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너일지라도 우린 함께여야 해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깨달은 나의 성장기

by 흔한여신
나는 어릴 때부터 아득바득 성취욕이 강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칭찬이 칭찬이 고픈건지 사랑이 고픈건지 아무튼 욕심이 많은 탓에 대체로 잘하겠다는 의욕이 충만해 있다. 하지만 경쟁을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먼저 점령하기 위해 때론 남을 밟고 일어서야 할 때가 있다. 그런 논리에 따라 조직의 화합보다 개인의 결과물이 더 중요하다 생각했던 나는 종종 대열에서 이탈하는 걸 당연시했다.


그래서 아무런 소득 없이 희생하는 게 억울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이 사고방식을 많이 뜯어고쳤지만 예전의 나는 내 자신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었다. 남들의 감정에 공감하기 보단 나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사람. 한창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의 나는 이런 큰 결점을 안고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잘 갖추는 아이였고 착실하게 주어진 일을 곧잘 해내는 아이였다. 하지만 워낙 자기 주장이 강해 남들의 신임을 얻진 못했다. 초등학교 때 반장선거에 나가 당선이 됐는데 워낙 규칙을 지키는데 엄격했던 탓에 쉴새 없이 남을 지적하고 다녔다.


신발 신고 들어오지 말아야 할 곳에 드나드는 친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떠드는 친구, 교실 구석에 낙서를 남겨 놓는 친구. 잘못한다 싶은 친구가 있으면 멀리서도 감시하고 있다가 쫓아가 행동을 나무랐다. 선생님이 된 마냥. 반장으로 정의를 구현해야한다는 임무를 맡았다고 생각했던것 같다. 나름대로는 책임감을 발휘한 것인데 화기애애해야할 학급 분위기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함께했을 때 더 행복할 자리, photo by. 흔한여신


그리고 남들의 실수에도 깐깐하게 굴었다. 조별 활동 시간에 실수로 자신이 챙겨야 할 재료를 챙겨오지 않은 친구에게 괜찮다는 말 대신 싸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쪽지시험을 보다가 답이 기억나지 않아 시간이 초과해서도 시험지를 제출하지 않은 친구의 잘못을 대놓고 지적했다. 물론 틀린 말을 한건 아니었지만 남의 기분을 살 필 줄을 몰랐다.


지금 사회생활에 익숙해진 지금의 나로서는 참 눈치 없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비춰지지만 그 때의 난 융통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부모님은 내 성향에 공무원이 딱이라고 했다. 사실 그 때는 남들의 의견이나 시선에서 자유로웠던 터라 내 주장이 더 뚜렷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원인이 나에게 있음을 되돌아 보면서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나는 오히려 남의 눈치를 너무 봐서 탈이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초등학교 시절 이런 나의 철저히 개인적인 성향을 알아 본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승부욕도 강하고 자기 주장도 강한데 반해 협동심을 발휘하는 데 서투니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을 수 있다고 미래를 내다 보신걸까. 담임 선생님은 나를 일부러 학습 욕구도 저조하고 종종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로 구성된 조에 조장을 맡기셨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매달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은 조에 작은 포상이 주어졌던 것 같다. 스티커는 협동심을 발휘하거나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등 칭찬받을 만한 일이 생기면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경쟁에서 지는 걸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또 의욕이 남달랐지만 조원들은 나와 영 딴판이었다. 그들은 매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깟 스티커 받는 게 무슨 대수라고 여기는듯 했다. 속이 터지는 건 내 쪽이었다.


사기가 떨어진 조원들을 이끄는 조장이란 내게 형벌 같은 것였다. 뭐든 우리 조는 당당히 꼴등을 차지했다. 처음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같이 으쌰으쌰 하자며 협박도 해보고 달래도 봤지만 이미 제 갈 길 가는데 익숙한 조원들은 별 호응이 없었다. 처음엔 뜻대로 되지 않은 탓에 속상한 일이 많았다. 제 아무리 내가 혼자 스티커 받기 위해 애쓴다 해도 협동심이 좋았던 다른 조를 이기기엔 무리였다.


그 무렵 일기에도 그런 심경을 자주 표현했다. 당시엔 담임 선생님이 일기검사를 하던 때라 그 내용을 선생님도 보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변함없이 그 조의 조장이었다. 선생님은 이미 의도한 바가 있었고 나는 그의 기대에 부응해 내가 닥친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순위를 포기하게 됐다. 그들에게 어느 정도 동화된 것이다. 포기하니 마음이 편했다. 처음엔 마냥 밉기만 했던 친구들에게도 마음이 열렸다. 쟤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까 싶은 애들이였는데 그들이 관심 가지는 쓸데없는 이야기에 같이 시시덕거리게 되었다. 같이 게임을 했고 수업 중에 몰래 쪽지 쓰고 그림을 그리는 등 딴짓을 했다. 모범생 답지 않은 작은 일탈이었다.


