부품에 지나지 않아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존재. 색깔, 모양이며 형태가 다른 이와 얼마나 다른지가 중요하지 않은 미미한 역할. 직장 생활 3년 차, 이제 어렴풋이 사회생활에 익어가는 시기의 나는 즐거움보다 슬프고 지치는 일이 더 많음을 깨닫고 있다.
처음 일을 시작하고 난 뒤 6개월쯤. 작은 역할로 시작해 조직의 일원으로 걸음마를 떼며 나는 웃는 날이 많았다. 막내였고, 사람들과 친해지는 과정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새로운 구성원에 대한 작은 호기심으로 처음 몇 달은 예쁨도 많이 받았다. 사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알아가는 게 처음엔 큰 부담이었다. 사회생활이 처음인 것도 아니었지만 올바른 말과 행동을 고심하며 매 순간 정답이 뭔지 찾아 헤맸다.
실제로 같은 소속 직원인 줄 몰라서 일부 직원에게 인사 없이 몇 번 지나쳤더니 팀장님에게 호출된 적이 있었다. 또 직접 당사자에게 물어보지 않고 의사를 대충 전달했다가 오해를 빚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무심코 한 행동이 가벼운 실례를 저지를 수 있다고 되뇌면서 언행에 신중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한편으론 내심 기대감이 컸다. 내가 어떤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한 성취도 있을 것이다 하는. 그런 긴장과 설렘 속에서 나는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죄송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또 아직 배우고 싶은 게 많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1년 전 나는 일이 내 삶의 중심이었다. 내 자신을 불살라서라도 내게 주어진 일들 이상의 책임을 지려고 애를 썼다. 누구든 초년생은 아직 배우는 시기니까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뭐든 배울 의지가 넘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열심히 한다고 돌아오는 보상이나 인정같은 건 없었다. 사람들은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라며 매몰차게 돌아섰다. 그래도 내가 끝까지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버텨냈다. 고생한 만큼 내 자신이 성장했고 도전한 만큼 더 넓은 세상을 보기도 했지만,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 사실이었다.
마침내 내 안의 열정이라는 연료가 다 불태워졌을 때 나는 그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다른 활동들에 관심을 돌리게 된 건. 겉에 난 상처는 누구든 볼 수 있기에 아픔을 쉽게 공감할 수 있지만 내면이 찢어진 상처는 스스로도 잘 못 보고 넘기곤 한다. 괜찮다고 외치며 곪아 터질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몇 년 전 우울증으로 고생해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다시 은둔생활을 할 생각도 없었고 내 한계가 여기까지라며 멈춰 설 생각도 없었다.
나에겐 삶의 중심을 잡아줄
새로운 무게추가 필요했다.
그래서 이전에는 미처 시도할 용기나 금전적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들을 해 보기 시작했다. 소셜살롱에 참여해 열심히 글 쓰고 토론하다가 모임장까지 하게 됐고, 몇 년을 미뤄왔던 피아노 레슨을 다시 시작했으며, 도전해보고 싶었던 스페인어도 열심히 배웠다. 물론 도중에 게임에 푹 빠져서 돈을 쏟아붓기도 했고 빡빡한 스케줄이 너무 답답해서 게으르게 늘어진 적도 꽤 많았다. 그래도 우울할 틈 없이 이것저것 바쁘게 살다 보니 잡념이 스르르 사라졌다.
생각이 잡다하게 많고 의욕도 넘치는 내게 벽지 같은 삶이 가당키나 할까. 번아웃이 온 이후 나는 무리해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번아웃이란 게 한 번 오면 그다음엔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그만큼 내 안에서 여전히 열심히 하려고 하는 자아와 ‘대충 살자’고 외치는 자아가 반목하고 있을 테지. 갈림길마다 어떤 선택이 옳을지 여전히 망설이는 삶이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내 색깔이 맘에 든다. 그것이 표나는 게 불미스러운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지만 내 고유의 색을 잃고 싶지 않다.
얼마 전 과감히 회사에 반차를 내고 친한 모임의 사람들과 함께 인왕산 등산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나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벽지처럼 살아야 할까’ 하고. 물론 회사 밖의 모습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해주는 얘기가 회사생활에 어울리는 조언은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다운 색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