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을 벗어나서 찾은 불완전한 편안함
나는 항상 외로웠다. 물론 개인주의적인 면도 강한 편이라 혼자 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함께 웃고 떠들 누군가가 필요했다. 다수의 사람들 틈에 섞여 하하호호 떠드는 게 큰 기쁨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이 그렇듯 언젠가는 사람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하는 데는 나만의 의지만 있어선 불가능했다. 서로의 의지가 합해져야 가능한 기적이었다. 때로는 내가 화기애애한 무리에 섞여들어가지 못했다. 자연히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놀고 싶다는 작은 욕망이 뿌리 깊게 자리했고 '내 사람'들에겐 잘해줘서라도 오래도록 붙들고 싶다는 기대가 가득 차 올랐다. 그리고 언젠간 이 희망을 이루리라 하는 희망을 어렴풋하게 품고 있었다.
오랜 수험생활에서 벗어나 벽과 마주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마주하는 일상은 즐겁기 그지 없었다. 처음엔 잔뜩 얼어붙어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지만 지내고 보니 꽤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직장생활이라는 자각도 충분히 있었고 어른들과 지내는 것은 친구들과 아옹다옹 지내는 일과 사뭇 달랐지만 내가 노력한 만큼 피드백이 돌아오는 게 즐거웠다. 사람들은 신규이자 막내였던 내게 애정어린 관심을 보여주었고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사무실 분위기 덕분에 겉돌지 않고 적응할 수 있었다.
수평적인 관계 속에 어우러진만큼 서로를 챙기고 위하며 단단해진 사이는 좋은 상호작용을 낳았다. 팀워크가 자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고 서로의 실수에도 관대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 역시 일을 배우겠다는 욕망과 모나지 않고 잘 지내리란 의욕이 충만했던 터라 선배들에게 예의를 잘 갖추었다. 한편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고 어느 날은 잡담을 하다가 일이 뒷전이기도 했다. 그 때는 마치 고등학교 때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빼먹고 튀는 날에 기분이 짜릿한것처럼 사무공간에서 친목을 다지는 일이 신나기가 그지 없었다.
사무공간에서도 직함으로 서로를 부르기보단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비슷한 또래의 직원들에겐 언니, 오빠, 야 등의 편한 호칭을 썼다. 겉보기엔 무례할 수 있는 언어예절이었는데 다행히 그마저도 귀엽게 비쳐졌다. 하지만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상황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사이가 가까워지면 질수록 상대에게 불편한 점이 생겨났고 서로의 모난 부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눈에 띄다못해 불쾌한 감정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나는 분명 상대를 위해 내 기분을 희생해 배려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돌려 받아야 한다는 기대 아닌 집착이 있었던 걸까, 속상한 일이 생기게 됐다.
내가 느끼는 만족이 전과 같지 않아졌다.
일이 지겹기도 했고 매일 보는 사람들이 지겹기도 했던 까닭에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회사에서 일로 만난 사이엔 한계가 있다 느꼈고 일체감을 낯선 이들 틈에서 찾고자 했다.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렇게 '크클'과 같은 소셜살롱을 찾았고 '프립'을 통해서 여러 수업들에 참여했다. 타인의 생각을 여행하는 경험이 신선할 것이라 믿으며.
운이 좋게도 얼마 간은 내 시도가 성공적이었다. 그럴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또 다시 내 기분을 희생해서라도 사람들과 화합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모임 때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열심히 말재간을 부렸고 멀리서나마 기쁜일을 축하해주고 슬픈일을 위로해주며 그들과의 유대관계를 다지기 위해 노력했다. 내겐 그럴 에너지가 있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 주변사람들이 기뻐하는 데 동화되어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라 한 동안은 즐거웠다. 뭐든 쉽게 열었다. 지갑이든, 마음이든. '적당한' 기준선을 알지 못했던 나는 내 에너지가 닳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어느 날 감수성이 쓸데없이 풍부한 내가 또 흥에 겨워 좋은 티를 얼굴에 잔뜩 내고 있을 때였다. 나는 상대가 의미 없이 던졌을 수 있는 말에 나름대로의 해석을 붙여 신나 있었다. 분명 나를 위한 따뜻한 한 마디였다고 포장하며. 그런데 평소 무미건조한 멘트에 적절한 유머를 섞을 줄 아는 어느 선배가 대뜸 이렇게 말을 했다.
"매사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진 마."
날카롭게 와닿은 한 마디에 순간 만면해 있던 미소를 거두었다. 평소 작은 것에도 크게 반응하곤 하는 터라 감정의 기복이 심한 내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었다. 사소한 것에 좌우되는 기쁨과 슬픔은 온전히 내 탓일까 괜히 의기소침해졌지만 한편으론 그 말을 곱씹어보았다. 모든 게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신이 나를 만들 때 예민함이란 성격을 너무 쏟아버린 탓에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그 무엇에든 마음을 너무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남의 눈치를 살펴가며 나를 희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감정변화에 둔감해지기로 했다.
그렇게 관계의 화목과 발전에 기댄 삶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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