Han river, photo by. 흔한여신


사실 내 담임선생님도 그런 내 모습을 원하셨던 것 같다. 평균 이상을 꼭 고집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것 같다. 한편으론 예의범절에 대한 교육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금 밀레니엄 세대들은 문자로 의사소통하는 걸 훨씬 편하게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되레 음성이 더 편하다. 당시 내 담임 선생님은 나를 심부름꾼으로 기용하셨는데 주된 임무는 결재 서류를 들고 같은 학년의 전체 반을 돌며 선생님들께 확인을 받거나 전달사항을 말씀드리는 것이었다. 각 반을 돌며 나는 매번 대사치듯이 일관된 인사말을 전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6반의 000인데요. 전달해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제 담임 선생님께서 ~~”


매번 착실히 멘트를 외우고 했던 일은 남들에게 내 의견을 차분하고 명확히 전달하는 법을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학급에서 토론하는 시간마다 감정적인 대화를 이어나갔던 내 결점도 알고 계셨던것 같다.


5학년 2학기가 됐다. 여전히 나는 소위 불량품들이 모인 조의 조장이었다. 이미 스티커니 순위니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해도 나는 조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체육시간이나 과학시간처럼 교실 밖을 벗어나는 때에도 시간을 칼 같이 지켰다. 물론 처음부터 조원들이 제 시간에 맞춰 온 것은 아니다. 어기적 어기적 저마다 다른 속도로 모이곤 했다.


그런 어느 날 나는 점심시간이 지난 줄도 모르고 교실에 앉아 조원들과 잡담하고 있었다. 다음 교시는 체육이었다.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가야했다. 정확히 기억나는 게 그 날 5교시 체육시간엔 평행봉 수업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제 시간을 놓쳐 수업에 지각을 하게 된 상황이었다. 조장인 나는 통솔하지 못했던 탓에 무척 당황했다. 여유롭게 나갈 준비를 하던 조원들과는 달랐다.


결국 그 날 수업은 가지 못했다.


나는 마음이 급한 탓에 계단을 여러 칸씩 뛰어내려오다가 그대로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앞으로 고꾸러졌다. 하중이 실린 채로 발목이 꺾여 버렸고 그대로 집에 제 발로 걸어가지 못하고 앰뷸런스에 실렸다. 허둥지둥 뛰어가다 넘어진 나를 붙잡아 일으킨 건 줄곧 미워했던 조원들이었다.


출처: https://m.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42740#policyNews


그들도 예상치 못한 사고에 당황했지만 일사불란하게 누군가는 담임 선생님께 이 상황을 알리러 갔고 다른 누군가는 양호실에 뛰어들어 갔으며 나머지는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붙잡아 질질 끌고 양호실까지 데려갔다. 사실 누가 뭘 했는지 그리고 무슨 정신으로 병원까지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엄마가 병원에 도착해 있었고 나는 앓는 소리를 하며 누워있었다.


그렇게 나는 발목 인대가 늘어나 절뚝이며 한 동안 고생해야했다. 회복 기간 동안 조원들은 의외로 따뜻하게 나를 챙겨주었다. 성과가 중요하진 않았지만 의리는 있었던 친구들이었다. 함께 대단한 결과물을 만든 건 아니지만 지내는 동안 나도 사실 많이 의지하며 지냈던것 같다. 그들은 내가 애쓴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직접 표현하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기억하기로 내가 교내 대회를 넘어 교육청에서 열린 대회에서 수상을 했을 때 함께 열렬히 축하해주었다. 어쩌면 뒤에서 조용히 응원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을 뿐. 학년 말이 될 쯤 우리 조는 마침내 꼴지 신세를 탈출했고 학년 초와 달리 나는 조원들과 많이 친해졌다.


미로 같은 길에도 출구는 있다, photo by. 흔한여신


지금도 가끔 내 기준에 맞춰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다른 방식으로 내 삶의 의미가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되뇌고 있다. 당장 함께 대단한 목표를 이루진 않을 수 있지만 결국 혼자라면 알 수 없을 행복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깐. 억지로 맞지 않은 퍼즐 조각에 나를 갈아 넣을 필요는 없지만 조금 다양한 모양이라고 해서 배척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중요한 삶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지낸 덕분에 지금은 많이 사랑받고 지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다시 베풀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나는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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